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의 세계 ⑧ 프로파일러

범죄심리를 분석해 사건의 윤곽을 그리는 사람

1950년대 중반, 뉴욕은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16년에 걸쳐 산발적으로 일어난 방화사건 때문이었다. 경찰은 정신과 의사 브러셀에게 협조를 요청했고, 브러셀은 범인이 쓴 편지와 현장사진을 바탕으로 범인의 특징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분석을 통해 그는 이 사건의 범인이 외국에서 태어났으며, 뚱뚱한 중년남성일 것이라 추측했다. 편집증적 경향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옷차림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 사람일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1956년 검거된 범인 조지 메트스키는 폴란드 출신의 몸집이 큰 중년남성이었는데, 경찰에 체포됐을 때 말끔한 수트 차림이었다. 프로파일링의 시초가 된 일명 ‘미치광이 폭탄범’ 사건이다.
윤곽을 그린다는 프로파일링의 사전적 의미처럼 프로파일러는 사건의 윤곽을 그리는 사람이다. 우리말로는 범죄심리분석관이라고도 한다. 이들은 사건 현장에 남아 있는 단서를 분석해 범인의 연령대와 성별, 성격 등을 추론해낸다. 범인의 특징을 토대로 은신처나 도주경로를 예측하기도 한다. 프로파일러의 분석은 용의자의 범위를 좁혀서 수사방향을 설정하는 데 유용한 자료가 된다.

범인이 체포된 후에도 프로파일러의 활약은 계속된다. 범인을 심문해 자백을 받아내고, 추가범행 여부를 밝힌다. 범인의 성장배경이나 직업, 범행동기와 수법은 물론, 심문과정에서 한 말과 행동을 상세히 기록하는 것도 이들의 임무다. 비슷한 사건이 생길 경우 사건 해결의 열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범죄수사에 프로파일링 기법이 도입된 것은 2000년대 들어서다. 연쇄살인 같은 강력범죄가 늘면서 심리분석을 통한 수사의 필요성이 커졌고, 2000년에 국내 1호 프로파일러가 탄생했다. 2005년부터는 특별채용을 통해 프로파일러를 추가로 배치했다. 현재 활동 중인 프로파일러는 국내에 총 37명이다. 이들은 모두 경찰공무원으로, 경찰청 과학수사센터나 경찰서 과학수사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사건 현장에서 과학수사요원이 범죄자의 DNA나 지문처럼 생물학적인 증거확보에 주력한다면, 프로파일러는 ‘왜?’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사건의 저변에 깔린 범죄자의 심리를 탐구한다. 프로파일러의 심리분석은 증거를 찾기 힘든 연쇄살인·강간·방화사건이나 뚜렷한 범행목적이 없는 ‘묻지마’식 범죄를 해결할 때 특히 빛을 발한다.

프로파일러가 되는 방법은 두 가지다. 과학수사요원이 범죄분석 전문교육을 이수하면 공개채용을 통해 프로파일러의 자격을 갖게 된다. 경찰관이 아닌 사람도 특별채용을 통해 프로파일러가 될 수 있다. 프로파일러로 특별채용된 사람 가운데는 심리학이나 사회학 전공자가 많고, 석사 이상의 고학력자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프로파일러의 업무와 가장 관계 깊은 학문분야는 범죄심리학이다. 국내에 범죄심리학과가 독자적으로 개설된 대학은 없지만, 경찰행정학이나 심리학의 심화전공을 통해 범죄심리학 과목을 수강할 수 있다. 경기대를 비롯한 몇 군데 대학은 대학원 과정에 범죄심리학 과정이 개설돼 있다. 이외에 인류학이나 상담관련 지식을 쌓아두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공개채용과 특별채용을 통해 뽑힌 사람들은 모두 경찰학교에서 6개월간 교육과정을 거쳐 각 기관에 배치된다.

프로파일러의 신규채용은 정기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새로운 인력을 뽑기보다는 기존인력을 전문화하는 데 박차를 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력범죄가 급증하고, 증거를 남기지 않는 지능범이 많아지면서 프로파일러에 대한 수요 또한 꾸준히 늘고 있다. 구역 내에 사건을 담당하는 프로파일러가 서울경찰청 5명, 지방경찰청 2~3명 수준이라는 사실을 고려할 때, 채용규모는 서서히 늘 것으로 보인다.

영화〈셜록 홈즈〉와 미국 드라마 〈크리미널 마인드〉, 국내 드라마 〈아이리스〉 속 사건의 중심에는 프로파일러가 있다. 단숨에 사건의 핵심을 짚어내는 이들의 모습은 전율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실제 프로파일러의 일상은 TV나 영화에서만큼 화려하지 않다. 사건이 발생하면 언제든 출동해야 하기 때문에 늘 긴장을 늦출 수 없고, 출장과 야근도 잦다. 범죄현장과 범죄자를 마주하는 데서 오는 정신적 스트레스도 크다. 프로파일러에게 강한 체력과 정신력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이유다. 하지만 사회에 대한 투철한 책임감을 지닌 사람이라면 고단한 일상에서도 최고의 기쁨을 경험할 수 있는 직업이 프로파일러다.

<톱클래스>는 경기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에서 근무하고 있는 고준채 경사를 만나, 그의 일과를 통해 프로파일러의 세계를 엿보았다.


프로파일러 고준채 경사

추론을 통한 범죄의 해결사, 프로파일러의 하루

  관동대학교 경찰행정학과 졸업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 석사과정 졸업
프로파일러 특채 1기
경기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근무

“양들의 울음소리는 멈췄나?”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남긴 채 스크린은 암흑으로 변했다. 고등학생 때 본 영화 〈양들의 침묵〉은 충격이었다. 여성들을 잔혹하게 살해하는 범인과 그의 뒤를 쫓는 경찰. 나는 경찰이 되고 싶었다. 범죄 관련 책과 영화를 찾아보는 시간이 늘었고, 경찰행정학과에 입학해 경찰의 꿈을 키웠다. 수업시간에 배운 경찰의 수사기법 중 프로파일링이라는 기법이 눈에 띄었다. 외국에는 범인의 심리분석을 통해 사건의 실마리를 찾는 사람이 있으며, 그를 프로파일러라 부른다고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군 제대 후 우리나라에서도 프로파일러를 특별 채용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2005년, 나는 한국의 특채 1기 프로파일러가 됐다.

프로파일러로 일한 지 7년째인 지금, 내 삶이 어릴 적 봤던 영화 같지는 않다. 영화와 달리 편집이 없는 삶에서 범죄는 단숨에 해결되지 않는다. 하나의 사건이 해결되기까지 짧게는 1주일, 길게는 수년이 걸린다. 하지만 오늘도 사건의 해결이라는 결말에 한 걸음씩 다가서고 있다.


오전 8시 _____
출근해 사무실 책상 앞에 앉는다. 이른 시각이지만, 이때쯤이면 경기지방경찰청은 모든 업무가 시작된다. 가장 먼저 당직사건을 검토한다. 밤사이에 일어난 사건사고를 하나씩 살펴보고, 프로파일러의 지원이 필요한 사건을 추려낸다. 범인이 검거된 사건이라면 범인과의 인터뷰 일정을 정하고, 범인이 확인되지 않은 사건이라면 현장출동 계획을 세운다.

오전 11시 _____
강력사건이 일어난 구역의 경찰서로 이동한다. 범인과의 인터뷰가 있기 때문이다. 형사의 수사가 끝난 직후인지라 경직된 범인은 좀처럼 말이 없다. 이런 범인의 말문을 트이게 해서 진솔한 이야기를 끌어내는 것이 나의 임무다. ‘좋아하는 일이 있나?’ ‘직업은 뭔가?’와 같은 가벼운 질문에서 시작해 서서히 질문의 수위를 높여간다.
어린 시절과 부모에 대한 이야기, 청소년기 이야기, 범행 전의 생활 이야기를 통해 범인의 삶을 추측한다. 친구관계, 이성관계, 직장동료와의 관계에 관한 질문을 던져 범인이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방식을 알아본다. 범죄를 저지른 이유나 그때의 심리상태에 대한 질문은 프로파일러에 대한 범인의 경계가 허물어질 때쯤인 후반부에 한다.
프로파일러로서 가장 힘든 일은 범인과의 인터뷰에서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이다. 현장의 참혹함을 보고 나면 범인이 저지른 만행에 분노가 인다. 자신의 죄에 대해 거짓말을 하거나 확증이 있음에도 범행을 부인하는 범인들과 마주 하면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아 애를 태운다. 하지만 7년간 범인들과 인터뷰를 거듭하면서 범인의 사고에 대해 객관적인 시각을 갖게 됐다. 이해하기 힘든 범인의 심리도 차후 수사에 귀중한 자료가 될 수 있으므로 한마디 말과 작은 행동까지도 놓치지 않고 기록한다.

오후 2시 _____
현장감식팀과 함께 다음 목적지인 사건 현장으로 출동한다. 사건 현장을 대할 때 제일 먼저 생각하는 것은 ‘피해자가 무슨 이유로 이 시간에 이 장소에 있었는가’다. 현장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세세한 범행흔적을 번갈아 보면서 특징적인 부분을 찾는다. 범인을 추적하는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프로파일러의 관찰이 끝나면 현장감식팀이 사건 현장에 들어와 지문이나 DNA, 혈흔, 발자국과 같은 흔적을 조사한다. 현장에서 나오면 현장감식팀과 프로파일러팀이 모여 수사회의를 한다. 이때, 프로파일러의 견해와 현장감식팀의 증거를 함께 제시하면서 수사의 방향을 잡아나간다. 회의를 하다 보면 어느덧 해가 지고, 퇴근 시간이 가까워온다. 하지만 사건의 신속한 해결이 목표인 경찰은 정시퇴근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동료들과 간단히 저녁식사를 하고, 회의를 이어간다.

오후 10시 _____
회의 후에는 오늘 담당한 인터뷰와 사건에 관한 대략적인 보고서를 작성한다. 프로파일러에게 세심한 관찰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관찰을 하나의 결과물로 만드는 것이다. 결과물을 완성하는 과정에는 학자와 같은 탐구정신이 필요하다. 프로파일러로 일하면서 대학원 진학을 결심한 것도 탐구하는 자세를 기르기 위해서였다. 프로파일러 업무와 학업을 병행하는 일이 만만치 않았지만, 생각한 주제를 끊임없이 파고들어가 결론을 도출해내는 끈기를 배웠다. 보고서 작성에 열을 올리다 보면 시계가 자정을 알린다.

새벽 2시 _____
집에 들어와 잠든 가족들의 얼굴을 바라본다. 일을 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를 해소해주는 것은 가족이다. 열한 살, 일곱 살, 한 살짜리 세 아들이 있다. 세 아들이 자랑스러워하는 아버지가 되는 것이 꿈이다. 크면 경찰이 되어서 아빠 제복을 물려 입겠다는 아들을 보면 피식 웃음이 난다.
잠자리에 눕는 순간에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언제 사건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살인이나 강간 같은 강력사건은 대개 밤이나 새벽 시간대에 발생한다. 밤 시간대에 사건이 발생할 경우, 현장으로 출동해 분석과 회의를 거치다 보면 어슴푸레 동이 터오기도 한다. 휴대전화를 침대 옆에 놓아둔 채 잠이 든다.

사건의 해결이 더딜수록 해결하고 싶은 열망도 커져간다. 프로파일링은 여러 관찰을 모으고, 관찰에 대한 추론을 통해 결론을 내는 작업이다. 얼핏 들으면 마치 대입을 통해 답이 나오는 수학공식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관찰을 해석하고 추론하는 과정이 명확하게 이루어지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론은 명확해야 한다. 여기에 프로파일러의 고민이 있다. 사건이 장기화될 경우, 스스로 피해자가 되어보기도 한다. 20대 여성 실종사건을 담당하던 때, 그 여성의 모습이 마지막으로 발견된 거리를 찾아가본 적이 있다. 여성이 발견된 새벽시간에 맞춰 길을 걸으면서 여성의 눈에 비친 주변의 분위기를 느끼려 노력했다.

이렇게 해서 내린 결론이 범인을 잡는 데 도움이 됐을 때는 짜릿한 기쁨을 맛본다. 프로파일러 1년차 시절 담당했던 강호순 사건이 그렇다. 비슷한 기간에 벌어진 4건의 실종사건이 한 사람의 연쇄살인이라는 의견과 각각 다른 사람의 살인이라는 의견이 대립하고 있었다. 프로파일러팀이 연쇄살인으로 결론을 내리고, 그 방향으로 수사한 끝에 범인을 검거했다. 잊을 수 없는 사건이다.

그러나 프로파일러가 옳은 결론을 내렸다고 해서 범인이 잡히는 것은 아니다. 범인을 추적하는 형사와 프로파일러 간에 긴밀한 협조가 이루어질 때, 수사는 급물살을 탄다. 서로 다른 시각을 갖고 있는 두 팀의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형사가 사건에 대한 정보를 줄 때나 힘을 합쳐 사건을 해결한 후 고마움을 전할 때는 찡한 감동이 온다.

무고한 사람들이 범죄의 피해를 입고 죽어가고 있다. 오늘도 이 사람들의 울음을 멈추게 하기 위해 일한다. 우리나라에는 영화 〈살인의 추억〉을 통해 알려진 화성연쇄살인사건처럼 오랜 시간 동안 해결되지 않은 사건이 많다. 그 사건들이 추억 속에 묻혀 버리기 전에 해결하는 것이 내 목표다.

사진 : 김선아
  • 2012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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