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사람들이 주인인 모기동 카페와 공방을 아시나요?

왼쪽부터 김지영·박명주·유다원·송현희씨.
고층 아파트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옆 동네와 달리 단독주택을 개축한 고만고만한 다세대 주택들이 어깨를 맞대고 있는 서울 양천구 목2동의 한 동네. 아직 옛날 동네의 느낌이 사라지지 않은 고즈넉한 이곳에 젊은 여성 두 명이 들어와 작은 카페를 열었다. 공공미술 관련 회사에 함께 다니던 유다원・ 김지영씨가 2010년 4월 문을 연 카페 ‘숙영원’이다. 6~7년 동안 전국을 다니며 일을 하던 그들은 어떤 장소나 자연환경, 사람들을 보면 무슨 프로젝트가 어울릴지 자동으로 떠오를 정도로 전문가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점점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아무리 공공을 위한 일을 한다 해도 강렬한 내적 동기 없이 기계적으로 일하는 것이 싫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불어넣는 일을 하려면 우선 우리부터 채워져야 하는데’라는 갈증이 커졌다. 그래서 ‘뭔가가 하고 싶어 미칠 때까지 가만히 있어보자’고 했다. 한곳에 뿌리를 내린 채 사람과 사람, 예술과 사람들의 만남이 마을을 어떻게 변화시켜나가는지 실험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이들은 문짝으로 쓰였던 나무를 가져와 탁자를 만들고, 헌 의자를 재활용하고, 직접 페인트 칠을 하면서 이 카페를 자신들만의 색깔로 꾸몄다. 블로그를 만들어 자신들의 이야기도 하나하나 올렸다. 이 작은 카페의 편안하고 따뜻한 분위기에 끌린 주민들이 하나둘 늘어났다.

유다원·김지영씨가 함께 시작한 카페 ‘숙영원’.
숙영원과 마주보고 있는 건물 지하에는 도예공방 ‘나무도예방’이 있다. 대학에서 도예를 전공한 박명주씨가 2005년 만든 공방이다. 박명주씨는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에 학교에서 특수아동을 가르치면서 도예를 다시 시작했다. 아이 학교 가까운 곳에 공방을 마련하고 도예 레슨도 시작했다. 공방을 찾는 아이들에게 그는 마음껏 놀게 했다. 흙을 만지작거리면서 놀게 하고, 물 풍선에 딱지치기도 함께 했다. 다락방같이 아늑한 공간을 따로 마련해 아이들이 마음껏 뒹굴며 책을 읽게 했다.

“저 역시 아이를 키우면서 어떻게 교육하는 게 좋은가 고민하던 때였어요. 사교육이나 선행학습에 휘말려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고, 아이를 따라 공방에 오는 엄마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미쳐 날뛰는 세상을 따라가지 않으려면 우리가 먼저 교육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편안해져야 했어요. 그러려면 내면의 힘을 키워야 하고요.”


나무도예방에 모인 엄마들은 ‘아이를 어떻게 키우느냐’ 이전에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하기 시작했고, 어린이책시민연대에서 함께 자원활동하면서 꿈꾸는어린이도서관과 지역아동센터에서 봉사활동도 했다. 이제 아이가 고등학교 2학년이라는 박명주씨는 요즘도 교육에 대해 상담을 청하는 엄마들에게 “아무것도 안 시켜도 돼. 책 많이 읽히고 많이 놀게 해”라고 충고한다. 나무도예방의 주축멤버로 활동하고 있던 송현희씨 역시 아이를 나무도예방에 보냈다 남편까지 온 식구가 도예를 배우고, 박명주씨와 함께 활동하게 되었다 한다.

박명주씨가 문을 연 ‘나무도예방’.
서로 마주보는 곳에 자리 잡고 있던 미혼여성 두 명과 기혼여성 두 명은 그러나 한동안 길게 말을 섞지 않았다. 양쪽 모두 ‘낯을 가려서’라고 변명한다. 2011년 8월, 카페를 찾은 박명주・송현희씨는 매년 공방에서 여는 바자회에 대해 의논하고 있었다. 그때 유다원・김지영씨가 힘을 보태겠다며 “마을축제로 만들어보자”고 했다. 이들은 “동네가 너무 재미없지 않아?”라며 ‘동네에서 제발 뭐라도 하자’는 의미로 축제 이름을 ‘모기동 궁여지책’으로 붙였다. 목2동을 읽는 소리 그대로 표기한 ‘모기동’은 그 후 이 동네의 애칭이 됐다.

2011년 10월 말에 열린 마을축제는 성황을 이뤘다. 벼룩시장과 아트마켓에 동네 주민들은 안 쓰는 물건뿐 아니라 직접 만든 수공예품과 음식을 가지고 나와 아티스트로 데뷔했다. 홍대 인디음악가가 와서 공연할 뿐 아니라, 실용음악을 공부하고 있는 주민도 노래를 불렀다. 축제 전날 우연히 카페를 찾았던 한 주민은 인형극단을 그 자리에서 섭외, 인형극 공연을 주선했다.

축제가 끝나자 숙영원은 ‘마을 주민들이 예술을 가지고 함께 놀고 즐기며 소통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인문학 강좌를 열었다. 성미산마을, 인천 배다리마을 등 새로운 마을문화를 만들어온 활동가들을 초청해 다른 마을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저녁에 시작된 강좌는 새벽 뒤풀이까지 이어지며 진지한 논의들이 오갔고, 숙영원은 그저 카페가 아니라 마을의 공공장소로 바뀌기 시작했다.

생기면 미니마켓.
주민들이 직접 만든 수공예품을 가지고 나와 판매, 아티스트로 변신했다.
‘플러스마이너스1도씨’(예술을 통해 사람의 온도를 1℃ 높이고 지구의 온도를 1℃ 낮추자는 뜻)라는 이름으로 공공미술 프로젝트도 해오고 있는 유다원・김지영씨는 ‘마리아의 딸 수도원’이 내놓은 지하공간을 북카페, 밴드연습실, 댄스실 등 청소년 문화놀이터로 바꾸었다. 이를 계기로 동네에 청소년 밴드도 조직됐다. 2012년 10월 ‘모기동 일장추몽’이란 이름으로 열린 마을축제는 참가자가 3배로 느는 등 한층 규모가 커지고, 마을의 청소년들이 댄스와 통기타를 연주하고, 주민들이 마을에 관해 촬영한 영화를 상영하는 등 주민 참여가 부쩍 늘었다. 하나씩 음식을 만들어와 나눠 먹는 ‘나눔 식탁’ 행사를 통해 남다른 손맛으로 각광받는 마을의 ‘셰프’도 생겼다.

숙영원에서는 바느질 수업, 인문학 강좌도 자주 열린다.
지난 3월, 숙영원과 나무도예방은 자신들의 공간을 마을 주민들에게 공유공간으로 내놓겠다고 선포했다. 자신들뿐 아니라 마을일을 하는 모든 사람이 함께 운영하는 공간으로 만들어 3C, 즉 Cafe이자 Creative한 공간, Community를 위한 공간인 ‘모기동 마을예술창작소’로 만든다는 복안이다. 재미있는 프로그램도 더 많아졌다. 벼룩시장을 수시로 열기로 하면서 ‘생기면 모기동 프리마켓’이라고 이름 붙였다. 퇴근 후 카페에 모여들던 아빠들 중 ‘밤문화예술활동가’라는 별명을 얻은 박제성씨는 특히 요리에 관심이 있어 ‘가끔 여는 밤에 하는 식당, 夜한 식당’에서 셰프로 변신, 비장의 메뉴를 선보인다. 매주 한 차례 바느질 수업이 열릴 때면 숙영원은 모두의 작업실로 변신한다. 인문학과 예술 강좌도 더 자주 열 예정. 지난 3월 23일에는 이곳에서 연극 <임차인>을 공연했다.

셰프로 변신한 주부들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내놓는 밥상.
누구의 아내로, 누구의 엄마로 이름 없이 살던 주부들은 ‘○○씨 밥상’이란, 자신의 이름을 건 셰프로 변신했다. 매주 월-수-목-금요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 숙영원에는 ‘자분씨의 밥상’ ‘탱자씨의 밥상’ ‘깡양의 밥상’ ‘송씨의 밥상’이란 이름의 메뉴가 등장한다. 주부들은 식구들에게 자주 해주던 자신 있는 음식으로 밥상을 꾸몄다. ‘자분씨의 밥상’에는 단호박수프와 유자드레싱샐러드, 모닝빵을 함께 내는 단호박수프 세트, 고구마꽃토스트와 샐러드를 함께 내는 꽃토스트 세트 두 가지가 있다. ‘탱자씨의 밥상’은 목우촌 햄에 유정란으로 만든 달걀 프라이를 얹은 밥. ‘깡양의 밥상’은 토마토 스파게티, ‘송씨의 밥상’은 두부쌀국수와 샐러드쌀국수, 두부샐러드를 낸다.

셰프로 참여하는 주부들은 자신이 해오던 집안일을 공적으로 인정받게 되어 좋고, 숙영원을 찾는 사람들은 엄마가 차려준 것처럼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정성스러운 밥상을 대할 수 있어 좋아한다고 한다.

목2동의 변화는 어렵게 자신의 공간을 꾸며놓고도 선뜻 모두의 공간으로 공유하고 싶어 하는 미혼여성과 기혼여성들의 만남으로 시작됐다. ‘돈보다 사람, 이웃이 소중하다’는 이들 때문에 마을사람들은 하나둘 마음을 열고 대화하기 시작했고, 마을은 변화하고 있다.

사진 : 김선아
  • 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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