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덕블루로드 & 영덕대게

정겨운 대게마을 품은 푸른 바다 푸른 길

‘영덕블루로드’란 말에 푸른빛을 내뿜으며 일렁거리는 바다가 떠올랐다. 수려한 해변과 야트막한 언덕이 절묘하게 어울릴 것이란 예감은 적중했다. 영덕의 산과 바다를 아우르며 50km 이어진 블루로드는 기암괴석의 갯바위와 드넓은 해수욕장, 목은 이색(牧隱 李穡) 유적지 등 청정 자연과 문화유산이 한바탕 어우러진다. 블루로드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코스는 대게 원조마을인 차유에서 대소산을 넘어 괴시리 전통마을까지 이어진 길이다. 대게철이다. 블루로드를 걸으며 살이 통통하게 오른 영덕대게도 맛보자.
작고 아담한 포구, 대게 원조마을 차유

영덕군은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고을이다. 전 지역이 낙동정맥의 동쪽 사면을 차지하고 동쪽은 바다를 접한다. 산지가 해안까지 발달해 작은 항구가 옹기종기 모여 정겹지만, 인근의 포항・울진・청송 등에 비하면 자신 있게 내놓을 수 있는 관광명소가 부족했다. 그러나 2009년에 블루로드가 만들어지면서 유명 관광지가 부럽지 않게 되었다.

전망 좋은 대소산 봉수대에서 바라본 아담한 축산항. 영덕블루로드는 등대가 보이는 죽도산 오른쪽 해안길을 따라 이어진다.
블루로드는 최근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국내 관광지 99’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렸다. 2009년엔 ‘스토리가 있는 문화생태 탐방로 7선’, 2010년엔 ‘명품 녹색 길 33선’에 각각 선정되면서 명실 공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바닷길’로 자리매김했다.

망일봉에서 바라본 영덕의 깊고 푸른 바다. 저 바다를 끼고 이어진 길이 블루로드다.
블루로드 출발점인 차유마을은 대게 원조마을로 유명하지만, 손바닥만 한 포구를 품은 소박한 어촌 마을이다. 마을 입구 해변에는 대게의 원조임을 알리는 비석과 대게 형상의 해학적인 장승이 서 있다. 고려시대부터 이곳에서 잡은 게의 다리가 마치 대나무 마디를 닮았다 하여 대게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한다. 대게는 사람들이 흔히 알고 있는 ‘큰(大) 게’가 아니다. 한문으로는 ‘죽해(竹蟹)’라 쓴다. 작은 배 서너 척이 정박한 포구에서 노부부가 쌀쌀한 바람을 맞으며 그물을 손질하고 있다. 아저씨 성함은 김돌산. 40년 넘게 바다를 일터 삼아 생계를 꾸려왔다.

차유마을을 지나 축산항에 이르면 커다란 다리와 죽도산이 반긴다.
“게 맛 아는 사람은 이곳 대게를 최고로 친다 아닙니까. 다른 곳보다 값도 비싸요.”

무심코 지나쳤던 영덕의 작은 포구들에는 김돌산씨처럼 늙은 어부들의 애환이 깃들어 있었다. 언덕 비탈에 총총히 자리 잡은 마을을 지나 본격적으로 해안길에 오른다. 이 길은 도로와 산으로 나뉘어 있기 때문에 조용하고 자연에 가깝다. 허연 파도가 몰려와 해안을 연달아 때리지만, 절벽은 요지부동이다. 푸른 바다, 검은 돌, 부서진 흰 파도가 어울려 기막힌 풍경을 빚어낸다.

대게 집산지 강구항과 대게 고르기


영덕블루로드를 걸었으면 강구항으로 돌아와 대게를 맛볼 일이다. 영덕의 젖줄인 오십천이 동해로 흘러드는 어귀에 있는 강구항(江口港)은 지금은 영덕대게로 이름 높지만, 1997년 방영된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로 알려지기 전까지는 외지인의 발길이 그다지 많지 않은 항구였다. 현재는 강구항 주변으로 영덕대게 전문식당들이 성시를 이루고 있다.

강구항 사람들의 활기찬 기운을 느끼려면 이른 아침에 위판장을 찾을 일이다. 항구 너머로 붉은 햇덩이가 떠오를 무렵이면 밤새 거친 바다에서 조업한 배들이 하나 둘 부두로 들어선다. 만선을 알리는 뱃고동 소리에 갈매기들이 일제히 날갯짓하며 환영한다. 대게잡이 어선도 매일 아침 항구로 들어온다.

대게는 고르는 방법을 어느 정도 알아야지 상인들에게 휘둘리지 않는다. 먼저 싱싱하게 움직이는 게 가장 좋다. 일반적으로 큰 녀석이 맛있다. 크기가 비슷하다면 무거운 녀석을 골라야 한다. 속이 훨씬 알차다. 배를 눌렀을 때 단단해야 한다. 게딱지 위에 검은 팥알 같은 갑낭이 많은 녀석을 고르는 게 좋다. 이는 게와 공생하는 일종의 기생충으로 게딱지로부터 풍부하게 영양분을 공급받았다는 증거인데, 대게의 영양 상태가 양호할수록 많다. 사실 영덕대게는 서민이 먹기엔 부담스러운 편이다. 그래도 영덕까지 와서 대게를 맛보지 않으면 섭섭할 터. 그래서 가능하면 싸게 먹으려 하는데, 대형 식당보다는 시장이나 위판장 주변에서 구입하는 게 싸다. 하지만 ‘싼 게 비지떡’이란 말이 있듯이 가격에 집착하면 맛없는 대게를 고를 확률이 높다. 우선 아무리 싸도 살아 있는 대게를 직접 눈으로 보고 고르는 것을 잊지 말자. 죽은 대게는 아무리 싸도 사 먹지 않는 게 좋다.
축산항이 가까워지자 갯바위와 해안절벽 사이에 작은 모래사장이 숨어 있다. 그대로 옷을 훌훌 벗고 뛰어들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며 길을 걷는다. 축산항의 상징인 죽도산이 점점 다가오더니 어느덧 코앞이다. 축산해수욕장에 발자국을 찍고 해변에서 이어진 다리를 건너면 죽도산이다. 수백 년 동안 이곳의 작은 대나무는 화살로 쓰였다. 말끔하게 나무 데크를 깔아 걷기 좋은 죽도산 산책로는 절경의 연속이다. 죽도산을 한 바퀴 돌면 축산항으로 들어선다. 축산항은 강구항에 비해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포근하고, 백사장과 포구를 두루 갖춘 멋진 곳이다.

1. 영덕블루로드란 이름과 잘 어울리는 창포말등대는 시원한 바다가 일품이다. 게 형상을 한 등대가 재미있다.
2. 강구항은 영덕대게의 집산지로 유명하다. 노천시장에서 대게를 파는 영덕 아가씨.
3. 차유마을의 해학적인 게 장승과 대게 원조마을 비석.

영덕대게가 그려진 영덕블루로드 스탬프.
축산항 버스정류장 뒤편의 야산으로 올라붙으면 산길이 시작된다. 월영정 정자터를 지나면 솔숲 우거진 능선길이 이어진다. 30분쯤 지나니 하늘이 열리며 대소산(282m) 봉수대가 나타난다. 대소산은 인근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조선 초기의 봉수대가 거의 그대로 남아 있다. 봉수대 앞에서 뒤를 돌아보니 전망이 기막히다. 아담하고 예쁜 축산항 오른쪽으로 차유마을, 석리, 그리고 멀리 풍력단지까지 블루로드의 해안선이 한눈에 펼쳐진다. 반대쪽으로는 영해가 낙동정맥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고, 멀리 울진 후포가 아스라하다.

봉수대에서 내려와 한동안 능선을 따르면 느닷없이 정자가 앞을 막는다. 망일봉(152m)으로 예전 선비들이 일출을 즐기던 곳이다.

밀려오던 물결 소린
수레바퀴 구르는 소리처럼
땅 뿌리를 쪼개누나…
만약 겨드랑이에 날개 생겨날 수 있다면
아득히 먼 만장 구름 위로 한 번 날아보련만.
- 주세붕 <망일봉>

안내판에 적힌 주세붕의 시를 읽어보니 절로 호연지기가 느껴진다. 정자 뒤로 세찬 바람이 할퀴는 망망대해를 날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망일봉을 내려와 구름다리를 건너면 목은 이색 등산로가 이어진다. 지루하게 이어지는 산길이 끝나는 지점에 고려문학을 대표하는 목은 이색의 생가터와 기념관이 서 있다. 기념관을 둘러보고 내려오면 고택 30여 채가 잘 보존된 괴시리 전통마을이다. 돌담길 사이로 한 아저씨가 자전거를 타고 가는 모습이 정겹다. 필자가 소개한 블루로드는 여기서 끝나지만, 길은 목은 이색이 고래들이 하얀 분수를 뿜으며 노는 것을 보고 이름 붙인 고래불해수욕장까지 쭉 이어진다.

포구의 정취가 매력적인 강구항.
글・사진 : 진우석 여행작가

블루로드 걷기 가이드
거리 : 약 8km / 시간 : 4시간
코스 : 차유마을-축산항-대소산-괴시리 전통마을
난이도 : 무난한 편
영덕블루로드는 강구항에서 고래불해수욕장까지 약 50km 이어진다. 전 구간을 주파하려면 2박3일이 걸린다. 1박2일 일정이라면 차유마을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것이 좋다. 1코스는 강구항-고불봉-풍력발전단지-창포말등대(17.5km, 6시간). 2코스는 창포말등대-석리-차유마을-축산항(15km, 5시간). 3코스는 축산항-대소산-괴시리 전통마을- 고래불해수욕장(17.5km, 6시간). 이곳에 소개한 코스는 전 구간 중에서 걷기 좋고 풍경이 빼어난 곳이다. 블루로드 코스 중에서 도로를 걷는 구간은 되도록 피하고 창포말등대와 고래불해수욕장 등 명소는 드라이브로 즐기는 것도 괜찮다.
문의 영덕군청 문화관광과(054-730-6392)

숙박
강구항엔 초록바다펜션(054-733-2749), 용궁민박(054-733-3938) 등의 숙소가 있다. 항구와 가까운 삼사해상공원에 동해해상호텔(054-733-4466), 삼사파크모텔(054-733-3001), 그랜드비치모텔(054-733-6030), 글로리모텔(054-733-6450) 등 깨끗한 숙박시설이 여럿 있다.

교통
자가용은 중앙고속도로 서안동 나들목으로 나온다. 안동에서 영덕까지 1시간이 좀 넘게 걸린다. 버스는 동서울터미널 → 영덕 오전 7시~오후 6시, 1일 9회 운행한다. 영덕까지 4시간 20분쯤 걸린다. 영덕에서 강구항 가는 버스는 수시로 있다. 영덕에서 해안을 따라 석리, 차유, 축산을 운행하는 버스(오전 8시, 9시 30분, 11시, 오후 1시 10분, 2시 30분, 4시 30분, 5시 20분, 6시 20분)가 있다. 하산 지점인 괴시리에서 영해터미널까지 10분 걸린다.
영해택시 054-732-0358.

맛집
대게는 담백하면서도 쫄깃쫄깃한 게살을 제대로 맛보려면 찜으로 먹어야 한다. 게딱지에 담겨 있는 ‘게 장(臟)’에 밥을 비벼 먹으면 별미다. 대게 가격은 크기와 무게에 따라 1마리에 1만~18만원으로 다양하다. 강구항엔 대게종가(054-733-4147) 등 대게 전문식당이 200여 곳 있다. 큰 식당에선 보통 1마리당 5만~10만원 정도로 계산한다. 성인 1명이 보통 5만원 정도 예상해야 한다.

  • 2012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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