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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부부가 산골에서 부치는
편지] 숲골짜기에 온 바다

글 : 이상희 

그림 : 원재길
동해 바닷가에 있는 선배 댁에서 1박2일 문학회 동문 모임하는 주말, 바다가 고향인 사람은 평창을 지나면서부터 차창을 내리고 코를 킁킁댔습니다. 바닷가에서 태어나 자란 이들이 이구동성 내뱉는 탄식인즉슨 “적어도 한 해에 한 번은 바다를 봐야 해!”라는 것이니, 지금 달려오고 있는 선후배들이 모두 이러지 싶으면서요. 주문진 어시장 근처 집합 장소에 도착하니 과연 바다 내음을 맛나게 들이키는 듯한 삼삼오오가 보입니다. 밀린 안부를 나누고, 지역 주민이 추천하는 맛집에서 점심을 먹고, 잠깐 산책하자는 게 어시장 구경 겸 저녁거리 장보기가 되었습니다.

“우리 가게 생선이 더 싱싱해요!” “싸게 해드릴게요!” 손님 불러 세우며 이러쿵저러쿵 흥정하는 열기와 매운 바닷바람을 즐기며 열다섯 사람이 어시장 골목을 줄레줄레 걷습니다. 온갖 생선이 펄떡이는 어물전 구경이 얼마 만인지 모릅니다. 생선을 하나하나 가리키며 이름이며 조리법이며 맛을 설명해주던 내 어린 손 잡은 아버지며 그즈음 질척거리던 자갈치 어시장 골목이 문득 떠오르기도 하고, 노천 횟집과 조개구이 집 간이 식탁마다 옹기종기 둘러앉은 낯선 가족들의 얼큰한 식사를 엿보며 몇 해 전 언제인가 딸아이와 내외가 함께 했던 비슷한 장면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러는데 때마침 남편에게서 문자 메시지가 날아듭니다. “싱싱하고 맛난 생선 좀 사오세요.^^” 생각해보니 이즈음 숲골짜기 집 냉장고에 생선이 떨어진 지 한참 되었습니다. 해마다 서너 번쯤 이쪽으로 취재 다니고 강연 다니면서도 볼일 끝내자마자 허둥지둥 다음 일정에 쫓겨 돌아가기 바빴으니, 이런 청이 없었으면 또 빈손일 뻔했습니다. 내외가 함께 지내기로 한 주말에 모인다니 어찌 참석하랴, 중얼거리는 소리 듣고는 다녀오라고 열심히 권한 남편한테 정말 미안할 뻔했습니다. 살림 전문가 선배들이 흥정하는 대로 말린 가자미 한 바구니를 사고, 김 한 축을 사고, 통통하게 마른 도루묵도 한 바구니 사서 자동차에 실어둡니다.

다음 날 오후 숲골짜기에 도착하니, 남편은 모닥불 피워 빨갛게 석쇠를 달구는 참입니다.

“배고프네! 어서 생선 꺼내 구워봐요.”

“어, 석쇠에다 구우라고요? 선배들이 프라이팬에다 맛나게 굽는 법 알려주시던데!”

“난 이게 좋아요. 기름에 지글지글 굽는 게 싫더라고요.”

모닥불 가에서 남편 별명 그대로 원시인의 양식이 익어갑니다. 돌돌이가 월월거리고, 호돌이가 킁킁거리고, 앞에 앉은 배고픈 이도 코를 벌름거립니다. 고단해서 드러누울 생각만 하던 사람도 입안에 군침이 돕니다.

“잘 익었다. 맛나겠네!”

“도루묵도 이렇게 구우니 맛나네!”

생선구이에 탐닉하다 문득 봄뜰을 둘러봅니다. 나무들이 보기엔 이런 풍경이 꽤나 생경할 테지요. 그래서 한마디 건넵니다.

“숲골짜기로 바다가 오니…”

그러자 곰곰이 가시뼈를 발라 가자미 한 점을 입에 넣던 남편이 소줏잔을 들며 나직이 부르짖습니다.

“섬세한 식사를 하다!”

석쇠 가에 발라놓은 지느러미며 잔가시를 호돌이 돌돌이에게 나눠주느라 일어서면서, 내외의 두 마디를 한데 이어 중얼거려봅니다. 혹시 시가 되려나, 하고요.

“숲골짜기로 바다가 오니, 섬세한 식사를 하다.”
글쓴이 원재길·이상희씨 부부는 원주시 부론면 단강리 산골에서 살며 시와 그림책을 씁니다.
  • 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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