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망원동 ‘경기떡집’ 최대로ㆍ대한ㆍ대웅

부모님 뒤를 잇는 떡집 삼형제

전통을 이으면서 새 트렌드를 만드는 떡집 이야기

우리 민족이 원시 농경사회 때부터 먹어온 떡. 관혼상제나 명절, 백일, 돌, 생일, 환갑 등 삶의 중요한 순간마다 빠지지 않을 정도로 떡은 우리 민족의 삶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었다. 서구의 빵과 과자, 케이크들이 인기를 끌면서 슬며시 자리를 내주었던 떡을 되살리고 있는 젊은이들이 있다. 이들은 우리 땅에서 나는 최고 재료로 떡을 만들면서 젊은 층의 입맛과 취향에 맞도록 떡을 진화시키고 있다.
왼쪽부터 최대웅·대로·대한씨.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 위치한 경기떡집. 코끝 시린 겨울바람이 매섭게 부는 시장 골목 한가운데 위치한 이곳에서는 매일 새벽 3시면 하루가 시작된다. 새벽에 찾은 경기떡집은 이른 시간임에도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찜통을 꺼내 조심스럽게 면포를 벗겨내자 보들보들한 호박설기가 모습을 드러낸다. 한 사람은 정교한 손놀림으로 떡을 자르고, 또 한 사람은 자른 떡을 하나하나 포장해 상자에 담는다. 또 한쪽에서는 다른 떡을 준비하기 위해 쌀을 씻고 또 한쪽에서는 주문배달 준비로 손길이 바쁘다. 모두 익숙하게 눈앞의 일들을 척척 해치우면서도 손길 하나하나엔 세심한 애정이 담뿍 담겨 있다.

매일 새벽 3시면 경기떡집의 하루가 시작된다.
최대로(31)·대한(26)·대웅(24) 삼형제가 떡집 주인인 아버지 최길선씨와 어머니 김예분씨의 뒤를 이으며 꿈을 키워나가고 있는 곳이다. 원래 길선씨에게 떡 만드는 일을 배우던 이는 셋째 대한씨와 넷째 대웅씨였다. 떡집의 ‘실세’인 대한씨는 중학교 때부터 본격 입문해 이미 경력 12년차의 베테랑이고,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부터 떡 반죽에 콩고물을 묻혔던 대웅씨는 고등학교 때부터 본격적으로 기술을 배워 올해로 8년차에 이른다. 손에 쌀가루가 마를 사이도 없이 밤잠을 포기하고 오로지 떡에만 매진해온 날들, 낮과 밤이 바뀌고, 손에는 까지고 데인 상처가 가실 날이 없는 고된 일이지만 일찌감치 가업을 잇겠다고 결심한 두 사람이었다. 한편 어릴 적부터 공부에 두각을 나타냈던 첫째 대로씨는 연세대학교 졸업 후 사법고시를 준비하다가 돌연 1년 전 아버지의 뒤를 잇겠다고 선언하면서 삼형제가 함께 일하기 시작했다. 대로씨는 새벽잠을 설쳐가며 고된 떡집 일을 배우면서 포장과 배달을 비롯한 ‘그 외’의 일들을 담당하고 있다. 둘째 대현씨만 미국 유학 후 대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떡에 대한 열정과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삼형제, 혈기 왕성하고 꿈 많은 젊은이들을 떡집으로 불러 모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의 부모님은 십수년 간 제분소에서 부지런히 일한 끝에 떡집을 차릴 수 있었고, 그 후 반평생을 떡과 함께 살았다. 이들의 인생철학은 부지런하고 정직하게 떡을 만들어 파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이런 부모님의 모습을 보고 자란 삼형제는 부모님이 존경스러워 가업을 이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버지께서는 최고 재료가 아니면 쓰지 않으세요. 지금도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다니며 단단하고 좋은 쌀을 고르고, 영주 콩, 공주 밤 등 지역 특산물을 골라 아낌없이 넣으시죠.”(최대한)

부모님은 더 맛있는 떡을 만들기 위해 새벽길을 달려 전라도 순천까지 가서 떡 만들기를 배워 오기도 했다. 지금도 매일 새벽이면 어김없이 떡집으로 출근, 아들들과 함께 떡을 만든다. 이들 형제를 떡집으로 불러 모은 것은 부모님의 삶 자체였다.


막 쪄낸 단호박소담떡을 한입 베어 문 기자의 표정을 주목하던 대한씨가 “맛있죠?” 하더니 씨익 웃는다. 그동안 맛본 호박설기와는 확실히 달랐다. 일반 설기의 질감이 아니었다. “단호박소담떡은 생단호박에 호두와 완두를 넣어 만들어요. 저온숙성기법으로 만들어 더욱 부드럽고 촉촉하죠.” 대한씨는 국내 최연소 ‘떡 명장’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경기도와 경기농림진흥재단 주최로 열린 ‘떡 명장 선발대회’에서 ‘단호박소담떡’으로 대상을 수상했다. 그동안 경력이 많은 40~50대 전문가가 명장으로 선발되던 것에 비춰볼 때 대한씨의 성과는 남다르다.

“호박으로 설기를 만드는 것도, 본연의 맛을 내는 것도 힘들어 다양한 방식을 활용해봤어요. 1년여 간의 연구 끝에 첨가물 없이 생호박을 이용해 설기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대한씨는 레시피도 없이 떡을 배우는 게 처음에는 힘들었다고 한다.

“처음 떡을 만들 때 아버지께서 소금을 가져오시더니 한 움큼 집어 보여주시며 ‘이만큼 넣어’라고 하시곤 그냥 가셨어요. ‘이만큼’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으니 어떤 때는 짜고, 어떤 때는 싱거웠지요. 그렇게 손으로 감을 익혀가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쌀을 빻을 때도 물을 얼만큼 넣느냐고 물으면 ‘이만큼’ 하시면서 보여주시죠. 그렇게 몇 년 동안 반죽을 하다 보니 감이 잡히더라고요.”

돌이켜보니 레시피만 있다고 떡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온도와 습도, 떡을 만드는 쌀에 수분이 얼마나 있는지에 따라 쌀을 씻어 담그고, 가루를 내리고, 찌는 과정이 다 달라야 했다. 이건 장인의 손에 달린 일이었다.

“명장대회 때는 모두 계량해서 떡을 만들기에 저도 계량대로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물을 섞고 보니 뭔가 이상했어요. 쌀과 재료가 달랐기 때문이에요. 결국 계량하지 않고 감으로 만들었는데 비율이 딱 맞았습니다. 같은 떡을 몇 년씩 만들어도 그때그때 변수에 따라 계량이 달라지니 완벽한 레시피란 있을 수 없지요.”

떡을 만들 때 제일 중요한 게 무엇이냐고 묻자 삼형제는 거침없이 “재료”라고 답했다. “안 좋은 재료로도 떡을 맛있게 만들 수는 있어요. 하지만 완벽한 맛을 낼 수는 없지요. 좋은 재료를 써야 감칠맛이 나요. 쌀, 견과류, 콩 등 재료가 좋아야 떡에서 좋은 빛깔이 납니다.”

삼형제의 떡은 전통과 현대를 버무려 지금도 진화 중이다. 대로씨는 소담 떡 카페 오픈을 준비 중이고, 대웅씨는 ‘하트 백설기’, 커피떡, 초코설기 등 신세대 취향에 맞는 떡 개발에 여념이 없다. 그는 세계조리사대회를 앞두고 떡 개발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보통 새벽 3시에 작업을 시작하는데, 명절 시즌에는 나흘 내내 밤새 떡을 만든 적도 있어요. 그럴 때는 삼형제라 좋아요. 교대로 쉬어가며 만들 수 있으니까요. 힘들기도 하지만 기쁩니다. 형제끼리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으니까요.”(최대웅)

“사실 저는 어릴 때부터 떡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맛있고 예쁜 디저트가 많았으니까요. 그러나 떡을 만들면서 서양의 디저트를 능가하는 떡을 만들어보자는 꿈이 생겼어요. 지금은 명장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인정해주시지만 제가 어리기 때문에 격려해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젊은 만큼 열심히 배우고 연구해서 최고의 떡을 만들고 싶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예쁘고 맛있는 디저트들과 견줄 수 있는 떡을 만들 겁니다. 그래서 세계인들이 대한민국의 떡을 인정하게 만들고 싶어요.”(최대한)

사진 : 김선아
  • 2013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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