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한 달 제주살이 후
《제주도에서 아이들과 한 달 살기》 펴낸 전은주

학원, 컴퓨터, 텔레비전 모두 끊고 제주도에서 한 달만 살아볼까?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에게 영감을 주는 엄마가 있다. ‘꽃님이네’라는 육아 블로그를 운영하는 전은주씨다. 그는 ‘꽃님에미’라는 닉네임으로 자녀들과의 하루하루 생활을 블로그에 올린다. 지난 2011년 여름, 전은주씨는 제주도에서 아홉 살 꽃님이(본명 박여원), 다섯 살 꽃봉이(본명 박여준)와 한 달간 살다 왔다. 이를 블로그에 올렸는데, 엄마들의 반응이 열광적이었다. 그는 이번 3월 《제주도에서 아이들과 한 달 살기》 개정판을 펴냈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오두막. 수박을 쩍 가르며 아이들을 부른다. 새까맣게 탄 아이들이 반짝이는 몸으로 뛰어온다. 아이들과 함께 시골에서 생활하기는 전은주씨의 오랜 꿈이었다.

“아이들에게 학원, 컴퓨터가 없는 여름을 선물하고 싶었어요. 쑥을 태우면서 모기를 쫓는 곳에서요. 처음에는 완전 시골을 생각했는데 조금 부담스러웠어요. 어느 정도 익명성도 보장되면서 기반 시설이 잘되어 있는 곳이 제주도라고 생각했어요. 바다와 멀지 않은 곳에 월세방을 얻었죠.”

주변 반응은 부러움 반 염려 반이었다. 남편은 바빠 은주씨와 아이들만 가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은주씨는 제주도가 아이들에게 두 가지로 기억되길 바랐다.

“아이들에게 주고 싶은 기억은 두 가지였어요. 바다 그리고 아빠. 아이들이 일어나기 전에 출근하고 잠든 후에 퇴근하는 아빠에 대해 아이들이 다시 생각하도록 말이에요. 그런데 남편이 바쁜 와중에도 1주일에 한 번씩 아이들을 보러와 고마웠습니다.”


제주도에서 처음 맞은 아침, 눈이 번쩍 떠졌다. 어둑한 새벽이었지만 지도를 탁 폈다. ‘본전’ 뽑아야 한다는 비장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일부러 제주도까지 내려온 이유가 생각나 한숨이 나왔다. “얘들아, 빨리 가자. 엄마 먼저 간다?” 이 소리 좀 안 하려고 온 제주도였다. 원래 계획은 ‘물놀이나 실컷 하고 가자’였다. 마음을 내려놓으니 제주도는 세 사람을 품어주었다. 바다가 보이면 달려들었고, 피곤하면 잠을 잤다.

탁 트인 하늘 덕분에 여러 번 차를 멈추었다. 바위에 쳐진 거미줄에 침을 뱉어 끊을 수 있나 없나 실험도 하고, 방귀를 뀌면 몇 번째 돌까지 냄새가 배는지 세어보기도 했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제주도 곳곳을 다녔다. 비가 오거나 물놀이가 싫증날 때에는 도서관에 갔다.

“원래 도서관이 아니라 그 앞 놀이터에 데리고 간 거였어요. 그러다 시원한 에어컨에 끌려 도서관에 들어섰는데, 아이들이 도서관에서 책 읽는 재미에 빠졌어요. 책을 좋아하지 않던 꽃님이가 6시간씩 도서관에 있기도 했죠. 한라도서관, 기적의 도서관 등 여러 곳을 다녔어요.”


제주도 추억 중 하나로 아빠가 자리 잡기를 바랐던 은주씨의 소망도 이루어졌다.

“애들이 주말에 잠깐 왔다 가는 아빠를 무척 기다렸어요. 아빠가 오면 맛있는 것을 사주거든요.(웃음) 아빠와 떨어져 사니 아빠의 소중함이 더욱 절실해진 거지요. 저도 남편하고 가까워져 좋았어요. 습관적으로 함께 지내는 것보다 짧게 짧게 진한 만남을 갖는 게 좋았어요. 가족과의 관계도 절대적 시간을 많이 갖는 것보다 만남의 질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학원과 영어공부만 없었던 게 아니다. 컴퓨터, 텔레비전, 장난감도 없었다. 삼다도가 아닌 삼무도다. ‘텔레비전 없이 생활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아이들은 텔레비전 대신 노을을 오랫동안 보면서 감탄했다.

“자연 감수성이 풍부해졌어요. ‘바람이 되게 촉촉해’ 같은 표현도 자주 하고, 거실 창문에 종이액자를 만들어 붙이기도 했지요. 이걸 왜 만들었느냐고 묻자 ‘이 액자 그림은 매일매일 바뀌어!’라고 하더라고요.”

자연의 품에서 남매는 가까워졌다. 꼭 붙어 그림을 그리고, 심심하면 함께 책을 읽었다.

“동거인이 아니라 ‘가족’이 되었다 할까요? 서로 꼭 붙어 있는 만큼 더 많이 싸우고 더 빨리 화해합니다. 더 많이 의지하고요. 아이들 아빠도 그러더라고요. ‘우와! 쟤네들 완전 한편이야’라고요.”

편안한 자연과 학원 없는 느긋한 생활 덕분일까. 하루하루 꽃님이는 변했고 꽃봉이는 자랐다.

‘꽃님이의 변신’이라고 할 만큼 꽃님이는 성격이 많이 바뀌었다. 꽃님이는 낯선 사람을 만나면 긴장해서 엄마 속을 태웠었다. 불편한 상황이 닥치면 “배 아프다”며 엄마 옷자락을 끌었다. 제주도에서는 늘 싱글벙글 잘 웃었다. 심지어 또래 남자아이에게 먼저 말을 걸기도 했다. 꽃봉이는 안아달라고 징징거리는 것이 부쩍 줄었다. 성격만 변한 것이 아니었다. 맨밥도 맛있게 먹었다. 두 아이의 몸무게가 4kg씩 늘었다. 하루 종일 뛰어놀다 보니 잠도 일찍 잤다.

‘제주도 마법’으로 은주씨도 점차 바뀌어갔다.

“그전에는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어요. 그런데 24시간 붙어 있으면서 자세히 들여다보고 지켜보니 아이들을 믿게 되더군요. 이제 아이들이 이끌어야 할 존재가 아니라 때론 의지할 수 있고, 함께 가는 존재가 되었지요.”


부담감이 줄어드니 더 너그러워졌다.

“산굼부리에 갔을 때인데 아이들이 한 번도 풍경을 둘러보지 않는 거예요. ‘제주도까지 왔는데’라는 생각 때문에 속이 탔죠. 아이들은 땅바닥에 있는 작은 콩벌레만 봤어요. 그 콩벌레를 만나기 위해 제주도까지 갔나봐요.(웃음)”

개정판을 만들기 위해 다시 제주도를 찾았을 때 꽃님이는 해변 한가운데서 덩실덩실 춤을 췄다. 꽃님이에게 음악도 없이 어떻게 춤을 추느냐고 물었더니 “왜 음악이 없어? 파도 소리가 이렇게 들리는데?”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렇게 제주도는 아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부쩍 성장하게 했다. 전은주씨는 인터뷰 내내 자신은 육아에 확고한 신념이 있는 엄마가 아니라고 말했다. 제주도에서 돌아온 후 꽃님이가 선행학습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고민하는 등 갈팡질팡했다 한다. 그럼에도 전은주씨 가정에 제주도는 언뜻 떠오르는 순간 힘이 되는 곳이다.

“추억이 많은 사람이 행복하지 않을까요. 제주도 이후 가족들에게 즐거움이 많아졌어요. 제주도에서의 추억이 힘이 되는 것 같아요”.

사진 : 김선아
사진제공 : 전은수




꽃님에미가 추천하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제주도 여행지

법정악 전망대 (01)
서귀포 휴양림 안에 있는데요, 전망대 입구까지 차를 타고 이동할 수 있어요. 전망대까지 가는 길은 450m밖에 안 됩니다. 아이들이 중간에 갖가지 풀이며 곤충을 들여다봐도 폴짝폴짝 뛰어 오고가는 데 1시간이면 충분합니다. 밀림처럼 울창한 숲을 걷다가 전망대에 도착해서는 확 트인 풍경이 펼쳐져 깜짝 놀랐지요.

달그락 화덕피자집
제주시 노형동 주택가 안에 숨어 있는 얇은 이탈리아 피자 전문점입니다. 인테리어가 세련되고 멋지지만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가기 힘든 분위기는 전혀 아닙니다. 아기의자까지 따로 있답니다. 피자를 만드는 것을 볼 수 있는 오픈치킨이라 아이들이 즐겁게 구경하더라고요. 주차하기도 쉬워 아이들과 외식할 때 좋아요.

제주 도립미술관 구내 카페 ‘플라타너스’ (02)
주변 풍경이 멋진 미술관 안에 널찍한 통창이 있는 카페입니다. 카페 안에 야외로 통하는 문이 있어서 아이들이 밖에서 뛰어놀면 어른들은 안에서 지켜볼 수 있답니다. 밖에 연못이 있는데 무릎 깊이밖에 오지 않아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곽지과물해수욕장
제주도에 멋진 해수욕장이 한두 군데가 아닌데 구태여 곽지과물해변을 추천하는 이유는, 바로 바닷가에 놀이터가 있기 때문입니다. 바다 코앞에 놀이터가 있습니다. 바닷가 노천 목욕탕도 구경하면 재밌습니다. 여름엔 바닥 분수가 있어 아이들을 더욱 흥분시키지요.

서귀포 기적의 도서관
몇 년 전 모 방송사 프로그램을 통해 지어진 도서관이에요. 건물 모양이 둥근데, 가운데 정원이 있어요. 정원을 중심으로 빙 둘러가며 서가가 있습니다. 한쪽엔 작은 다락방도 있고요. 작은 땅콩의자들이 창가에 죽 둘러 있어서 아이들이 편안하게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비가 오거나 심히 더울 때 아이들과 찾으면 참 좋았습니다.

제주도 별빛 누리 공원 (03)
제주시에서 운영하는 별빛누리 공원은 별과 달을 보는 천문대랍니다. 천체망원경으로 달 표면과 목성, 토성 등을 볼 수 있어요. 대여섯 살부터도 다 좋아하더라고요. 우주에 관한 4D 영화도 관람할 수 있고, 시내와 가까워 차량으로 이동하기 편합니다.

  • 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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