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경성역 복원해
복합문화공간이 된 옛 서울역사

글 : 천수림 TOPCLASS 객원기자  / 사진 : 김선아 

옛 서울역이 ‘문화역서울284’라는 복합문화공간으로 개관한 것은 2012년 4월이다. 1925년 경성역으로 문을 열었던 당시를 기준으로 복원해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사료를 통해 원형 복원한 사례는 국내 최초다. 전시와 공연, 교육 등 다목적 공간으로 활용되는 ‘문화역서울284’를 찾았다.

사진제공 : 문화역서울284(www.seoul284.org)
옛 서울역은 1925년 9월 ‘경성역’으로 문을 열었다. 경성역은 당시 대륙역・통과역 역할로 일본-조선-만주-유럽으로 이어지는 국제철도시대의 막을 여는 계기가 되었다. 일본인들은 ‘동양 제1번은 도쿄역이고, 제2번은 경성역이다’라고 호언장담할 정도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남만주주식회사에서 르네상스식 건축물로 신축한 건물은 지붕의 돔과 유럽식 외관으로 장안의 화제였다고 한다. 외관은 붉은 벽돌, 1층 중앙홀은 바닥을 화강암으로 깔고, 중벽은 석재, 벽엔 인조석을 붙였다. 2004년 새로운 민자역사를 신축한 후 폐쇄되었다가 2011년 원형 복원공사를 마친 후 현재 ‘문화역서울284’라는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 중이다.


‘문화역서울284’는 대국민 공모를 통해 선정된 명칭으로 284는 옛 서울역의 사적번호(284)다. 현재 1층은 전시실과 중앙홀, 다목적홀, RTO공연장으로 활용되고 있고, 2층엔 전시실과 세미나룸, 다목적홀과 복원전시실이 있다. 그동안 <근대성의 새 발견> <오래된 미래> <유연한 역사> <환대> 등의 전시와 <경성쌀롱> <현대예술, 만만하게 보기> <소울 트레인> 등의 공연, <고수 푸리> 등의 워크숍, <디자인평론가 최범과 함께 떠나는 문화탐방> 등의 강연으로 대중을 찾았다.


옛 서울역의 모델은 루체른역사


경성역은 도쿄대 건축과 교수였던 츠카모토 야스시 씨가 설계했다. 그는 부산역(1910년)과 한국은행 본점(1912년)을 설계한 건축가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중앙역(1884년)의 네오 로마네스크 양식을 본떠 지은 도쿄역을 염두에 두고 설계했다고 전해진다. 경성역이 르네상스풍 절충주의 양식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경성역이 모델로 삼은 게 스위스 루체른 역이라는 사실도 흥미롭다.

1896년 건축된 스위스의 루체른 역사는 국내선과 국제선 철도의 허브 역할을 맡았던 기차역이다. 아치로 형성된 주출입구와 돔 등 외형이 경성역사와 흡사하다. 현재는 화재로 인해 주출입구의 아치만 남았다.

문화역서울284의 중심공간은 12개의 석재 기둥과 돔으로 구성된 중앙홀이다. 중앙홀에서 눈에 들어오는 것은 천장의 스테인드글라스다. 국기와 봉황으로 장식되었던 스테인드글라스는 한국전쟁 때 파괴되었다가 복원됐다. 그동안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았던 공간이 복원된 후 공개된 것이다.


여성손님을 위해 별도로 마련된 부인대합실, 귀빈을 수행하는 수행원을 위한 귀빈예비실, 역대 대통령이 지방 출장 시 사용했던 공간인 귀빈실은 전시실로 사용 중인데, 대중에게는 처음 공개하는 것이다. 당시 쓰던 벽난로와 타일, 조명은 주문 제작해 그대로 살렸다. 우리나라 최초의 복원전시실은 애초엔 이발소였다. 전시실에서는 서울역사를 원형 복원하면서 나온 벽돌과 나무 등 부자재와 역사적 사료들을 볼 수 있다.

건축가이자 시인이었던 이상이 커피 값이 없어 문 앞에서 돌아섰던 그 커피숍이자 레스토랑 ‘그릴’은 지금 2층 전시장으로 쓰이고 있다. 그릴은 최초의 서양식 레스토랑으로, 식당 내부는 음식을 아래층에서 위층으로 나르던 작은 엘리베이터도 그대로 남아 있다. 바닥도 당시 박달나무 그대로다. 이상의 소설 《날개》에도 이 레스토랑이 등장한다.

“…나는 그래도 경성역을 찾아갔다… 커피-. 좋다. 그러나 경성역 홀에 한 걸음 들여놓았을 때 나는 내 주머니에는 돈이 한 푼도 없는 것을 그것을 깜박 잊었던 것을 깨달았다.”

당시 경성역은 철도역으로서의 기능 외에도 ‘근대적 문물’을 소개하던 근대문화공간이었다는 사실을 짐작케 한다. 당시 이곳에서 데이트를 했던 이들이 찾아와 그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한단다. 문화역서울284의 문화공간운영과 김윤애씨는 “그릴에서 선을 본 후 결혼까지 하셨다는 노부부가 찾아와 공간을 둘러보며 ‘커튼 색이 그때와 다르다’고 말씀하시기도 했어요. 당시 사진이 흑백이어서 커튼 색까지는 구분할 수 없었거든요.”


경성역은 근대성을 담았던 공간


식민지 시절 ‘경성역’은 어떤 의미였을까. 2013년 11~12월 열렸던 전시 <근대성의 새발견:모단 떼끄놀로지는 작동 중>의 디렉터였던 민병직씨의 글에서 짐작해볼 수 있다.

“역사 내부의 각종 신식 공간들, 예를 들어 끽다점(찻집)과 양식당 등은 당시 유행의 첨단을 달리고자 했던 고급문화의 온상들이었고 열차의 작동 자체도 당시의 뭇 사람들에게 근대의 속도감과 기술 문명의 찬탄을 주기에 충분한 공간적 매력을 더한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서구문명의 영향을 받았던 당대 지식인들에게 서울역은 각별한 장소적 감성을 전한 공간이기도 했다.”

기차 역사가 예전에도 다양한 문화공간으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앙홀, 3등 대합실, 1, 2등 대합실, 부인실, 역장실, 귀빈예비실, 서측 복도, 그릴 등 각각의 공간은 과거를 복원한 기억과 현재의 문화공간이 중첩된다. 중앙홀의 ‘질서균형술’, 1・2등 대합실의 ‘근대 이미지와 철도술’, 부인대합실의 ‘근대관광여가술’, 역장실의 ‘근대인물술’ 등을 둘러보다보면 시간의 층위를 경험하게 된다.


부인대합실에 전시되고 있는 ‘근대 관광여가술’에서는 당시 경성이 일본과 유럽 등 세계에 어떻게 비춰졌는지를 알 수 있다.

또 식민지 조선의 관광 이미지를 전파하기 위해 설립된 ‘조선관광협회’ 출장소가 역사 구내에 있었다고 한다.

관람객의 발길을 가장 오래 붙들어두는 공간은 이발소로 쓰던 자리에 있는 2층 복원전시실이라고 한다. 복원전시실 벽은 처음 지었을 때의 붉은색 벽돌과 그 위에 덧바른 시멘트 벽이 공존하고 있다. 사람들은 그 벽 앞에서 무슨 생각들을 그리 하는 것일까.
  • 2014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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