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한 ‘순흥기지떡’ 대표

고려 때부터 내려오는 떡을 지역 명물로 만들다

글 : 천수림 TOPCLASS 객원기자  / 사진 : 김선아 

‘서리꽃처럼 희고 아름답다’는 뜻을 지닌 떡, 상화병(霜花餠). 고려가요에도 등장할 정도로 오랜 역사를 지닌 전통 떡으로, 우리말로 기지떡·기주떡으로도 불리는 떡의 전통을 2대째 잇고 있는 곳이 있다. 경북 영주 부석사 근처의 시골마을인 순흥을 ‘기지떡’의 고장으로 만든 ‘순흥기지떡’ 김주한 대표를 만났다.
고려시대 때 원(元)나라에서 유래한 기지떡은 쌀에 술을 넣어 발효시킨 떡으로, 부르는 이름도 여러 가지다. 《음식디미방》 등 조선시대 책에는 증편 또는 기증병・이식병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데, 지방에 따라 증편・기지떡・술떡・벙거지떡・징편 등 다양하게 불렸다. 달콤한 술맛이 나는 이 떡의 정체성을 가장 잘 말해주는 이름은 ‘양반떡’으로, 양반가에서 즐겨 먹는 음식이라 해서 붙여진 별칭이다. 경북 영주시에 있는 순흥은 지금 작은 시골마을이지만 조선시대에는 충북 단양과 강원도 영월, 경북 예천・울진 등을 관할하는 순흥도호부가 있던 곳으로, 단종복위를 꾀했던 금성대군의 유배지로도 유명하다. 양반문화가 위세를 떨치던 곳이니만큼 음식문화도 발달했다.

영주 부석사 근처의 순흥마을에서 대를 이어 기지떡을 만들고 있는 ‘순흥기지떡’ (www.순흥기지떡.kr) 김주한 대표(49)의 어린 시절 기억에도 기지떡은 아주 예쁜 떡이었다. 기지떡에는 맨드라미 등 꽃잎과 검은깨 같은 곡물, 차조기 잎(소엽) 등 식물의 잎을 얹거나 석이버섯, 대추 등을 고명으로 올려 기품을 더했다. 부드럽고 촉촉한 촉감에 술 냄새가 은은하게 감도는 게 특징으로, 발효 숙성시킨 떡이라 여름에도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저 어릴 적에는 집집마다 맨드라미꽃이 피어 있었는데, 이 꽃잎을 고명으로 올려 떡을 쪄냈어요. 고명이 화려할 뿐 아니라 발효 숙성시키는 과정을 거치면서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어가는 떡이라 서민이 해먹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가 어머니 장화복씨와 함께 떡을 만든 지는 20년 정도 되었다.

“안동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셨던 아버지가 퇴직하신 후 순흥의 떡방앗간을 인수해 떡을 만들기 시작하셨어요. 쌀을 가져오면 떡을 쪄주는 아주 작은 동네 떡집이었죠. 그런데 어머니가 만드시는 기지떡이 맛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이 지역뿐 아니라 먼 곳에서 일부러 찾아오시는 분들이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20여 년 전부터는 아예 기지떡과 인절미로 특화해서 만들었어요. 어머니가 연로해지시면서 제가 자연스럽게 뒤를 이었고요.”


둘째인 그가 가업을 이은 것은 어린 시절부터 유난히 우리 떡에 애정이 깊었기 때문이다. 그는 쌀세척기 등 기계를 직접 만들어 떡 만드는 과정을 반자동화하고, 2년 전 공장을 현재 위치로 옮겼다. 그는 전통을 고수하면서도 제작과정을 효율화하는 방법을 연구, 기계를 설계하고 떡을 써는 칼과 받침대도 손수 만들었다. 고객들이 기지떡을 미리 맛보고 사갈 수 있도록 한옥으로 ‘순흥병관’을 지었는데, 편액의 글씨는 서예가에게 부탁했다.

“멀지 않은 곳에 선비촌이 있어 그 이미지와 잘 어울리는 한옥으로 병관을 짓고 싶었어요.”

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 전국에서 택배로 주문하는 사람이 많아졌고, 작은 시골마을이었던 순흥은 이제 ‘기지떡’ 고장으로 부각되고 있다. 규모가 점점 더 커지면서 요즘은 다른 형제들도 이 일에 참여하고 있는데, 안동에도 판매점을 냈다.

“택배 주문 물량의 60% 정도를 서울, 경기지역에서 받습니다. 나이가 드신 분들이 떡을 좋아할 것이라는 생각과 달리, 실제로는 젊은 사람이 더 많이 찾아요. 원래는 어머니 성함을 따서 ‘장화복떡마을’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손님들이 ‘순흥기지떡’이라고 부르면서 자연스럽게 그 이름으로 굳어졌지요. 저희 떡을 찾아주시는 분들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입니다.”

그는 순흥기지떡의 인기에 대해 “특별한 비법은 없다”고 말한다.

“어머니가 떡을 만드시던 원칙 그대로를 따르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좋은 재료를 쓰는 것이고, 그다음은 위생과 환경에 늘 신경을 쓰는 것이지요. 기본을 잘 지키는 게 비법이라면 비법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쌀값도 오르고, 고명 값, 인건비가 많이 올랐다. 하지만 좋은 재료를 쓰겠다는 원칙은 늘 고수하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이 지역의 멥쌀과 찹쌀만 쓰는데, 연간 수천 가마니를 소비하니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바도 크다고 자부한다. 가을에 햅쌀이 나올 무렵 물량을 미리 확보한다. 맛의 비결은 쌀과 막걸리, 물의 배합 비율이다. 떡 만드는 과정 중 가장 중요한 게 반죽이다. 연로하신 부모님도 반죽할 때는 직접 나와서 보실 정도로 가장 신경을 많이 쓰는 부분이다.

술을 넣고 발효시키는 데 10시간 정도 걸린다. 그중 6시간은 눈을 떼지 않고 지켜봐야 한다. 발효 온도도 중요해 실내온도를 25℃로 일정하게 유지한다. 반죽을 삭히는 과정에서 알코올과 젖산이 생기는데, 기지떡의 맛과 향이 여기서 결정된다. 발효가 끝나면 고명을 얹은 후 사각 채반에 베보자기를 깔고 쪄낸다. 안동·영주 등을 비롯한 경북 북부지역에서 기지떡은 지금도 잔치나 행사, 제례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음식이다.

“집안 행사에 쓴다면서 특별한 고명을 얹어달라는 맞춤 주문도 들어와요.”

초여름에서 추석까지 잔치나 제례에 쓰이던 음식이 이젠 현대적인 형식의 ‘파티음식’으로도 변모하고 있다. 일본의 화과자 명가 오오테마주, 셴슈안 총본가, 뉴욕의 디저트 가게 베니에로, 이탈리아 젤라토 팔라초는 모두 100년 이상 가업을 이어온 명가들이다. 이곳들은 그 나라뿐 아니라 세계인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순흥기지떡 역시 안동이나 영주를 여행할 때 빼놓지 않고 들르는 명소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 2013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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