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의 세계 / 조사전문가

대중의 속마음을 분석해내는 전문가

글 : 라일락 명예기자(이화여대 4)  / 사진 : 김선아 

지하철에 앉아 맞은편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문득 호기심이 일 때가 있다. ‘저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다. 연거푸 쳐다봐도 사람들의 마음은 읽히지 않는다. 마음은 꽁꽁 숨겨져 있는 미지의 세계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도통 알 수가 없다. 타인이 아닌 자신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소란조차 눈치채지 못할 때가 많다. 정치인이나 기업가에게는 사람의 마음을 아는 일이 특히 중요하다. 마음을 알아야 그 마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조사는 감춰져 있는 사람들의 속마음을 읽기 위한 방법이다. 선거철 신문의 머릿기사에 실린 후보별 지지도, 상품 광고에 큼지막하게 적힌 ‘선호도 1위’ 문구는 모두 조사를 통해서 나온다.
‘손님이 왕’이라는 말은 비단 서비스업계에서만 통용되지 않는다. 요즘 기업은 소비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출시할 때 소비자 의견을 적극 반영한다. 정치에서도 여론의 영향력이 날로 막강해지고 있다. 선거 전략이나 정책을 세울 때에도 여론의 향방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소비자, 국민의 힘이 커지면서 그들의 의견을 알아보는 조사전문가의 손길도 바빠지고 있다.
조사전문가는 계획과 실행, 분석까지 조사의 전 과정을 담당하는 사람이다. 조사하는 분야에 따라 시장조사전문가와 여론조사전문가로 나뉜다. 시장조사전문가는 기업에게 의뢰를 받으며, 여론조사전문가는 정부나 공공기관, 정당, 언론사 등이 주요 고객이다. 조사의 내용에도 차이가 있다. 시장조사전문가가 서비스 만족도나 상품 인지도, 소비자의 특성에 대한 조사를 한다면, 여론조사전문가는 선거나 정책에 대한 의견을 조사한다. 대개의 조사전문가는 조사전문기업에서 일한다. 현재 우리나라에 조사전문기업은 20여 곳이 있으며, 10명이 근무하는 중소기업부터 200여 명의 조사전문가를 둔 대기업까지 규모는 천차만별이다. 조사전문기업에서 조사전문가는 흔히 ‘연구원’이라 불린다. 시장조사전문가는 조사전문기업 외에 일반 기업의 마케팅 전략 부서나 광고대행사에서 근무하기도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응답이 모여 일목요연한 자료가 되기까지는 크게 계획, 실행, 분석의 세 단계를 거친다. 조사 의뢰가 들어오면 가장 먼저 조사대상을 정하고, 설문지를 만든다. 설문지 제작이 끝나면 조사전문가는 현장에서 조사를 실시할 설문조사원에게 설문방법과 절차를 주지시킨다. 전화나 이메일, 면접 등을 통한 조사가 마무리되면 통계분석 프로그램을 이용해 조사결과를 분석하고, 보고서를 작성해 의뢰인에게 제공하거나 국민에게 알린다. 조사기간은 의뢰인의 요구에 따라 달라지며, 조사계획에서 분석까지 짧게는 2주, 길게는 2개월 정도 걸린다. 여러 업체가 조사 의뢰를 받기 위해 경쟁을 벌이는 경우 조사제안서를 작성하고, 조사계획을 담은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하는 과정이 추가된다.

주어진 기간 내에 조사를 끝내야 하기 때문에 조사전문가는 쉴 틈이 없다. 조사의 모든 과정에 관여하는 만큼, 업무량 또한 방대하다. 하지만 현직 조사전문가들은 많은 사람의 의견을 모아 명확한 수치로 나타낼 때 느끼는 희열, 조사 분석을 통해 선거나 신제품 개발 등 중요한 사안에 기여한다는 보람이 있기에 업무가 즐겁다고 말한다.

조사전문가는 설문지 작성법, 조사대상 표집방법 등 기본적인 조사 방법을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숫자와 친해지는 것도 중요하다. 숫자로 이뤄진 통계를 보고, 유의미한 결론을 도출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컴퓨터 통계분석 프로그램을 능숙하게 다룰 줄 알면 업무처리가 한결 수월해진다. 조사 분야의 이슈도 놓치지 않고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시장조사전문가는 마케팅·경영 분야, 여론조사전문가는 사회·정치·경제 전반의 현안에 대해 늘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한다.

조사전문가는 회사 안팎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하는 직업이기도 하다. 회사 안에서는 팀을 이뤄 일하며, 여러 명의 설문조사원을 감독해야 한다. 또 회사 밖에서는 조사 의뢰와 관련해 다양한 분야의 기업인, 정치인과 만난다. 이들에게 타인과 원활하게 소통하는 능력이 필요한 이유다. 현직 조사전문가들은 기간 안에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직업의 특성상 초과근무와 야근이 잦기 때문에 건강관리도 철저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귀띔한다.

조사전문가를 꿈꾼다면 다양한 학문의 기초지식을 쌓아두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일의 범위가 넓은 만큼 조사에는 경영학, 정치학, 신문방송학, 사회학, 통계학 등 다양한 학문적 지식이 총동원된다. 최근에는 심리학을 이용해 답변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심리를 읽어내는 고급 분석도 일반화되고 있는 추세다. 취업 전에 조사전문기업에서 설문지 조사나 설문결과 정리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생생한 현장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시행하는 국가자격시험인 사회조사분석사(1·2급) 자격증을 따두면 취업 시 우대받을 수 있다. 응시과목으로는 조사방법론, 사회통계, 사회조사실무 등이 있으며, 자세한 준비사항은 한국산업인력공단 ‘Q넷’ 홈페이지(http://www.q-net.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topclass〉는 조사전문기업인 ‘리얼미터’ 조사분석실에서 근무하는 정승호 실장을 만났다. 인터뷰가 진행되던 날도 프레젠테이션 준비로 여념이 없던 그는 잠시 숨을 고른 뒤 자신의 숨 가쁜 하루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시장조사와 여론조사 함께 다루는 일당백’ 조사전문가 정승호의 하루

나는 호기심이 많다. 통계학과에 입학했지만, 대학교에는 전공 말고도 관심을 끄는 일이 무척 많았다. 교내 방송부원으로 활동하기도 했고, 사회를 바꿔보겠다는 열망을 품고 사회운동도 했다. 제대 후 친구들이 모두 취업한 나이에도 길 잃은 사람처럼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지도교수의 추천으로 조사전문기업에 입사했고, 스물여덟 살 때 내 길을 찾았다.
조사전문가로 일하면서도 특유의 성미는 변하지 않았다. 시장조사 부서에서 근무할 때는 뷰티, 전자제품, 식자재 등 다양한 분야의 시장조사를 담당했고, 조사전문기업을 나와 인터넷 포털사이트 마케팅팀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1년 전, 대학시절부터 관심이 많았던 정치 분야를 다루고 싶은 마음에 여론조사에 특화된 조사전문기업 ‘리얼미터’로 자리를 옮겼다. 현재 ‘리얼미터’ 조사분석실에서 시장조사와 여론조사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오전 9시,
여의도에 위치한 사무실로 출근하면 귀에 익은 목소리가 나를 반긴다. 뉴스 전문채널 앵커의 목소리다. 사무실 한쪽에 놓인 TV에서는 퇴근할 때까지 뉴스가 방송된다. 다방면의 이슈를 실시간으로 접하기 위해서다. 매일 아침 책상에는 언론사별 일간지가 쌓여 있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여러 분야의 기사를 놓치지 않고 꼼꼼히 읽는다.

14년간 조사전문가로 일하면서 여러 분야의 고객을 만났다. 고객의 요구를 정확히 이해하고, 그에 맞는 조사와 분석을 하려면 여러 분야의 트렌드를 꿰고 있어야 한다. 업무 중간중간에 정부기관 SNS에 접속해 세미나 정보를 확인하고, 담당하고 있는 조사와 관련 있는 세미나가 있으면 짬을 내어 참관하기도 한다.

오전 11시,
팀원들과 모여 며칠 뒤에 있을 프레젠테이션을 위한 회의를 진행한다. 규모가 큰 기업이나 정당의 조사를 담당하려면 다른 조사전문기업과의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조사제안서와 프레젠테이션이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고객에 대해 수집한 정보를 공유하는 일이다. 제안서와 프레젠테이션의 앞부분은 고객에 대한 설명으로 채워진다. 기업이 고객일 경우에는 기업의 제품이나 서비스, 정부기관일 경우에는 기관의 업무와 역할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모든 팀원이 고객에 대해 충분히 이해했다고 판단되면 최적의 조사방법을 모색한다. 조사기간은 얼마나 걸릴지, 조사대상을 어떤 방법으로 선정할지, 조사비용은 어느 정도 들지를 둘러싸고 팀원들의 고민이 시작된다.

조사대상 선정은 제일 공을 들이는 부분이다. 조사의 정확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한두 가지 조건을 토대로 선정대상을 정했지만, 갈수록 선정대상을 세분화하는 추세다. 성, 연령, 지역, 소득수준 등의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선정대상을 설정한다. 3시간에 걸친 회의 끝에 조사계획의 윤곽이 잡히면 업무를 분담해 각자 자리로 가서 조사제안서와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만든다.

오후 3시,
늦은 점심을 먹고 자리로 돌아와 파일을 뒤적인다. 잠시 후 설문조사원 오리엔테이션이 있기 때문이다. 내일부터 실시할 여론조사의 진행을 맡은 설문조사원이 회사에 도착하면 준비한 자료를 가지고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한다. 조사를 시행하는 기관과 조사의 목적을 알린 후, 설문지를 함께 보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질문의 순서, 설문조사원의 억양처럼 사소한 요소도 조사결과에 막대한 차이를 가져올 수 있다. 설문조사원이 특정 후보의 이름을 강한 어조로 말하거나 설문지에 있는 단어와 다른 단어를 사용할 경우, 응답자의 답변은 달라진다. 조사 실시에 앞서 설문조사원과의 면담이 필요한 이유다. 각 문항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고, 문항에 쓰인 단어의 의미도 명확히 한다. 설문조사를 할 때 주의해야 할 사항에 대해서도 미리 알린다.

오후 4시,
설문조사원이 돌아가면 전산 전담부서로 발걸음을 옮긴다. 얼마 전 진행한 전자제품 기업의 신제품 관련 조사 분석을 위해서다. 조사업무가 여러 과정을 거치는 만큼, 조사전문가마다 좋아하는 과정이 다르다. 조사의 세세한 사항을 계획하는 과정에 흥미를 느끼는 전문가가 있는가 하면, 조사결과를 분석하고 평가하는 데서 즐거움을 느끼는 전문가도 있다. 나는 후자다.

한 사람에게는 다채로운 모습이 공존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의 특징을 하나로 단정 짓기는 어렵다. 통계도 그렇다. 얼핏 보면 숫자로 이뤄진 견고한 조합 같지만, 하나의 통계자료 속에는 무궁무진한 사실이 숨어 있다. 각 문항을 어떻게 연결시키느냐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인지도, 선호도 같은 기본적인 분석결과가 만연해 있는 상황에서 고객이 원하는 것은 좀 더 내밀한 정보다. 사람들의 마음속 좀 더 깊은 곳을 들여다보기를 원하는 것이다. 뻔하지 않은 결과를 도출해 내려면 여러 방식의 조사 분석을 총동원해야 한다. 선입견을 갖지 않고 통계자료 안의 여러 요소를 다양하게 연결해봐야 하는 것이다.

오후 7시,
통계분석 프로그램을 여러 차례 실행해본다. 통계분석을 하다 보면 신기한 결과와 맞닥뜨릴 때가 있다. 설문조사를 할 때 사람들은 여러 선택지 중 하나를 택하지만, 자신이 그 선택지를 고른 이유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가장 앞 번호의 선택지라거나 눈에 익은 선택지라는 이유로 실제 자신의 생각과는 다른 선택지를 택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통계를 통해 결과를 분석해보면 응답자의 진짜 생각이 보인다. 응답자 자신조차 인식하지 못한 내면의 심리를 알게 되는 것이다.

의미 있는 결과가 나왔다고 판단되면 조사보고서를 쓴다. 보고서에는 조사과정과 내용, 응답을 통해 도출된 결과를 적는다. 결과를 통한 방향성 제시도 중요한 부분이다. 고객이 고민하는 사안이 있다면 조사결과를 근거로 개선책을 제시하기도 하고, 조사결과 문제점이 발견된다면 그에 대한 해결방안을 모색하기도 한다. 조사전문가라고 하면 단순히 조사를 담당하는 사람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조사를 통해 현재의 상황을 보여줌으로써 고객의 변화를 이끄는 컨설턴트의 역할도 함께해야 한다. 퇴근시간은 이미 지난 지 오래다. 업무가 바쁜 요즘, 퇴근시간은 큰 의미가 없다. 한정된 시간에 모든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직업의 특성상 밤을 꼬박 새는 일도 허다하다. 하지만 오랜 시간을 들인 덕분에 오늘도 새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오후 11시,
완성된 보고서를 파일로 저장해둔 후, 회사를 나선다. 몸은 녹초가 다 됐지만, 노력한 만큼 세상의 변화에 기여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가뿐하다.


나는 조사의 세계에서 산다. 하루에 여러 건의 조사가 내 손을 거쳐 가고, 내 손길을 통해 다듬어진다. 가끔씩 내가 사는 조사의 세계란 어떤 모습인지 생각해본다. 딱딱한 그래프와 구획이 잘된 표로 이루어진 세계일까? 아니다. 내가 그리는 조사의 세계는 한시도 멈춰 있지 않는 변화무쌍한 세계다. 세상의 크고 작은 변화를 눈여겨보면 그 안에는 어김없이 치밀한 조사의 과정이 숨어 있다. 거실에 놓여 있는 TV만 해도 그렇다. 두꺼운 테두리로 둘러싸여 있던 화면이 점점 넓어지기 시작하더니 테두리가 거의 보이지 않는 꽉 찬 화면으로 바뀌었다. 7년 전 TV 화면과 관련된 설문조사를 담당하면서 소비자들이 크고 넓은 화면을 선호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변화하는 TV 모니터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하는 일의 의미를 깨달았다. 조사전문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모아 변화를 만드는 사람이다. 숫자 안에 숨은 마음을 찾는 내 손길은 바쁘다.
  • 2013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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