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부부가 산골에서 부치는 편지 (69) 동네 한 바퀴

글 : 이상희 

그림 : 원재길
울울창창 짙푸르던 감나무가 어느새 헐렁합니다. 태풍이 쓸고 간 자리에 가을이 온 모양입니다. 남편이 뜰 일을 하다가 익지도 않은 채 떨어진 감이 아까운지 소쿠리에 주워 담습니다. 빨래를 너는 둥 마는 둥 뭉게구름에 한눈파는 내게 감 소쿠리를 보여주더니, 문득 마실이나 다녀오잡니다.

“가을이 어디까지 왔나, 보러 갑시다!”

앞장서 내달리는 돌돌이에게 호돌이 곁에 앉아 집 지키라 일러놓고 숲골짜기를 빠져나갑니다. 모처럼 기웃기웃 느릿느릿 옆 동네 쪽으로 가봅니다. 달리다 멈춰 걷고, 다시 달리다 멈추고 걸으면서 멀리 가까이 산과 집들을 둘러봅니다. 물소리 새소리를 들어보고 햇살과 나무를 만져봅니다. 황토집, 벽돌집, 슬레이트집, 조립주택, 컨테이너집… 시골 마을에서 늘 보던 집들 말고도 외계인이 살고 있을 듯한 반구형 집도 있습니다. 길에서 눈 익은 절 표지를 따라 구불구불 산길로 꺾어들어보니, 불상이며 달마상 동자상이 즐비합니다. 절 뜰을 한 바퀴 돌고는 물소리 따라 걸어도 봅니다.

“바로 옆 동네에도 이런 계곡이 있었네!”

“음… 여기 한 번 와본 적 있어요. 정득이가 처갓집 식구들과 물놀이하고 있다고 부른 적이 있거든.”

“참, 정득씨네 새집 다 지었다더니, 집들이 안 한대요?”

“집들이는커녕 이사도 못하고 지내나봐요.”

그런 얘기하며 우리 동네로 들어오는 길인데 왼쪽에서 반짝, 정득씨네 새집이 눈에 들어옵니다. ‘나 좀 보고 가세요’ 하듯이.

“새집 구경해요.”

다리 건너 병구씨네 집을 지나면 오래된 흙집에 비닐하우스며 축사며 새집까지, 온통 정득씨 세상입니다. 계십니까, 소리치며 대문 없는 마당으로 들어가니 정득씨는 없고 부엌일하던 미숙씨가 내다봅니다.

“축하해요! 기영이 아빠는 안 계시네?”

쑥스러워하면서도 벙긋벙긋 웃는 미숙씨를 따라 축사 위 새집을 향하는데, 송아지 둘은 끔벅끔벅 쳐다보고 줄에 묶인 수캐 하나는 월월 짖어대고 예쁜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며 콩콩 뛰어나옵니다.

“저 강아지 낳은 지 얼마 안 돼서, 아빠 개가 좀 예민해요.”

구운 빵 색깔 벽돌을 쌓아 더도 덜도 없이 똑 떨어지게 지은 새집 문을 여니 현관에 이어 널따란 거실이 훤합니다.

“집은 두 달 만에 지었는데, 마감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고요.”

미숙씨 설명을 들으며 욕실 딸린 부부 방, 딸 방, 공동욕실, 아들 방을 둘러봅니다. 군더더기 호삿거리 없이 단출합니다.

“수납장을 좀 더 짜 넣었어야 하는데… 주방도 좀 그렇지요? 마감하고나니 아쉬운 점이 여러 가지예요.”

집 지어본 사람은 알지만, 시간이며 비용이 넉넉지 않고서야 아쉬움투성이일 수밖에요. 더구나 온종일 논밭에서 흙손으로 사는 농부 남편에 바깥일 나다니는 아내이고보니, 벼르고 별러 처음 집을 지어놓고도 두어 달째 이사할 엄두도 못 내는 참, 구경꾼은 그저 좋은 점만 들먹이며 축하에 위로를 곁들일 뿐입니다.

집 구경하고 내려오자마자 오늘 정득씨네 일 거든 건수씨며 송태씨, 집주인 정득씨가 차례차례 들이닥칩니다. 마당에 자리를 깔고 즉석 삼겹살 파티가 벌어집니다.

“에에, 달님이 또 걸렸네! 저 소나무 가지를 쳐야 한다니까!”

소주 한 잔에 만년 소녀 미숙씨가 짐짓 투덜대며 묵은지에 싼 고기 한 점을 내 입에 넣어줍니다.

“달님이 소나무 사이로 보여서 좋은데, 뭘!”

달님은 보름달, 밀린 원고 걱정 내일 밭일꾼 부를 걱정 다 잊은 채 정다움만 그처럼 그득합니다.
글쓴이 원재길·이상희 씨 부부는 원주시 부론면 단강리 산골에서 살며 시와 그림책을 씁니다.
  • 2012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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