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부부가 산골에서 부치는 편지 (67) 고추밭 김매고 감자밭 콩 심고

글 : 이상희 

그림 : 원재길
숲이 기뻐합니다. 두어 달 가뭄을 견디던 숲이 반나절 쏟아진 비를 마시고 푸른 숨을 내쉬고 있습니다. 식탁 창에 담긴 솔숲 풍경에 감탄하느라, 싱그러운 기운을 만끽하느라, 아침을 드는 둥 마는 둥 합니다.

“하늘이 아니면 누가 저 숲을 한꺼번에 적시랴….”

수저를 놓고 막 따온 오이 하나를 통째 베어 물던 남편이 맞장구칩니다.

“농부 친구들도 얼마나 좋아하던지!”

엊저녁 비 그친 뒤 농부 친구들하고 한잔했던 시간을 떠올리는 모양입니다. 하늘만 바라보며 비 내리기만 바라고 바라느라 그동안 모두들 애를 태웠겠지요.

“그러고 보면 말이에요, ‘하늘만 바라본다…’는 관용구도 농경생활에서 비롯된 표현이네요.”

나부터도 손바닥만큼 짓는 밭농사를, 그것도 좀처럼 거들 짬을 못 내어 구경만 하는 처지인데도 ‘비’에 대한 생각이 그전과는 한껏 달라진 터입니다. 이번 가뭄에도 농부들만큼은 아니지만, 행여나 하늘에 비구름이 보이는지 어떤지 꽤나 자주 하늘을 올려다봤습니다.

“오늘은 감자밭에 콩 심는 날!”

남편이 먼저 일어나 빈 그릇을 설거지통으로 옮기면서 하는 말이 묘합니다.

“감자밭에 콩을 심는다고요?”

무슨 얘기냐고 묻는 말에 남편이 설명합니다.

“이맘때면 감자 캐고 난 밭에 콩을 심거든. 그런데 우리 감자가 올에 늦되어서 그냥 감자 포기 사이사이에 심겠다는 뜻이에요.”

그러면서 마감 앞둔 글도 제쳐놓고 바깥일부터 할 참이라기에 나도 책상 일 제쳐두고 따라나서기로 합니다.

“고추밭 김매는 건 내가 할게요.”

모처럼 떳떳한 숲골짜기 사람이 되어서 고추밭이 어디 있나, 뜰을 둘러봅니다. 그런데 몇 해째 고추밭이던 자리에 오이며 토마토가 자라고 있습니다. 투명 고추를 심었나, 우두커니 서 있는데 감자밭 쪽에서 남편이 소리칩니다.

“거기 고추밭은 건사하기 힘들어 없앴어요. 여기저기 찾아보세요.”

남편한테 힌트를 얻고서야 ‘밭’이라고 하긴 미안할 정도의 고춧대를 ‘숨은 그림 찾기’ 하듯 찾아냅니다. 내가 일하러 나갈 때 바로 따갈 수 있도록, 자동차 세우는 자리 가까이 여기저기에 다섯 줄기나 여섯 줄기씩 심어둔 것입니다.

“잡초 뽑아낸 다음엔 둘레 흙을 잘 북돋워줘야 해요!”

‘북돋운다’는 말도 농사에서 비롯되었구나 싶지만, 실제로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건지 감이 안 잡혀 남편을 부릅니다.

“풀을 뽑아내고 나면 이렇게 흙이 파헤쳐지잖아요. 줄기 둘레로 흙을 모아서 잘 돋워주라는 얘기지요.”

시범을 보인 대로 따라 합니다. 비를 머금은 흙 땅이 떡고물처럼 말랑말랑 고슬고슬하니 풀이 쑥쑥 잘도 뽑힙니다. 풀을 뽑아 내치고, 토닥토닥 북돋우고… 박자도 척척 맞게 손놀림이 능숙해질 무렵, 휙 내치려던 풀을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그 또한 이유가 있는 생명이라 생각하면 미안한 일이 아닐 수 없어서입니다.

그렇게 느릿느릿 고추밭 김매기가 끝났습니다. 마침 남편도 감자밭 사이사이 콩 심기가 끝나 허리를 펴는 것이 보입니다. 다가가보니 콩 그릇에 콩이 한 줌 넘게 남았습니다.

“할머니들처럼 우리도 울타리 가장자리 따라 심어요.”

콩을 한 번에 세 알씩 심는 이유는 옛이야기에서 배웠습니다. 너 한 알, 나 한 알, 새 한 알. 콩 세 알에 천지가 배부릅니다.
글쓴이 원재길·이상희 씨 부부는 원주시 부론면 단강리 산골에서 살며 시와 그림책을 씁니다.
  • 2012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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