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김종대

우리 전통시장에 색깔을 입히다

글 : 최선희 TOPCLASS 기자  / 사진 : 김선아 

외국여행을 갔을 때 그 나라 사람들의 삶의 향기를 느끼기 위해 찾는 곳이 전통시장이다.
건축가 김종대는 대형마트에 밀려 잊혀가던 우리의 전통시장을 ‘문전성시(門前成市)’로 만들기 위해 신명을 바쳐왔다.

사진제공 : 문전성시사업단(facebook.com/munhwasijang)
미국 시애틀에 가면 관광객들이 빼놓지 않고 들르는 파이크 플레이스 피시 마켓이 있다. 네덜란드의 꽃시장은 입장권을 사고 들어가야 볼 수 있고, 일본 차키야 수산시장의 경매풍경도 훌륭한 관광상품이 되고 있다. 그는 우리나라에도 이런 시장들을 만들기 위해 각각의 시장이 가지고 있는 특성과 ‘스토리텔링’을 활용했다. 수원 못골시장은 시장 사람들이 시장의 이야기를 직접 제작해서 들려주고, 홍성 전통시장은 이 지역 별미인 한우국밥과 육선을 먹기 위해 전국에서 사람들이 찾아온다. 대구 방천시장에 가면 가수 김광석의 자취를 확인할 수 있다.

지금은 문화기획가로도 널리 활동하고 있는 김종대씨(건축디자인연구소 이선(利善) 대표)는 2008년부터 5년간 문화체육관광부의 ‘전통시장 활성화 프로젝트’ 단장으로 일했고, 현재는 ‘2013 문화의 달 행사추진위원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문전성시(文傳成市)’는 문화체육관광부 전통시장 활성화 프로젝트의 이름이었다. ‘문화를 통한 전통시장 활성화 시범사업’의 앞 글자를 따 만든 이름인데, 그는 집 앞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시장을 이룬다는 동음어 ‘문전성시(門前成市)’로 이를 해석했다.

“문전성시 사업을 통해 5년간 23개 재래시장을 활성화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건축, 도시, 마케팅, 스토리텔러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컨설팅단으로 활약했습니다. 각 지역의 특성을 살린 문화 프로그램으로 시장의 활기를 되찾자는 목표였어요. 전통시장이 개성 있는 문화를 파는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건축가인 그는 어떻게 시장을 활성화시키는 문화기획자가 되었을까. 그 기억은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 내자동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어머니와 함께 시장을 드나들던 소년이었다.

“내수동은 왕실에서 쓰는 물건을 공급하던 관아인 내수사가 있던 곳인데, 할아버지가 궁에 물건을 대는 일을 하셨다고 들었어요. 집안 비화인데, 할머니가 궁녀 출신이었다고 해요. 어릴 때 어머니를 따라 시장에 가서 도넛을 얻어 먹곤 하던 기억이 남아 있어요. 시장은 제 유년시절의 기억 중 큰 부분을 차지하고, 이 때문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된 것 같아요.”

‘문전성시’ 프로젝트로 되살아난 시장.
그는 파키스탄에 봉사하러 가면서 건축가로서의 사회적 책임에 눈을 떴다 한다.

“비행기가 몹시 흔들렸는데 문득 ‘건축가로서 난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서울로 돌아와 우연히 농촌관광대학에서 부래미마을 지도자를 만났고, 재능기부 형태로 농촌체험시설에 대한 디자인 컨설팅을 하게 되었죠. 그 대가로 옥수수 같은 농산물을 받았는데 더없이 좋더라고요.”

그 경험은 ‘문전성시’ 프로젝트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는 여러 프로젝트 중에서도 수원 못골시장이 특히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했다.

“수원 못골시장에는 ‘못골온에어’라는 시장 라디오방송이 있었는데, 상인들이 직접 DJ를 맡아 시장 상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죠.”

‘못골온에어’는 장애우들을 위한 라디오 체험교육 프로그램도 개발해 진행했고, 지역주민들을 모아 초청한 사랑방 모임도 했다. 듣는 라디오뿐 아니라 보이는 라디오시스템을 구축하고, 아프리카TV 등을 통해 인터넷으로 송출하기도 한단다. 프로젝트 후 눈에 띄게 바뀐 것은 간판이었다. 시장 상인들의 숨은 이야기가 간판의 그림이 되었다. 간판을 보면 자녀가 복싱선수인 은하잡곡 아줌마, 뮤지컬 배우를 하는 은실이네 야채가게, 시장 상인의 아들이 하는 쉼터분식 등 이야기가 숨어 있다.

“시장에서는 같은 상품을 파는 상인들끼리 경쟁관계가 되잖아요? 프로젝트를 하면서 공동체로서의 의식을 갖게 하는 ‘관계형성 프로그램’을 가장 중시했습니다.”

여행객들이 자주 찾는 충남 홍성 전통시장은 지역 먹거리를 브랜드화했다. 한우로 유명한 홍성의 특징을 살린 것이다.

“한우국밥집은 대부분 오래된 가게들이었어요. 고기를 직접 파는 정육점과 음식점이 모여 있는 곳은 육선(肉饍 : 六選) 거리로 만들었지요.”

한우국밥거리, 한우육선거리, 바지락칼국수거리 등 먹거리별로 특성을 살려 거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홍성 전통시장에서 경매를 통해 구입한 고기를 육선거리의 식당에서 먹을 수 있도록 했다.

김광석 벽화로 유명해진 대구 방천시장.
그는 쉽지 않았던 프로젝트 중 하나로 대구 방천시장을 떠올린다. 지금은 김광석 벽화와 대구 골목길 투어 코스로 유명세를 치르고 있지만, 대부분 연로한 상인들이 지키고 있어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2년여 동안 큰 변화가 없었다.

“방천시장의 역사, 이야기, 상인들의 이야기를 스토리텔링화해서 예술의 이미지를 심으려고 노력했어요. 서울과 대구 지역 대학생 40여 명이 시장에 머무르면서 작업을 했죠. 그 후 김광석이 살았던 마을이 시장 근처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김광석이 어릴 적 이 시장을 다녔을 것이라고 추측하면서 ‘김광석 다시 그리기’ 벽화 작업을 했어요. 그리고 대구 근대 골목길 투어의 한 코스로 편입시켜달라는 제안을 했죠.”

방천시장은 그 후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곳이 되었다고 한다. 현재 시장 프로젝트는 끝났고, 이제 지역민들과 함께 꾸려갈 일이 남아 있다.

“400년 역사의 교토시장은 고등어회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내륙지역인 이곳에서 어떻게 고등어회가 명물이 되었을까요? 이 안에는 귀족들의 이야기가 숨어 있어요. 고등어를 먹고 싶어 하는 귀족들을 위해 항구에서 교토까지 오는 동안 고등어가 상하지 않도록 소금을 쳤죠. 우리의 안동 고등어와 비슷한 거지요. 지금도 이곳에서는 고등어길 축제가 열려요. 그걸 되살린 게 스토리텔링의 힘입니다.”

옛집을 리노베이션 한 서귀포 커뮤니티센터.
그는 제주 서귀포시의 유토피아 커뮤니티센터(UCC)를 레노베이션해 서귀포 주민의 옛 기억을 살려내고 있다. 1950년대에 지어진 초가집을 커뮤니티센터로 활용하면서 옛날 창문이 있던 자리에는 ‘창문이 있던 곳’, 마당이 있던 자리에는 ‘마당’이라고 써 붙였다.

“저보고 본업인 건축설계는 언제 하느냐고 물어요. 시장을 살리는 일도, 집을 짓는 일도 결국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서 실현하는 일이라 즐거움을 느낍니다. 어떤 집이든 집을 짓는 과정은 하나의 축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는 10월 중순,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린 행사 <나도 예술가, 여기는 문화마을>에서 지역공동체의 생활문화 사례를 보여줬다.

“우리 모두 문화생산자가 되자는 취지입니다. 프랑스에서 나온 ‘문화민주주의’라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는 언제나 공동체를 생각하는 건축가로 남고 싶다고 한다.
  • 2013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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