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연재 | 직업의 세계 ⑦ 변리사

법률과 기술 지식 겸비해 아이디어를 지키는 사람들

1923년, 18세 소년 루드는 여자 친구의 주름치마를 보고 기막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허리선이 오목하게 드러난 치마를 보는 순간, 신체의 곡선을 닮은 병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루드가 제작한 코카콜라 병은 세계 각지에서 사용되었고, 병 제조공장 직원이었던 루드는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되었다.

2012년, 세계 9개 나라에서 삼성전자와 애플의 빅 매치가 펼쳐지고 있다. 1년 반 동안 50차례 넘게 이어져온 싸움은 회를 거듭할수록 승자를 예측하기 어려워지는 상황이다. 싸움에서 패할 경우, 해당국가에서의 제품광고 금지와 판매중단 등 치명적인 손실을 입게 된다.

어린 소년을 억만장자로 만들기도 하고, 세계적인 두 기업을 싸우게도 하는 것은 바로 특허권이다. 특허권이란 기술을 공개해 국가산업을 발전시키는 대가로 기술의 발명자에게 주어지는 권리를 말한다. 내 기술을 만인이 볼 수 있도록 하는 대신 아무도 모방하지 못하도록 ‘찜’하는 권리인 것이다. 특허권은 아이디어를 개발한 사람에게 독점적인 수익을 얻는 날개를 달아주며, 기업에게는 경쟁사를 견제하는 최고의 무기가 되기도 한다.

변리사는 특허권을 비롯한 지식재산권을 다루는 전문가다. 변리사가 다루는 영역에는 특허권 말고도 실용신안권·디자인권·상표권이 있다. 특허권과 실용신안권은 기술과 관련 있는 영역이며, 디자인권과 상표권은 제품의 모양과 관계있는 영역이다. 흔히 특허권은 네 가지 모두를 이르는 말로 사용한다. 최근에는 변리사 사이에서도 특허·실용신안을 전문으로 하는 변리사와 디자인·상표를 주로 담당하는 변리사가 구분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규모가 큰 법률사무소는 전자·화학공학 등 출신학과에 따라 변리사의 담당분야를 더욱 세분화하기도 한다.

변리사가 의뢰인의 지식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해 하는 일은 크게 두 가지, 특허신청과 특허소송 대리다. 변리사는 의뢰인에게 건네받은 아이디어의 정보를 꼼꼼하게 살핀 다음, 이것을 글로 풀어 특허명세서를 작성해 특허신청을 한다. 특허분쟁이 발생했을 때 소송 당사자를 변론하는 서류를 작성하는 일도 한다.

법을 이용하는 직업이라는 점에서 변리사는 변호사·법무사와 비슷한 면이 있지만, 다루는 법의 영역에 차이가 있다. 변호사가 전반적인 법을 두루 다룬다면, 법무사는 부동산 관련 법을 주로 다룬다. 변리사는 법 중에서도 지식재산권 관련법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지식재산권은 과학이나 기술에 관련된 것이 대부분이므로 변리사는 법률지식과 함께 과학과 공학지식도 풍부하게 갖추고 있어야 한다. 변호사·법무사와 달리 변리사 가운데 유독 이공계 출신이 많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또 국제 특허분쟁이 발생하면 외국어로 서류를 작성해야 하므로 외국어 실력을 겸비하고 있으면 유리하다.

변리사를 뽑는 변리사 시험에서도 법률지식과 과학관련 지식, 외국어 능력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토익·토플·텝스 등 영어시험에서 일정 점수 이상을 얻어야 응시자격이 주어지며, 특허법·상표법 등 법률시험과 자연과학개론 등 과학시험, 기계설계·전기자기학 등 공학시험에서 고득점을 획득해야 변리사 시험에 합격할 수 있다.

합격한 후에는 지식 재산연수원에서 1개월, 변리사 사무소에서 11개월간 수습시간을 거치면 변리사로 활동할 수 있다. 변호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은 변리사 시험을 통하지 않고도 자동으로 변리사 자격을 갖게 된다.

변리사 자격을 얻게 되면 법률사무소에 고용되어 일하거나 직접 법률사무소를 개업할 수 있다. 특허청에서 5급 공무원으로 근무할 수 있으며, 기업의 지식재산권 관련 부서에서 일할 수도 있다.

지식재산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는 요즘, 변리사의 미래는 청신호다. 아이디어의 가치를 인식한 사람들이 늘면서 특허출원이 늘고 있고, 그 범위도 다양해지고 있다. 특허가 기업의 사활에 미치는 영향도 커지면서 동종업계 간의 특허분쟁도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톱클래스>는 법률사무소를 개업해 독자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정우성 변리사를 만났다. 인터뷰를 통해 전해들은 그의 일과를 일기 형식으로 재구성해보았다.


정우성 변리사

지식재산권으로 고객을 빛내는 행복한 조력자, 변리사의 하루

고려대학교 전기공학과 졸업
최정 국제특허법률사무소 근무
《특허전쟁》 《세계를 뒤흔든 특허전쟁 승자는 누구인가?》 저자

나는 꿈이 없었다. 전기공학을 전공으로 택한 이유는 단 한 가지, 이공계가 취직에 유리하다는 주위의 권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전공은 나와 잘 맞지 않았고, 대학시절 내내 학사경고를 받아가며 이곳저곳을 부유했다. 졸업을 하자마자 입대했고, 제대 후에는 암담했다. 먹고살 길을 찾아야 했지만, 내가 어떤 일을 좋아하는지 몰랐다. 무작정 발길을 옮긴 곳은 서점. 직업관련 서적을 뒤적이다 변리사라는 이름을 발견했다. 합격수기를 보던 중 아르바이트와 병행하면서도 준비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변리사 시험공부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2년 반의 준비기간 끝에 2002년 서른한 살의 나이에 변리사가 됐다.

변리사는 흔히 높은 수익이 보장되는 직업이라고들 한다. 변리사로 일한 지 10년째인 현재, 꽤 안정적인 수익을 얻는다. 그러나 수익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치열한 하루하루의 산물이다.


오전 6시 _____
잠에서 깬다. 알람시계가 없어도 기상시간은 7시를 넘기지 않는다. 그때부터 업무가 시작된다. 침실 건너편에 있는 방 두 칸이 사무실이다. 2년 전에 집과 사무실을 합쳐 이사했다. 출퇴근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사무실에 출근해’ 오늘 가장 먼저 처리해야 할 특허신청이 무엇인지 생각한다. 따로 메모해두지 않아도 특허기한이 머릿속에 순서대로 저장되어 있다. 특허기한은 특허의 생명선이나 마찬가지다. 아무리 훌륭한 특허라도 기한을 넘기면 죽고 만다. 지켜야 할 기한이 많다. 일이 많을 때는 한 달에 수백 개의 특허기한을 지켜야 할 때도 있지만, 특허를 살리는 것이 일이기에 빠짐없이 기억하고 지킨다.

오전 10시 _____
약속한 시간에 의뢰인을 만난다. 기술에 대한 설명을 듣고, 설계도나 명세서, 성능실험 데이터 등 기술관련 서류를 건네받는다. 지난 10년 동안 다양한 의뢰인을 만났다. 국내 대기업과 외국계 기업 관계자, 이제 막 창업한 청년 사업가들이 특허의뢰를 해왔다. 그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자신의 기술에 대한 자부심과 꿈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꿈의 소중함을 알기에 어느 기술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다. 보완할 부분에 대해 조언도 하고, 의뢰인과 머리를 맞대고 특허인정을 받기 위한 방안을 모색한다.

오전 11시 _____
의뢰인의 아이디어가 기존의 특허와 겹치지 않는지 확인한 후, 중복되는 특허가 없다고 판단되면 특허신청에 필요한 특허명세서를 쓴다. 특허명세서를 쓸 때는 기술에 대한 의뢰인의 설명과 자료, 제품을 유심히 살펴야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변리사가 기술과 법률 전문가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언어감각이다. 특허는 기술을 언어로 조리 있게 설명한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들이 그렇듯 특허명세서를 쓰면서 창작의 고통을 겪는다. 이 기술을 정확히 표현할 만한 어휘가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좀 더 설득력 있는 문장을 쓸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데, 한 단어, 한 문장을 쓰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특허명세서에서 특히 역점을 두는 부분은 특허의 범위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기술의 전부를 쓰지 않고, 비슷한 기능별로 범주화해 강조할 부분을 도드라지게 한다.

오후 1시 _____
점심식사 중에도 끊임없이 전화벨이 울린다. 각종 문의전화다. 특허를 출원한 개인이나 기업 관계자가 특허권에 문제가 생겼다며 해결방법을 묻기도 하고, 외국계 기업 관계자가 자국과 다른 한국의 특허권 제도에 대해 질문하기도 한다. 그들의 궁금증에 친절히 답하는 것도 일이다. 이메일 문의도 답변한다. 간혹 사무실로 직접 찾아와 상담을 청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럴 때는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다음 할 일은 의견서를 쓰는 일이다. 의견서는 특허신청이 인정되지 않았을 때 다시 한 번 심사관을 설득하기 위해 쓰는 서류다. 요즘은 특허심사가 한층 엄격해져 특허를 한 번에 취득하기가 어렵다. 신청한 특허 가운데 80% 정도가 부정적인 결과를 통보받는다. 변리사는 특허청이 밝힌 거절 이유에 반박하는 내용을 담은 의견서를 작성한다. 변리사의 의견서는 특허획득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가 된다. 변리사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중간사건’이라 부른다.

오후 4시 _____
글을 쓰는 일은 곧 에너지를 쓰는 일이다. 각종 특허서류를 작성하는 데 힘을 쏟다 보면 머리에 쥐가 날 듯 피로감이 몰려온다. 틈틈이 머리를 식혀야 한다. 머리를 식힐 때는 종종 시를 쓴다. 변리사 시험공부를 하면서 처음 접한 시는 힘든 시간을 버틸 수 있는 위안이 됐다. 변리사가 된 후 5년 동안 ‘셔터맨’ 생활을 했다. 대학시절 못 다한 공부를 만회하기 위해 아침부터 밤까지 휴일도 없이 일했다. 마흔이 넘어 일이 손에 익고 나서는 좋아하는 일을 잠깐씩 해보기로 결심했고, 시를 쓰고 있다.
다양한 분야의 책도 읽는다. 의뢰인의 대다수는 사업가다. 사업가는 특허를 신청하거나 특허소송을 진행할 때 많은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급여, 마케팅, 자금운용 등 여러 요소가 특허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허신청을 할 때 이런 요소를 함께 고민하려면 다방면의 지식을 갖춰야 한다. 인문사회계열 책도 자주 읽는다. 특허는 기술과 관련된 영역이고, 기술은 사람이 만드는 것이다. 변리사에게 인간에 대한 이해와 타인을 배려하는 자세가 필수적인 이유다.

오후 6시 _____
모든 업무를 끝내고, 거실로 나간다. 저녁식사 후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오후 10시 _____
잠자리에 든다. 막 잠이 들려는 찰나, 발끝에서부터 불안감이 엄습해온다. 사무실로 달려가 다시 컴퓨터 앞에 앉는다. 제출하기로 한 서류가 모두 제출된 것을 확인하고서야 ‘휴’ 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며 침실로 돌아간다.


이런 일과로 여러 건의 특허신청에 관한 일을 한꺼번에 처리하는데, 특허소송은 거의 맡지 않는 편이다. 도리어 기를 쓰고 말리는 일이 많다. 소송보다 협상이 먼저라는 개인적 판단 때문이다. 특허소송을 하는 데는 자금이 많이 든다. 경제적 여유가 없는 사람이나 중소기업이 오랜 시간 특허소송에 휘말릴 경우, 소송의 승패를 떠나 경제적으로 존폐의 위기에 처할 수 있으므로 특허소송은 신중해야 한다.

일상적 업무 외에 지식재산권에 대한 강연이나 인터뷰도 한다. 강연내용은 청중에 따라 달라지는데, 기업 임원들을 대상으로 강의할 때는 기업 업무와 관계있는 정보에 대해 이야기하고, 대중을 상대로 강의할 때는 지식재산권의 전반적 내용을 쉽게 설명한다. 지식재산권과 관련된 사회적 이슈가 있으면 TV나 신문 인터뷰를 통해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나는 꿈이 있다. 변리사로서 의뢰인을 빛나게 해주는 것이다. 변리사는 스스로 빛나는 직업이 아니다. 하루 종일 많은 양의 업무를 소화하지만, 그 목적은 나 자신이 아닌 의뢰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데 있다. 의뢰인이 빛날 때 최고의 보람을 느낀다. 특허를 인정받아 호황을 누리고 있는 의뢰인의 모습을 볼 때 그렇다. 나는 행복한 조력자다.

사진 : 김선아
  • 2012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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