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국화주 만드는 예술주조 전영자 대표

해풍 맞고 자란 야생 국화로 빚는 ‘소량생산·한정판매 주(酒)’

예술주조는 충남 서산시 음암면에 있는 작은 시골마을 양조장이다. 전통 막걸리를 주로 생산하던 이곳에서 2002년 선보인 들국화주는 순전히 입소문만으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다. 생산량이 많지 않아 일반 소매점에서는 판매하지 않고 택배 주문만 가능한데도 전국 각지에서 주문 전화가 밀려든다. 그 뒤에는 작은 양조장이지만 시류를 읽고 꾸준히 변화를 시도한 전영자 대표가 있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예술주조가 자리 잡고 있는 충남 서산 음암면 도당리는 옛 시골 정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최신 기기인 내비게이션은 좁은 골목이 이리저리 이어진 마을 한가운데로 들어서자 무용지물이 되었다. 그늘에서 쉬고 있던 마을 어르신을 만나 예술주조의 위치를 물으니 무척 친절하게 길을 일러주었다. 알고보니, 32년 된 음암양조장(예술주조의 옛 이름)은 이 마을의 큰 자랑거리였다.

“제가 들국화주로 방송에 몇 번 소개된 걸 보신 뒤로 어르신들이 아주 뿌듯해하세요.(웃음) 외지 사람들과 사돈을 맺거나 다른 지역 행사 같은 데 참석하면 꼭 들국화주를 들고 가서 ‘이게 우리 동네 양조장에서 만드는 유명한 술’이라고 자랑을 하신대요. 들국화주를 만들 때도 동네 어르신들이 실험단 겸 자문단으로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이곳은 바닷가와 가까워 해풍 맞고 자란 야생 들국화가 많아요. 그런데 어르신들이 종종 ‘옛말에, 들국화 옆에 흐르는 물만 마셔도 늙지 않는다고 하더라’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만큼 몸에 좋은 성분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뜻이잖아요. 마침 새로운 술을 계획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왕이면 지역 특산물로 약주를 한번 만들어보자 생각했지요.”

전영자 대표는 “그동안 계속 막걸리만 만들어 왔기 때문에 들국화술은 새로운 도전이었다”며, “제품이 나오기까지 1년 동안 실패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를 포함해 직원 4명이 전부인 작은 양조장에서 그는 1인 다역을 해야 했다. 재료를 구하는 일에서부터 시제품 생산까지 모두 그의 몫이었다. 지형이 험한 곳에서 주로 자라는 들국화를 채취하다 발을 헛디뎌 큰 사고를 당할 뻔한 적도 있었다.

“채취 작업이 힘들어 밭에 재배도 해봤는데 국화 특유의 향이 약하더라고요. 그래서 고생스럽더라도 야생종만 쓰고 있어요. 그러니 저희에게는 가을에 국화 따는 일이 1년 농사나 마찬가지예요. 보통 10월 25일을 전후해 만개하면 길어야 열흘 정도 이어지기 때문에 그 시기를 잘 맞추어야 해요. 그때 1년치를 따서 그늘에 말렸다가 저온창고에 보관합니다. 잘 말려야 향이 고스란히 남기 때문에 건조 작업 때도 자주 살펴야 해요. 손이 아주 많이 가지요.”

향이 좋은 들국화술은 출시 직후 애주가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10년이 지난 지금은 ‘마니아’를 자처하는 단골도 많다. 하지만 수작업이 많은 가내 수공업 형태로 술을 만들다보니 많은 양을 만들지는 못한다. 전국적인 유통망을 갖춘 업체들로부터 공급 요청이 쇄도하지만 모두 거절하는 이유다. 현재 들국화술은 서산 시내 대형마트와 일부 가게에서만 판매하고, 전화 주문을 통한 택배만 가능하다. 수출하고 싶다는 제안도 “물량을 맞추기 어렵다”는 이유로 고사했다.

“그렇게 하려면 시설을 늘리고, 규모를 키워야 하는데 저는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사업을 거창하게 하고 싶은 욕심도 없고, 그저 제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서 좋은 술을 정성껏 빚어 저희 술을 좋아하는 분들과 나누며 살고 싶어요.”


서산 특산품인 생강을 넣은 생강막걸리도 인기

예술주조의 창업자는 그의 남편인 이문수씨다. 전국 막걸리 양조장에 밀가루를 납품하는 대리점을 하던 이씨는 1979년 직접 양조장 사업에 뛰어들었다. 전 대표는 결혼 직후 남편이 다른 사업을 시작하면서 본의 아니게 양조장 일을 맡게 되었다. 스물두 살에 결혼했으니, 그의 양조장 경력도 어느덧 20여 년을 헤아린다.

사업도, 막걸리를 만드는 일도 모두 처음이었지만 눈썰미가 좋았던 그는 일을 빨리 배웠다. 시류를 읽는 안목도 뛰어나 적절한 시기에 새로운 제품을 출시해 위기를 헤쳐나갔다. 막걸리의 경우 초창기에 밀가루와 쌀을 혼합해 만들던 것을 일찌감치 우리쌀 100%로 전환했고, 이후 생강막걸리로 또 한 번 히트작을 냈다. 서산의 특산품인 생강을 잘 말려 가루로 만든 후 막걸리에 섞은 생강막걸리는 몇 해 전 막걸리 열풍이 불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다만 생강이 몸을 따뜻하게 하는 성질이 있어 여름에는 판매하지 않고 9월 25일부터 이듬해 5월 25일까지만 내놓는다.

“전통 막걸리가 주춤해질 것이라는 생각에 만든 것이 들국화주였어요. 막걸리 붐이 일면 새로운 맛을 찾겠구나 싶어 연구한 것이 생강막걸리였고요. 둘 다 좋은 반응을 얻어 예술주조의 효자상품이 되었지요. 그게 지금까지 이 작은 양조장을 30년 넘게 지켜온 비결입니다. 요즘 막걸리 인기가 예전 같지 않은 걸 보니 또 새로운 것을 내놓을 때가 된 것 같아요.”

그는 요즘 거품막걸리를 구상하고 있다. 농촌진흥청에서 최근 거품막걸리를 개발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걸음에 달려가 설명을 들었다. 로열티를 내고 레시피를 받는 정식 계약도 체결할 예정이다. 좋은 술을 위해 천연 재료를 고집하고, 암반수도 직접 채굴해 쓰는 그는 지금도 매일 오전 7시 전에 양조장에 나와 술을 빚는다. 이후 오후 7시까지 꼬박 양조장을 지키며 직원들과 똑같이 일한다. 반바지에 장화를 신고 양조장을 오가는 그는 “사장님은 어디 계시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이곳은 술을 직접 받으러 오는 사람이 많아 일요일 하루만 쉰다.

인터뷰하는 동안, 양조장에는 여러 명의 손님이 들고 났다. 커다란 20L들이 술통을 들고 와 막걸리며 들국화술을 받아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옛 시절을 그린 드라마에서나 보던 장면이었다. 삼베 적삼을 곱게 차려입은 한 어르신은 소파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술통을 들고 일어섰고, 할머니 한 분은 “지난번에 그냥 가지고 간 막걸리값”이라며 돈을 내밀었다. 정겹게 이야기를 나누는 그들 뒤로 ‘들국화주 20L 3만원, 막걸리 20L 1만8000원(각각 통값 3000원 별도)’이라고 쓴 ‘착한’ 가격표가 눈에 들어왔다. 전 대표는 “원가가 올라도 술값은 몇 해째 그대로”라며 웃었다. 술과 함께 정(情)을 빚는 양조장, 예술주조의 술이 좋은 향을 내는 진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사진 : 김선아
  • 2012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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