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흑백사진만을 촬영하는 물나무사진관 김현식 대표

흑백사진 속에 추억을 담아드리겠습니다

글 : 시정민 TOPCLASS 기자  / 사진 : 김선아 

디지털카메라・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촬영하는 게 일상화된 시대, 흑백 필름으로 촬영해 현상, 인화까지 옛날 방식 그대로 하는 사진관이 있다. 서울 계동 골목길, 기다란 무채색 건물에 자리 잡은 물나무사진관이다. 사진관 옆에는 전시공간인 ‘마당’, 차를 마실 수 있는 ‘다방’이 이어져 있다.

통유리를 사이에 두고 골목과 마주하고 있고, 예스러운 느낌의 벽면이 독특한 이곳은 원래 양은 냄비공장이 있었던 곳이다. 물나무사진관을 만든 김현식 대표는 1960년대에 지어진 옛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싶은 마음에 마치 실험관 안에 넣어 보존하려는 듯 통유리로 마감하면서 벽면은 옛 모습을 그대로 살렸다고 한다. 신문과 패션잡지, 광고사진 등 다양하게 작업하던 그는 세상이 급속도로 디지털화하면서 아날로그 사진, 그리고 근대문화가 자취를 감추는 것이 안타까웠다.

“우리는 최근 역사에 대해 별로 기억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아요. 힘들고 치욕적인 시절이었다고 잊어버리고 싶어 하죠. 쉽게 옛 건물을 부수고 새 건물을 올리듯이 말입니다. 조선시대나 고려시대는 정리가 잘되어 있어요. 연구하는 사람도 많죠. 그러나 근대는 그렇지가 않아요. 그래서 근대에 대한 얘기를, 근대문화에 대한 얘기를 사진을 통해 풀어보고 싶었습니다.”


그는 사진이 처음 도입되었던 근대 사진관을 떠올리며 예스러운 느낌이 남아 있는 계동에 2011년 물나무사진관을 열었다. 조선시대 초상화는 전신사조(傳神寫照), 그 인물의 외형뿐 아니라 정신세계까지 보여주는 그림이었다.

“‘가장 한국적인 사진이란 무엇일까?’를 고민했습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지 않았다면 우리가 새로운 문물인 사진을 어떻게 수용했을까, 어떤 사진을 만들어냈을까를 생각했죠. 흑백사진이야말로 전신사조의 전통을 이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금 불편하지만 그가 흑백 필름을 사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디지털카메라는 찍는 순간부터 화면으로 확인하고, 또다시 보정작업을 거친다. 반면 흑백사진은 모든 과정을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진행해야 한다. 물나무사진관은 아무런 소품도 장식도 없는 새하얀 벽 앞에 손님을 세워놓고 촬영한다. 촬영이 끝나면 암실에서 온염필름을 릴(필름을 감아두는 도구)에 거는 인화작업을 거친다. 빛을 노출시키는 방법과 시간에 따라 흑백 대비가 달라지기 때문에 단 1초도 눈을 뗄 수 없다.

예전 방식 그대로 사진작업을 하기란 녹록지 않았다. 디지털카메라는 1분에 수십 장의 사진을 찍을 수 있지만 원판 카메라는 필름당 한 컷밖에 찍지 못한다. 결정적인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셔터에 손가락을 대고 오랜 시간 숨죽이며 기다려야 할 때도 있다.

“아날로그는 찍는 사람과의 호흡이 중요해요. 긴장된 상태에서 호흡을 맞추고 찍어야 하기 때문에 힘든 과정이기도 하지만 그런 과정을 사진에 담아내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그 한 장의 사진 안에 훨씬 더 커다란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암실에서 수작업으로 인화하기 때문에 사진이 나오기까지는 보통 1~2주일이 걸린다. 인화 작업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다시 전 과정을 반복해야 할 때도 있다. 그는 “빠른 시간에 예쁜 사진을 얻고 싶으면 디지털 사진을 찍으라”고 말한다.

“보정작업으로 예쁘게 만들어놓은 사진보다 5년 후, 10년 후 자신의 지금 진짜 모습을 만날 수 있는 사진을 만들어드리고 싶어요. 그래야 자신이 지나온 시간을 제대로 추억할 수 있지 않을까요?”


물나무사진관에서 촬영한 흑백사진을 보니 시간이 많이 걸리고 불편하더라도 ‘이런 사진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지털 사진에서는 느껴지지 않는, 무언가 거칠면서도 따스한 느낌, 원래 모습 그대로 솔직하게 드러내는 데서 오는 아날로그적인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사진들은 저마다 사연이 있다고 한다.

“20대의 한 여성은 병원에서 시한부 선고를 받고 영정 사진을 찍기 위해 스튜디오를 찾아왔어요. 사진을 몇 번씩 고쳐 찍고 직접 고르는 과정을 거쳤죠. 타인이 오랫동안 기억해줄 모습을 직접 찾아나간 셈이죠.”


웨딩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방문하는 예비 신랑신부, 결혼기념일마다 촬영하러 오는 부부도 있다. 사진관 바로 옆에 있는 물나무다방은 빛바랜 조명과 문고리, 전화기, 시계 등 1970~80년대 다방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소품들로 가득했다. ‘코오피’ ‘센베이’ 등으로 써놓은 메뉴판까지 예스럽다. 그는 이곳을 1930년대 시인 이상이 운영했던 제비다방처럼 소통과 토론의 장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초창기 다방은 지식인들의 아지트로, 새로운 문물을 접하고 토론하는 공간이었습니다. 그런 근대 살롱문화를 되살리고 싶었어요.”

다방 옆에 있는 전시 공간 ‘물나무마당’은 누구나 쉽게 어울릴 수 있도록 옛집의 마당처럼 만들었다. 전시, 공연, 토론을 위한 공간이 되기도 하고, 파티장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어떤 용도로든 그는 “모두에게 열린 공간으로 쓰였으면 좋겠다”고 한다.

“10년 전에 썼던 몽당연필을 우연히 발견했을 때 10년 전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처럼 사진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세월이 지날수록 그 가치를 더해가는 추억을 담아내는 사진을 찍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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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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