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전문 도서관,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

현대디자인의 역사 보며 사색할 수 있는 공간

글 : 천수림 TOPCLASS 객원기자  / 사진 : 김선아 

창덕궁 후원에는 효명세자가 책을 읽고 사색을 즐겼다는 ‘기오헌(奇傲軒)’이 있다. 그는 기오헌 뒷문을 통해 규장각으로 갔다. 사색의 공간에서 도서관으로 이어지는 산책길, 최근 북촌 한옥마을인 가회동에도 기오헌처럼 ‘영감(靈感)’을 얻을 수 있는 ‘디자인 라이브러리’가 문을 열었다. 현대카드의 야심작,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를 찾았다.

사진제공 :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 www.hyundaicard.com
전면 유리창을 통해 빛을 끌어들인 서가.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이하 라이브러리)는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있는 동네인 가회동에 위치해 있다. 조선시대 가회동은 상류층 양반들의 주거지였다. 지금은 박물관과 화랑, 공방, 카페, 패션숍이 이어진 문화예술거리로 변모했다. 서울 도심에서 살짝 비껴나 있는 덕분에 천천히 걸으며 사색할 수 있는, 보기 드문 길이다. 디자인 라이브러리도 이런 북촌 한옥마을의 ‘아날로그적인 정서’를 이어가고 있다.

01. 2층 서가.
02. 세계의 희귀본 서적과 컨템포러리 아트컬렉션, 뮤지엄북을 볼 수 있는 코너.
지난 2월 문을 연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는 국내에서는 유일한 디자인 전문 도서관이다. 라이브러리는 바우하우스(Bauhaus) 이후의 디자인을 조망한 1만1498권의 국내외 도서를 보유하고 있다. 전체 도서 중 70% 이상은 국내에서 처음 선보이는 책들이고, 3000권가량은 절판본이나 세계적으로도 희귀본이다. 1928년 이탈리아에서 창간된 건축디자인 전문잡지 〈도무스(DOMUS)〉, 포토 저널리즘에서는 전설로 여겨지는 〈라이프(LIFE)〉 매거진의 전질이 눈길을 끈다. 전질이 보관되어 있는 라이브러리는 세계에서도 손꼽힌다 한다. 세계적인 아트북 출판사인 파이돈, 타셴의 한정판 화집과 도서도 볼 수 있다.

한옥의 중정 개념을 살려 ㅁ자형 뜰을 내다볼 수 있게 디자인 했다.
도서관에 비치된 책 선정은 현대카드 디자인랩(Design Lab)과 전문가들로 구성된 글로벌 북 큐레이터들이 함께했다 한다. 뉴욕현대미술관(MoMA) 수석 큐레이터인 파올라 안토넬리가 참여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도서관이 던지는 화두는 ‘책을 통한 몰입의 시간’과 ‘디자인을 통한 라이프스타일 제안’이다. 책만이 갖고 있는 물성은 온라인에서 맛볼 수 없는 오감을 자극하는데, 책 읽는 행위 자체에 대한 순수한 몰입을 경험할 수 있게 한다. 넓은 의미에서 디자인은 새로운 삶의 양식과 의미를 만들어내고 전달하는 것이다. IT 혁명을 선도했던 스티브 잡스 역시 디자인을 “사람이 만든 창조물의 근원적인 영혼”이라 규정한 바 있다. 현대카드가 라이브러리를 만든 이유는 이처럼 몰입의 시간을 경험함으로써 잊힌 삶의 가치를 회복하고, 지적인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

01. 금속으로 새롭게 디자인한 전통 서가.
02, 03. 작은 다락방 기오헌. 명상하기 좋은 장소다.
라이브러리는 근대 디자인 정신이 태동된 바우하우스를 출발점으로 삼았다. 일상이 곧 디자인임을 선언하고 실천했던 바우하우스는 1919년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가 설립, 근대의 새로운 이상을 추구한 학교였다. 바우하우스가 학교이면서 하나의 운동으로 인식된 이유는 산업혁명으로 기계가 도입되던 시기, 옛 관습에서 건축과 디자인의 언어를 해방시키고 기술과 예술을 통합했기 때문이다. 바우하우스는 채 15년을 넘기지 못하고 나치의 박해로 문을 닫았지만 사진과 가구, 디자인, 건축 등에서 큰 족적을 남겼고, 미국과 유럽 등 전 세계에 영향을 미쳤다.

큰 책을 펼쳐놓고 보기 편한 책상.

한옥의 정신을 담고 있는 공간

옛 한옥의 정갈한 정취를 품고 있는 라이브러리는 지상 1, 2층에 연면적 495㎡(150평) 규모다. ㄷ자형 구조로 중정을 중심으로 1층은 북 카페와 전시장, 2, 3층은 서재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나라 건축에서 집은 하나의 덩어리가 아니라 작은 공간들이 모여서 만든 집합체 같은 성격이 강하다. 라이브러리도 기존 공간에 역동적인 작은 공간들을 끼워 넣음으로써 각기 다른 성격의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다.

집 속의 집 개념을 도입, 아늑하게 만든 공간.
집 안에 들어와 책을 읽는 것 같은 아늑한 느낌의 ‘집 속의 집’과 함께 읽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랑방 개념의 서재, 중정 등이 그 성격을 구현하고 있다. 게다가 책의 보존과 아늑한 공간감을 위해 빛의 각도까지 계산해 배치한 서가에서는 자연광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책을 보는 의자는 중정을 향해 있어 한결 여유롭다. 한옥과 모던한 건축양식이 결합된 이 라이브러리의 건축설계는 건축가 최욱(50·원오원 건축소장)씨가 맡았다. 옛 서미갤러리가 있던 공간을 라이브러리로 레노베이션한 그는 학고재갤러리와 두가헌 등 옛 건물을 현대적인 공간으로 레노베이션한 경험이 있다. 그는 창덕궁 기오헌의 정신을 이 라이브러리에 접목했다고 한다. 기오헌은 “남창에 기대어 마음을 다잡아보니 좁은 방안일망정 편안함을 알았노라”는 도연명의 귀거래사에 등장하는 이름이다. 3층의 작은 다락방인 기오헌은 ‘꿈은 크되, 겸손하라’는 정신을 담고 있다. 창을 통해 한옥 지붕이 보이는 이 공간은 마치 선방처럼 조용히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한다.

창가를 향해 의자를 놓았다.
2층 서가의 ‘집 속의 집’은 한정된 공간에 또 하나의 공간이 삽입됨으로써 내부이자 외부, 외부이자 내부인 독특한 공간이다. 그는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숨어 있는 공간인 ‘동굴’의 느낌을 살리고 싶었다고 한다. 은근히 드러나는 아름다움을 지향하는 그의 생각은 라이브러리의 서재 가구에서도 드러난다.

전시공간인 1층.


패션디자인의 재해석.
그는 2층 서재에 있는 커다란 테이블도 직접 디자인했다. 철판 테이블이지만, 못을 사용하지 않고 결구만으로 만드는 전통 서가의 느낌이 살아 있다. ‘책이 중심인 공간’을 만들고 싶었던 건축가의 생각이 잘 반영된 오브제다. 이 테이블의 디자인은 무겁고 판형이 다양한 디자인 관련 서적을 편안하게 펼쳐놓고 볼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무겁고 큰 책을 보기에는 푹신하고 큰 소파보다 넉넉한 사이즈의 테이블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했다 한다. 그는 책꽂이 디자인에도 참여했는데, 서가의 선을 비스듬하게 만들어 책이 꽂혀 있는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게 한 점이 특이하다. 2층 서재에서는 매달 특정 주제를 중심으로 희귀본을 전시하고, 〈라이프〉지도 매달 교체되어서 꽂힌다.

수제 책 〈LOVE AUGUST 2002〉.


현대미술작가들이 자신의 이미지를 소리로 만든 〈SOUND〉.
현재 1층 전시 코너에서는 오피니언 리더들로부터 ‘프린트된 갤러리’ ‘잡지계의 오트 쿠튀르’ ‘패션과 예술의 텍스트 없는 출판물’ 등으로 찬사를 받고 있는, 뉴욕에서 창간된 한정판 무크지 〈비저네어VISIONAIRE〉 전시가 열리고 있다. ‘심미적인 가치를 지닌 시대를 초월한 책이어야 한다’는 라이브러리 큐레이팅의 원칙 중 하나다. 이 말은 어쩌면 책을 고를 때의 기준만은 아닐 것이다.

‘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생각을 하다 보면 자신의 생활과 앞으로의 삶에 대해 ‘디자인’할 수 있는 지혜를 얻을 것이다.

tip

현대카드 회원(동반 1인)에게만 개방(월 8회까지 무료)된다.
운영시간은 화~토요일은 오후 1~10시이며, 일요일은 오전 11시~오후 6시(월요일은 휴관).
  • 2013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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