안양 김중업박물관

서구 근대건축을 한국건축에 접목한 건축가, 김중업의 자취를 찾아서

글 : 이선주 자유기고가  / 사진 : 김선아 

참고문헌 : 정인하 《김중업 건축론, 시적 울림의 세계》
한국이 전란의 소용돌이 속에 있던 1952년 9월,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열리는 ‘제 1회 국제예술가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문화계 인사 5명이 부산 수영비행장의 수송기에 올랐다. 이 가운데 서울대 건축과 교수였던 만 30세의 김중업도 끼여 있었다. 문화단체총연합회의 투표를 통해 한국대표단에 선발된 것. 베니스에 도착하기까지 일본과 홍콩・태국・인도・이집트・그리스・이탈리아의 6개 도시를 거치는 4일간의 고단한 여정이었다. 그곳에서 현대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를 만난 그는 다짜고짜 서툰 영어로 자신을 소개하고, 그의 아틀리에에서 일하고 싶다고 했다.

대회가 끝나자 김중업은 가족이 기다리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대신 미지의 세계로 몸을 던졌다. 피렌체와 로마・나폴리・피사・밀라노에서 서양건축사의 걸작들을 본 후 르 코르뷔지에의 파리 아틀리에로 찾아간 것. 김중업의 간청에 르 코르뷔지에는 인도 샹디갈의 행정청사 옥상정원 설계를 맡기면서 그의 능력을 테스트했고, 2주 후 “구상이 매우 동양적이고 개성이 넘친다”며 그를 채용했다.

배영환 작가의 설치작품 〈사라져가는 문자들의 정원〉. 김중업이 설계한 유유산업 공장의 남은 기둥들을 활용해 작품으로 만들었다.
1952년 10월부터 1955년 12월까지 그는 르 코르뷔지에 아틀리에에 있으면서 현대건축사의 이정표가 될 건축물들의 설계 과정에 참여했다. 알바 알토 등 북유럽 건축가들을 만나 교분을 쌓은 것도 이때였고, 서양의 대표적인 건축물들을 돌아보며 건축적 자양분을 흡수했다.

1956년 2월, 르 코르뷔지에의 만류를 뒤로하고 귀국한 그는 곧바로 서울 관훈동에 사무실을 열었다. ‘내 작품을 만들어보겠다’는 마음이 급했다. 이후 그는 김수근과 함께 한국의 현대건축을 대표하는 거장으로 꼽히며 주한프랑스대사관, 서울올림픽 평화의 문, 부산대 본관, 서강대 본관, 제주대 본관, 삼일로빌딩, 육군박물관, 명보극장 등 대표작을 남겼다. 김중업은 건축물을 자신의 이상을 표현하는 대상으로 보았다. 그러나 당시 건축기술로는 독특한 형태인 그의 디자인을 재현하기 어려웠고, 건축비 등의 문제로 처음 안과 달리 건축되는 경우도 많았다. 건물이 노후해서, 혹은 재개발 붐에 휩쓸려 하나 둘 사라져가고 있는 거장의 건축세계를 한눈에 훑어볼 수 있는 곳이 있다. 최근 안양시 석수동 안양예술공원 안에 문을 연 김중업박물관이다.

김중업 건축의 발자취를 모아놓은 김중업관. 밖으로 튀어나온 기둥이 건물 하중을 받치게 해 건물의 입면과 평면을 자유롭게 구성하는,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 원리를 충실히 구현했다.
김중업박물관은 그의 초기작 중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히는 안양 유유산업 공장을 레노베이션하면서 만들어졌다. 1959년 설계한 유유산업 공장은 서구 근대건축의 개념을 한국에 접목시키기 위한 그의 노력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그가 설계한 건물은 모두 일곱 동. 그중 4개 동이 아직 남아 있는데, 안양시가 이를 매입해 리모델링한 후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들었다. 이 가운데 사무실로 쓰던 지하 1층, 지상 2층 건물을 김중업관으로 꾸몄는데, 흰색 기둥이 옆으로 튀어나와 있는 게 눈에 띈다. 르 코르뷔지에의 ‘현대건축의 5원칙’ 중 ‘자유로운 입면’과 ‘자유로운 평면’을 적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벽이 아니라 밖으로 튀어나온 기둥이 건물 하중을 받치게 함으로써 내력벽의 기능에서 해방된 벽을 자유롭게 만들고, 평면도 자유롭게 구성할 수 있다는 것. 벽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유리창이 건물을 한층 가볍고 투명하게 만들었다. 김중업박물관 맞은편에 자리한 ‘문화누리관’에서도 1층은 기둥을 세워 개방하고, 2층부터 실내공간을 둔다는 르 코르뷔지에 ‘현대건축의 5원칙’ 중 하나를 확인할 수 있다. 건물 모서리에 조각 작품을 끼워 넣은 것도 흥미롭다.



김중업관과 문화누리관이 마주 보고 있다.
김중업의 건축은 주한프랑스대사관 이전과 이후로 나뉠 수 있다. 그전이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을 모방하고 변용한 시기였다면, 프랑스대사관을 계기로 서구의 근대건축과 한국의 전통건축을 접목시켜 새로운 건축언어로 발전시켜나갔다. 그는 주한프랑스대사관 현상설계에서 “건물의 조형과 배치가 한국의 정서와 프랑스의 우아한 품위를 잘 접목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당선했고, 드골 대통령에게 프랑스 국가공로훈장과 공훈기사인 슈발리에 칭호를 받았다. 1962년 완공된 대사관은 경사진 대지에 4개의 건물이 따로따로 배치되었는데, 대사관저는 넓은 지붕과 열주, 대사집무실은 솟구치는 곡선 지붕, 영사관 건물은 평지붕과 테라스 등 각기 특징이 다르면서도 조화롭게 연결되었다. 이 중 대사집무실의 지붕은 특히 한국의 전통미를 보여주는 것으로 꼽힌다. 끝부분이 치켜 올라간 지붕이 버선코처럼 날렵한 느낌을 준다. 김중업 건축에서 지붕이 갖는 의미는 컸는데, “땅과 하늘 사이에 이루어지는 새로운 자연인 건축은 부드럽게 때로는 모질게 하늘과 부단한 접촉을 꾀한다. 우리의 하늘은 실로 멋이 있기에 그에 바치는 뜨거운 찬가로 이 지붕은 창조되리라”고 편지에 쓰기도 했다. 1960년대 이후 제주대 본관, 진해 해군공관, 유엔묘지 정문, 개인주택 등 김중업 작품에서 지붕은 특징적인 모티프로 자주 등장한다. 프랑스대사관은 이후 계속 증축했는데, 박물관에 있는 모형을 통해 원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김중업이 유럽 각 도시를 다니며 스케치하고 메모로 남긴 건축수첩이 전시되어 있다.
한국에 돌아온 후에도 김중업은 세계 건축계와 계속해서 소통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1964년 뉴욕박람회의 한국관 설계를 위해 뉴욕으로 건너간 그는 그곳에 오래 머물며 미국 건축계의 동향을 파악했고, 1965년에는 르 코르뷔지에의 사망 소식을 듣고 프랑스에 건너간 후 6개월간 머물며 당시 유럽에서 일어나던 조각건축운동을 접했다. 기계적이고 획일적인 건축에 대한 대안으로 나온 것으로, 그는 특히 스페인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의 곡선을 중시하는 건축에 감명을 받았다. 세계 건축계와 접할 기회는 다시 왔다. 와우아파트 붕괴사건, 성남시(당시 광주) 개발정책 등을 비판했다 1971년 추방되다시피 프랑스로 떠난 것. 1975년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로드 아일랜드대 교수, 하버드대 객원교수 등을 지냈다. 1978년 다시 귀국한 그는 육군박물관, 한국중소기업은행 본점, 서울올림픽 평화의 문 등을 설계하면서 의욕을 보이다 1988년 고혈압과 당뇨병 등 지병으로 사망했다.

유럽 건축물들을 답사한 후 남긴 스케치와 메모들.
일제 식민지와 6・25 등 혼란기로 인해 세계 현대건축의 흐름에 주체적으로 참여하지 못했던 한국건축에 있어서 김중업은 독보적인 인물이다. 르 코르뷔지에, 알바 알토, 루이스 칸 등 당시 세계 건축계를 이끌던 세계적인 거장들과 교류하면서 이를 한국건축에 접목하기 위해 끊임없이 모색했다. 이 때문에 서구 모더니즘을 한국건축으로 승화시킨 최초의 건축가라는 평가를 받지만, 지나치게 형태에 집착했다는 비판도 받는다. 그의 고민, 인간적인 면모를 박물관에 전시된 건축물 모형과 설계도, 서구의 건축물을 보고 스케치해놓은 수첩 등을 통해 느낄 수 있다. 직접 그린 배치도나 평면도에 그는 작은 글씨로 빽빽하게 건축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적어 넣기도 했다. 박물관 1층에서는 르 코르뷔지에와의 만남, 유럽을 여행하며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유품 등을 통해 볼 수 있고, 2층은 1956년 프랑스에서 귀국한 후의 초기 작품과 1959년 프랑스 대사관 설계, 1971년 강제 추방에 따른 공백기, 1979년 귀국 후 작품세계를 돌아볼 수 있다. 문화누리관에는 전시공간과 레스토랑, 아트숍, 카페 등이 들어섰고, 어울마당은 각종 문화행사가 열리는 시민들의 공간으로 활용될 예정인데, 그대로 남겨놓은 굴뚝이 이곳이 공장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인물은 갔지만, 그가 남긴 초기 작품은 여전히 건재한 채 안양시민들의 품으로 돌아갔다.

도면과 스케치, 메모, 모형 등을 통해 김중업의 건축세계를 볼 수 있는 전시물들.


  • 2014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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