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공예가 정지민

식물의 생장과정을 표현한 은(銀) 장신구

백색의 은은한 빛을 발하는 은(銀). 은은 금과 함께 고대부터 귀하게 여겨온 대표적인 귀금속으로, 화폐와 장신구, 고급 식기, 거울 등에 광범위하게 쓰였다.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은으로 만든 식기는 부와 명예의 상징. 유럽의 왕실이나 귀족들이 은그릇에 음식을 담은 것은 은에 살균 효과가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고대 페니키아인들은 물이나 포도주, 식초 등을 은으로 만든 용기에 보관해 부패를 방지했고, 현대에 와서도 상처치료용 붕대의 항균 처리와 휴대폰 케이스의 박테리아 번식을 막는 데 은을 사용하기도 한다.
자연 상태에서 구하기는 어려워, 다른 금속들을 생산하고 남은 찌꺼기를 화학 처리해 녹여낸 후 전기분해해 비로소 얻어내는 은. 이 은으로 만든 장신구로 세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금속공예가가 있다. 지난 9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세계 최대 규모의 생활디자인 박람회 <메종&오브제>에서 은 장신구들을 선보인 정지민씨다. <메종&오브제>에 다녀온 후 프랑스・벨기에・러시아로부터 들어오는 주문을 소화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정지민씨를 만났다.

“주로 주얼리 갤러리에서 판매될 것이라고 해요. 2014년 루브르박물관 아트숍에도 들어갈 예정이고요. 재미있는 것은 제가 출품한 것은 목걸이인데, 인테리어 관련된 곳에서 관심을 많이 보인다는 거예요.”

<메종&오브제> 기간 중에도 프랑스의 고급 조명업체인 ‘램프 그라(Lampe gras)’가 협업으로 디자인을 하자고 제안했고, 건축가 리아드 체라디(Riad Cherradi)는 베니스 비엔날레 공동 참가를 제안하기도 했다. 그가 만든 장신구의 어떤 점이 유럽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그의 작품의 출발점은 자연물이다. 씨앗・열매・꽃잎 등 자연물의 형태를 추상화한 여러 겹의 판형들이 동심원을 그리며 안으로 말리거나 중첩된 구조를 띠고 있다. 식물 내부의 유기적인 조직을 떠올리게 하는 독특한 모양의 목걸이는 오므라들었다 펼쳐졌다 하면서 움직여 식물의 생장과정, 씨가 산포되는 과정을 연상시킨다. 친근한 자연을 소재로 하면서도 시크한 모더니티를 함께 보여주고 있다는 평이다. 여기에 건축적인 구조미까지 느껴져 ‘새로운 발상, 새로운 감각’을 찾던 세계의 건축 관계자, 인테리어 관계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이다.

금속공예가로서 그는 “내 색깔을 찾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고 말한다.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어려서부터 2~3년 간격으로 외국과 우리나라를 오가며 살았던 그. “새로운 곳에 겨우 적응해 친구를 사귀기 시작하면 떠나야 하는 생활이 어릴 때는 힘들었다”고 말한다. 말레이시아・독일・스웨덴・폴란드 등지를 옮겨 다니며 살았는데, 중학교 시절에는 폴란드에 있던 가족과 떨어져 혼자 독일의 국립발레학교를 다니기도 했다. 발레리나를 꿈꾸던 그는 발목부상을 당한데다 외로움을 이기지 못해 폴란드로 돌아갔다.

고등학교 때 한국으로 돌아왔고, 국민대 금속공예과로 진학했다. 외국에서 국제학교에 다닐 때부터 손으로 만지작만지작 뭔가 만드는 것을 좋아했고, 공예를 전공하겠다고 결심했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도 얼마간은 ‘이 길이 내 길일까’ 방황했습니다. 발레에 대한 미련도 있었고요. 그러다 교환학생으로 영국에 가서 공부하게 되었는데,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그들을 보면서 금속공예에 대한 애정을 되찾았지요.”

대학원에 진학한 그는 ‘나만의 것이 무엇일까’ 탐구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4년 반 동안 스웨덴에서 살았는데, 그때 기억이 오랫동안 제게 영향을 끼친 것 같아요. 집 앞에 체리나무가 있고, 뒷동산에서 썰매를 탔지요. 웬만한 거리는 자전거를 타고 다녔고요. 자연과 더불어 살았던 경험이 제 삶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부모님과 박물관이나 미술관도 많이 다녔는데, 어릴 적에는 지루하다 생각하기도 했지만 그 덕분에 감각을 많이 익힌 것도 같고요.”

그는 대학원시절인 2007~2008년 민들레 홀씨를 모티프로 만들었던 목걸이를 자신의 작업에서 ‘원년’으로 삼는다.

“저 자신이 민들레 홀씨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위 환경을 통해 새로운 곳으로 이동하고, 그곳에 뿌리를 내려 성장하는 씨앗이 제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낯선 문화를 만나고 헤어지고, 이방인으로 살아온 경험에서 제 작업이 시작되었지요. 장신구 역시 착용자로 인해 공간을 이동하지 않습니까? 민들레 홀씨가 바람을 타고 이동하는 것처럼.”

그는 장신구에 ‘움직임’이라는 요소를 넣었다. 식물이 생장하면서 형태가 변화하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가변구조를 넣어 작품을 움직이게 한 것. 그의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이 이렇게 만들어졌다. 접혔다 펼쳐졌다 하는 목걸이에 대해 그는 “사람들이 장난감처럼 만지작거리면서 ‘재미있다’고 느끼게 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장신구 소재로 은을 선택한 것에 대해서는 “은은 너무 무르지도 단단하지도 않은 재질이라 톱질 작업을 할 때 느낌이 좋다. 공예가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소재”라고 말한다.

“뽀얀 색이 제 작품의 느낌과 이미지를 표현하기에 좋습니다. 은은 특히 손으로 매만질수록 광채가 나는 소재라 인간하고 더욱 가까운 것 같아요. 여기저기 부딪히고 마찰이 많을수록 반짝반짝 빛이 나지요.”

그는 자신의 손가락에 끼어 있던 은반지를 보여준다. 나뭇가지를 잘라 만든 듯 자연 느낌이 물씬 나는 은반지는 반짝반짝 광채가 났다. “꽃반지처럼 자연을 연상시키는 반지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는 <메종&오브제>에 참가하게 된 것이 행운이었다고 말한다. 2005년 영국에 있을 때부터 꾸준히 전시회에 참가해온 그는 2011년 말 ‘올해의 작가 12인’에 뽑혀 서울에서 열린 국제공예트렌드페어에서 작품을 선보였다. 이때 <메종&오브제> 관계자 눈에 띄어 2012년 초와 가을 연거푸 <메종&오브제>에 초청된 것. 올가을엔 보다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곳에 부스가 마련됐고, 그만큼 주목도 많이 받았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을 유럽에서 보내서인지, 유럽에 가면 고향에 돌아간 듯 마음이 푸근해진다는 그. 그는 세계적으로 주목받게 되었지만, 여전히 ‘과정’을 중시하는 작업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저는 다른 사람들보다 내 색깔을 찾아가는 것이나 작업이나 느린 편이었습니다. 저보다 더 일찍 주목받는 사람도 많았지만, 흔들리지 않고 제 페이스를 지키려 했습니다. 계획을 짜놓고 꾸준히 해나갔지요. 대학 입학 후 한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10년간 꾸준히 하다 보면 뭐가 되어도 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지요. 제게는 작업하는 과정 자체가 의미 있고, 재미있어요. 결과에 연연하기보다, 그 과정을 잘 마무리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겠다는 자세로 작업하지요. 반응은 그 후에 자연히 따라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언니는 가수이자 화가인 리사. 자매가 모두 디자이너였던 어머니와 그림을 잘 그리신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고 한다.

“지금은 성남에서 다른 작가들과 함께 작업실을 쓰고 있는데, 서울 방배동 집 근처에 언니와 함께 쓸 작업실을 준비 중이에요. 창가에 제 작품들을 디스플레이하는 공간도 둘 계획입니다.”

사진 : 김동욱
  • 2012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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