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의 세계 ⑨ 스포츠에이전트

선수의 플래시 뒤에서 미소 짓는 사람

말끔한 수트 차림으로 경기장을 종횡무진하는 남자. 하루에 수백통의 전화를 받고, 가끔 신문에 실린 선수의 사진 귀퉁이에서 자신의 옆얼굴을 발견하는 남자. 영화 〈제리 맥과이어〉의 남자 주인공 ‘제리’는 미식축구선수의 에이전트다. 돈을 벌게 해달라는 선수의 말에 ‘제리’는 대답한다. “그럼 널 위해 날 도와줘야 해.”
스포츠에이전트는 선수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다. 연봉협상, 일정관리부터 의료혜택문제, 병역문제에 이르기까지, 선수와 관련된 업무를 처리한다. 경기 외의 일을 에이전트에게 일임한 선수는 덕분에 걱정 없이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다. 선수활동의 모든 과정에는 스포츠에이전트가 깊숙이 관여한다. 스포츠에이전트를 두고 “선수와 같이 호흡하는 사람”이라 칭하는 이유다. 스포츠에이전트는 신인 유망주가 기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구단을 찾아 계약을 체결한다. 입단 후에는 선수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선수의 모든 경기를 모니터하고, 수시로 건강상태를 점검하면서 선수가 최상의 컨디션으로 경기에 임할 수 있도록 돕는다. 구단과의 계약기간이 만료되면 선수는 기존 구단과 재계약을 맺거나 다른 구단으로 이적한다. 이때 스포츠에이전트는 선수가 최대한 유리한 조건으로 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구단과 연봉협상을 한다. 스포츠에이전트의 수익도 계약을 맺을 때 발생한다. 계약조건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에이전트는 통상적으로 선수의 연봉과 계약금 중 10%를 수익으로 얻는다.

스포츠에이전트에게는 국내구단뿐 아니라 해외구단과의 긴밀한 네트워크 구축도 중요한 과제다. 국내선수를 해외구단에 진출시키는 업무와 해외선수를 국내구단에 입단시키는 양방향 업무를 원활하게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해외구단과의 비즈니스를 위해 스포츠에이전트는 근무기간 중 절반가량을 해외에서 보낸다. 규모가 큰 에이전트는 현지에서 근무하는 에이전트를 따로 고용하기도 한다.

최근 야구선수 류현진의 메이저리그 진출로 스포츠에이전트에 대한 관심이 고조됐지만, 높은 관심에 비해 우리나라에서 스포츠에이전트의 입지는 아직 좁다. 농구나 야구 같은 단체종목은 계약협상 시 에이전트의 개입을 금지하고 있으며, 골프나 스케이팅 같은 개인종목은 에이전트에 관한 규칙이 따로 마련돼 있지 않다. 현재 국내 활동 선수의 에이전트는 용품 협찬과 광고출연 관련 업무만 제한적으로 담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전망은 어둡지 않다. 스포츠의 세계화로 해외에서 활동하는 국내선수, 국내에서 활동하는 외국선수가 늘면서 스포츠에이전트의 활동무대가 넓어졌다. 국내에서도 스포츠의 활성화와 함께 스포츠에이전트 제도 도입에 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축구는 협회 차원에서 에이전트 제도를 공식 채택하고 있는 유일한 종목이다. 국내에서 활동 중인 에이전트 가운데 축구 에이전트가 유독 비중을 많이 차지하는 이유다. 축구 에이전트가 다른 종목 선수의 에이전트로 일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축구 에이전트를 뽑는 자격시험도 있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주최하는 에이전트 자격시험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3월이나 9월에 한 번 치러지며, 이 시험에 합격한 FIFA 공인 에이전트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선수의 이적에도 관여할 수 있는 자격을 갖는다. 시험과목은 FIFA 규정과 한국 프로축구 규정, 연봉협상에 필요한 민법과 형법 지식이다. 이 중 FIFA 규정문제는 모두 영어로 출제되며, 40점 만점에 26점 이상을 얻으면 합격한다.

시험만이 스포츠에이전트가 되는 길은 아니다. 변호사 자격증을 갖고 있거나 선수의 직계 가족인 사람은 시험을 통하지 않고도 에이전트로 활동할 수 있다. 전직 운동선수나 스포츠신문기자 등 스포츠 관련업계에서 일했던 사람이 경력과 인맥을 바탕으로 스포츠에이전트가 되는 경우도 있다. 스포츠에이전트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체육관련 학과를 전공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업무처리 과정에서 관련지식이 많이 활용되므로 경영학과나 법학과를 전공해도 유리하다. 체육관련 학과를 전공하지 않은 경우, 체육학과나 사회체육학과에 개설된 스포츠경영이나 스포츠마케팅론, 스포츠 심리학 수업을 수강해두면 도움이 된다.


연봉협상은 거액이 오고 가는 자리다. 스포츠에이전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선수의 연봉을 결정짓는다. 스포츠에이전트에게 세심한 준비성과 대담함이 요구되는 이유다. 외국어 능력을 겸비하고 있으면 해외구단과의 협상에 유리하다. 업무능력만이 다가 아니다. 스포츠를 다루는 직업이므로 스포츠에 흥미가 있고, 스포츠를 분석하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스포츠에이전트에게 선수와의 친밀감 형성, 구단 관계자들과의 호의적 관계 구축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자질이다.

선수의 빛과 어둠을 함께하는 사람. 선수에게 쏟아지는 플래시 세례 뒤편에서 미소 짓는 사람. <톱클래스>는 축구 에이전트 사 ‘지쎈’에서 활동 중인 류택형 에이전트를 만났다.


축구에이전트 류택형

평가와 조언 통해 선수의 꿈 이뤄주는 스포츠에이전트의 하루

  고려대학교 체육교육과 졸업
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 석사과정 수료
축구 에이전트 사 ‘지쎈’ 이사
이영표·설기현·송종국 등 에이전트 담당
내게는 네 개의 시계가 있다. 머리맡에 놓인 시계는 오전 7시를 가리키지만, 나머지 세 개의 시계는 각각 다른 시간을 가리킨다. 지금 미국 로스엔젤레스는 오후 5시, 브라질 상파울루는 오후 8시, 영국 런던은 오후 10시다. 내가 막 잠에서 깬 시간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는 선수는 훈련을 끝내고, 저녁식사를 하며, 잠들 준비를 하고 있다.


오전 9시 30분
회사로 출근한다. 6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작은 회사지만, 업무량은 만만치 않다. 우리 회사가 담당하는 선수는 30명 정도다. 선수들의 경기 영상을 모니터하는 데도 적잖은 시간이 걸린다. 선수들의 움직임을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보면서 경기 중 선수의 활약과 개선할 점을 꼼꼼히 기록해둔다.
경기 영상을 본 후에는 선수들에게 전화를 건다. 내가 담당하는 모든 선수가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좋겠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다. 반대인 경우 나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선수들이 직접 자신의 결점을 찾아 고치기는 쉽지 않다. 활약을 떨쳤던 경기의 잔상이 머릿속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선수들의 이야기를 듣고, 문제점을 파악한 후 그에 맞는 조언을 한다.
지나치게 운동을 많이 한 탓에 체력이 소진된 선수에게는 휴식을 권하기도 하고, 경기 전에 유독 긴장하는 선수에게는 선배 선수들의 예를 들어 긴장 푸는 법을 알려주기도 한다. 아픈 곳은 없는지, 축구용품이 해지지는 않았는지 물어본 후 조치를 취한다. 건강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병원에 함께 가고, 용품이 낡았을 때는 후원업체에 연락해 새 용품을 전달받을 수 있도록 한다.
보도자료 제작도 대부분 이때 이뤄진다. 소속팀 이전이나 해외진출 등 선수들에게 특별한 일이 생기면 보도자료를 만들어 각 언론사에 배포한다.

오후 4시
사무실에서 나와 차에 오른다. 구단 관계자와의 미팅이 있기 때문이다. 미팅에서는 2013년 시즌 K리그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2013년 시즌에 어떤 포지션의 선수가 필요한지, 어떤 능력을 지닌 선수를 선호하는지를 묻고 그에 대한 답을 듣는다.
사무실에 돌아와 구단이 제시한 조건에 맞는 선수를 조사한다. 요즘에는 일정금액을 지불하면 인터넷을 통해 각국 선수들의 목록과 최근 기록을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 있어 이전보다 일하기가 수월해졌다. 하지만 선수들을 분석하고 범주화하는 일은 에이전트의 몫이다. 스피드가 강점인 선수, 공격에 능한 선수와 같은 범주를 정해 선수들을 분류한다. 신속하고 정확한 자료정리는 스포츠에이전트의 생명이다. 구단의 요구에 즉각 대응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조사한 선수들의 경기 영상을 모아 우편으로 보내거나 구단 관계자에게 직접 전달한다.

이영표 선수, 히딩크 감독과 함께. 맨 오른쪽이 류택형 이사.
오후 7시
감독, 해설위원 등 축구전문가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선수의 기량을 판단하는 일은 매우 조심스럽다. 경기마다 선수의 컨디션이 달라지고, 판단하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같은 선수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기 때문이다. 스스로 판단을 내리기 전에 오랜 시간 선수를 지켜봤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최대한 많이 들으려 노력한다. 전문가들의 견해와 나의 생각을 종합했을 때 좋은 선수라는 판단이 들면 적극적으로 해외진출을 추진한다.
에이전트로서 특히 역점을 두는 부분은 국내선수의 해외진출이다. 뛰어난 선수를 해외로 보내면 외국의 자본이 국내로 유입되고, 유입된 자본은 한국축구를 활성화하는 데 쓰일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축구잡지 편집장으로 일하다 축구 에이전트로 진로를 바꾼 것도 이런 생각을 현장에서 직접 실현시키고 싶다는 바람 때문이었다.
10년 남짓 축구 에이전트로 일하는 동안 바람이 이뤄진 순간들이 있었다. 남태희는 당시 고등학생이었지만, 원숙한 기량을 갖고 있는 선수였다. 자문을 구한 전문가들도 입을 모아 “1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선수”라 평할 정도였다. 남태희를 데리고 유럽행 비행기에 올랐다. 구단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테스트를 받은 결과, 2009년 ‘국내선수의 최연소 유럽 1부 리그 데뷔’라는 쾌거를 이뤘다. 정조국은 K리그에서 눈에 띄는 활약을 보였지만, 국가대표는 아니었다. 당시 국가대표가 아닌 선수의 해외진출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정조국의 실력을 믿은 나는 그를 해외구단에 여러 번 소개했고, 2010년 정조국은 프랑스 1부 리그에 진출했다. 짜릿한 희열을 경험한 순간이었다.

오후 10시
집으로 향한다. 예전에는 밤 12시를 훌쩍 넘겼지만 퇴근시간을 앞당겼다. 아이들을 보기 위해서다. 깨어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본 기억이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아이들이 잠든 후 한참이 지나서야 집에 들어가는 날이 많았고, 방학 때도 함께 시간을 보내기 어려웠다. 아이들의 방학과 선수들의 이적기간이 겹치기 때문이다. 1년에 4~5개월을 해외에서 근무해야 하는 직업의 특성상 잠깐이라도 짬을 내지 않으면 가족과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없다. 집에 들어가 아이들이 잠들 때까지 이야기를 나눈다.

밤 12시
가족들이 모두 잠든 시각이지만, 일과는 끝나지 않았다. 서울은 깊은 밤이지만, 해외에 나가 있는 선수들에게는 지금이 아침이거나 한낮이기 때문이다. 선수들에게 전화를 걸어 경기 일정과 컨디션을 체크하고, 해외에서의 적응문제와 그들의 일상에 대한 대화를 나눈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선수들과 연락할 방법이 전화밖에 없던 시절에는 새벽까지 사무실에서 전화통화를 하는 날이 많았다. 요즘에는 스마트폰을 통해 실시간으로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어 새벽 업무량이 줄었다. 그렇지만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기 위해 선수들의 활동 시간대에 맞춰 전화를 건다.

새벽 1시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든다. 주말인 내일 있을 K리그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서다. 경기를 앞두고 떨고 있을 선수들을 상상하니 잠이 잘 오지 않는다. 1주일에 한 번씩 열리는 경기는 선수의 나머지 6일을 좌우한다. 경기에서 활약한 선수는 6일을 기쁜 마음으로 훈련하는 반면, 그렇지 않은 선수에게는 경기 이후의 하루하루가 쓰디쓰다. 나 역시 선수의 경기 결과에 따라 환희와 안타까움이 교차하지만, 평정심을 유지하려 노력한다. 그래야 선수들에게 냉철한 충고와 따뜻한 격려를 건넬 수 있기 때문이다.

종종 인터뷰에서 꿈이 뭐냐는 질문을 받을 때는 당황스럽다. 내 꿈보다 선수들의 꿈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프로축구 입단을 기다리는 선수가 한 해에 1100명 정도 된다. 그 가운데 700명 정도는 입단의 꿈을 이루지 못한다. 프로축구선수가 된 선수 중에서도 3년 이상 선수생활을 지속하는 경우는 드물다. 스포츠에이전트로 일하면서 가장 힘든 때는 선수들이 자신의 꿈을 마음껏 펼치지 못한 채 은퇴하는 모습을 볼 때다.

선수의 집들이에 초대받은 적이 있다. 어린 시절, 어려운 형편 탓에 컨테이너에서 생활하던 선수였다. 우리 회사와 인연을 맺고 높은 연봉을 받아 집 장만의 꿈을 이룬 선수를 보면서 최고의 기쁨을 맛봤다. 선수가 오랫동안 그라운드를 누비면서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내 목표다. 선수들의 꿈을 이루기 위해 나는 오늘도 네 개의 시계를 보며 여러 겹의 시간을 산다.

사진 : 하지영
  • 2013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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