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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부부가 산골에서 부치는 편지 (74) 불빛 새로이 밝히고

글 : 이상희 

그림 : 원재길
숲골짜기 집으로 달리는 시골길이 어쩐지 달랐습니다. 찬바람을 무척 싫어하는데도 차창을 열고 싶었던 것, 다행히 바람이 조금도 차갑지 않았던 것, 차창을 연 채 바람을 쐬자니 저절로 두리번두리번 먼 산까지 바라보게 되었던 것, 그 산이 ‘깎은 도령’처럼 훤했던 것… 이런 것들을 드문드문 떠올리다가 내 게으름을 탓하지 않을 이유를 구했습니다. 엊저녁부터 이 오후까지 10시간도 넘게 책 한 권 끌어안고 읽는 둥 마는 둥 거실바닥에 누워 뒹구는 이를 내버려둔 채 난로 연통을 닦는다, 땔감을 나른다, 멍멍 짖어대는 호돌이를 내다봐준다, 홀로 바지런히 움직이는 남편을 위할 겸해서요.

“봄맞이 몸살하나 봐.”

“푹 쉬시우. 꺼칠하던 우리 돌배나무에도 봄 기운이 서렸습디다.”

지난겨울이 유난히 불행했다고 할 수는 없으나, 오십 중반에 이른 내외에게 혹한의 냉기며 이런저런 갱년기 증상이며 문득 사라져서 지금껏 돌아오지 않는 돌돌이 일은 적잖은 피로가 되었습니다. 더구나 이 안사람은 서른 중반도 못 되어 세상 떠난 노총각 조카 아이 일에, ‘그림책도시’가 궤도에 진입할 때까지 곁에서 돕겠노라 했던 다짐을 냉큼 뒤엎고 달아난 사람 일에 가슴이 숭숭 뚫린 터입니다.

“빅토르 위고, 과연 대단하던데!”

어느새 책상 앞에 앉아 번역 일을 시작한 남편이 생각났다는 듯 한마디 던집니다. 지난 연말, 박 이사한테 선물 받은 《레 미제라블》 얘깁니다. 어릴 적에 읽은 것이 축약본이라는 걸 알고 붉어진 얼굴로 화제만발 개봉영화를 봤으니 두툼한 책이 다섯 권이나 되는 내용이 무척 궁금한 터입니다. 누구나의 삶이 그만큼은 되는 것인지, 장발장의 파란곡절이 유난히 그러한 것인지도요.

“난 이제 2권으로 넘어갔으니, 읽기 시작하시구려.”

“고흐도 독서량이 상당했으니, 위고를 읽었겠지요?”

고흐의 편지 모음집을 읽던 참이라 엉뚱하게 고리를 꿰게 됩니다.

“고흐가 아홉 살이나 열 살 무렵 출간되었을걸. 전 세계가 읽은 베스트셀러였다니까, 읽었겠지요.”

영화 속의 판틴이며 코제트가 겪는 처참한 생활고가 고흐 그림 <감자 먹는 사람들>에 겹쳐지는데, 마침 가슴 뛰는 대목을 만납니다.

“아아, 이게 바로 고흐구나 싶은 글을 만났네. 딱 한 대목만 읽어줄게요. ‘… 나는 램프 불빛 아래에서 감자를 먹고 있는 사람들이 접시로 내밀고 있는 손, 자신을 닮은 바로 그 손으로 땅을 팠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려고 했다. 그 손은, 손으로 하는 노동과 정직하게 노력해서 얻은 식사를 암시한다.’”

내게도 ‘고흐 그림은 어째서 아름답지 않은가’ 라고 고개 갸웃거리던 시절이 있었고, 고흐 그림의 아름다움이 그런 식의 아름다움과는 다르다는 걸 깨달은 지도 한참 되었습니다만, 그리고 그전에도 이 책을 읽었습니다만, 지금 새로이 만난 이 글이 진주처럼 보배롭게 여겨집니다.

“참, 함께 있을 때 수명 다한 전구 대여섯 개를 갈아야 해요. 새 전구 집어줄 손이 필요해서… 그나저나 우리 집을 밝히는 전구가 총 50개라는 거, 알고 계셨나?”

총 50개 전구를 한꺼번에 켤 일은 없지만, 생각만으로도 겨우내 어둑했다 싶은 숲골짜기 집이 환해집니다. 이제 새로이 환한 불빛에 책을 읽게 되겠지요.
글쓴이 원재길·이상희 씨 부부는 원주시 부론면 단강리 산골에서 살며 시와 그림책을 씁니다.
  • 2013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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