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사이클 디자이너·인형 작가 최상훈

아토피 걸린 딸 위해 옷과 인형 직접 만들면서 ‘바느질하는 남자’ 됐어요

‘남자가 무슨 바느질이냐’는 소리를 들을까 두려워, 5년 동안 집안에서만 바느질을 했던 최상훈(45)씨. 집안에 틀어박혀 하나 둘 만들기 시작한 인형이 인터넷 블로그와 홍대의 작은 카페에서 전시회를 열면서 인기를 얻게 되었다. 매년 크고 작은 인형 전시회를 여는 그는 버려진 옷을 재활용하는 일에도 열정적이다. 아토피를 앓던 늦둥이 딸을 위해 유기농 천과 재활용 옷감으로 옷을 만들어 입혔는데, 새 옷보다 더 아이의 건강에 유익했기 때문이다. 화학 성분이 모두 빠져나간 버려진 옷을 새롭게 만들어 건강과 이 사회에 도움을 주고 싶다는 그를 만났다.
동글동글한 얼굴에 까만 단추로 눈을 박은 인형은 마치 한국사람 같았다. 헝겊으로 만든 긴 팔과 다리는 관절이 있는 인형처럼 자유롭게 움직였다. 인형의 얼굴이 풍기는 분위기는 한국인 같은데, 몸매는 늘씬해 보였다. 최상훈씨는 “6등신으로 만들었다”며 자신이 만든 인형을 하나하나 소개했다. 자신의 친한 친구를 소개하듯 따듯한 표정과 말투였다.

“인형을 만든 다음에는 이름을 붙여줍니다. 제 딸 이름인 ‘하령’ 인형도 있고요. 그때그때 생각나는 예쁜 이름을 지어주고 있어요. 인형을 만든 지 20년이 다 되어가는데, 아쉬운 점도 많네요.”

서울 마포구 홍익대 앞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 ‘로라홈’. 입구에는 그가 만든 수어 개의 인형이 방실방실 웃는 표정으로 오고가는 사람들을 반긴다. 또 누군가 입다 버린 수십 벌의 청바지, 작업 중인 각종 인테리어 소품, 높은 선반에는 각종 천이 빼곡히 쌓여 있었다. 그는 “딸에게 선물하기 위해 인형을 만들었는데 이제 업이 되었다”며 “아무래도 인형을 사는 사람의 취향도 고려하게 된다”고 했다. 그는 지금까지 홍대의 작은 카페나 인형 박물관 등에서 크고 작은 인형 전시회를 수십 차례 열기도 했다.

“인형 작가가 되는 공부를 따로 하지는 않았어요. 제 고향은 경기도 이천인데요. 그곳에서 처음 했던 일이 목공소에 디자인을 의뢰해, 각종 인테리어 소품을 제작해 판매하는 일이었습니다. 제가 직접 물건을 만들지는 않았죠. 그러다 보니 디자인뿐만 아니라 모든 과정을 스스로 해보고 싶은 욕심이 들었습니다.”

그는 인테리어 소품을 판매하던 중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했다며 피식 웃었다. “결혼하자마자 아내와 함께 시장 한 모퉁이에서 옷 장사를 시작했는데, 가게를 열 수 있을 만큼 돈을 모을 때까지만 하자고 약속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때 정말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동네 시장의 옷 가게인데도, 디스플레이에 엄청 신경 썼어요. 다른 옷 가게와 차별화하기 위해서 자연 친화적인 콘셉트의 옷만 가져다 팔았거든요. 플라스틱 마네킹이 아니라, 원목으로 된 마네킹을 주문 제작한 후 자연 친화적인 옷을 입혔습니다.”

그 후 그는 경기도 이천에서 인테리어 소품을 파는 ‘초원의 집’을 열었다. 집안을 꾸미는 데 필요한 모든 종류의 물건을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해 팔았는데, 동네 아주머니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그의 제품은 서울까지 소문이 났고, 독특한 디자인 가게들이 모이는 서울 인사동 쌈지길에 매장을 낼 정도가 됐다. ‘초원의 집’은 당시 그가 즐겨 보던 외화 드라마의 제목이며, 현재 그의 브랜드인 ‘로라홈’은 “그 드라마의 주인공 이름”이라며 웃었다.


화학물질 빠진 헌 옷이 건강에는 좋아요

“옷을 만드는 원단은 반드시 화학물질로 처리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새 옷일수록 화학물질이 많이 남아 있죠. 가장 좋은 방법은 유기농 원단 등 화학적 처리 과정을 최소화한 원단으로 옷을 해 입는 것이고, 그다음으로 건강에 유익한 옷은 이미 낡을 대로 낡은 옷을 고쳐 입는 것입니다.”

그의 딸은 태어나자마자 심한 아토피 증세가 있었는데, 유기농 원단이나 재활용 천으로 만든 옷을 입은 후 증상이 완화되었다고 한다. 그는 “부모는 자식에게 가장 좋은 것을 찾아준다”고 했다.

“세상에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딸이 아토피로 고생하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굉장히 마음이 아팠죠. 제가 아빠로서 해줄 수 있는 일을 찾던 중, 아이가 가지고 노는 인형과 아이의 살에 닿는 옷을 직접 만들어주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화학 성분이 빠진 오래된 옷을 활용했지요.”

현재 초등학교 2학년인 그의 딸은 이제 아토피로 고생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오래 입어 해진 속옷으로 아이 옷을 만들어주면 가장 좋다”고 말했다. 또 그가 선호하는 원단은 버려지는 청바지다. 청바지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갖고 있는 옷 중 하나인데 그래서 가장 많이 버려진다. 그는 몇 년 전부터 한 여성단체에서 주관하는 직업교육 프로그램에 강사로 참여하며, 재활용품에 대한 강의도 열고 있다.

“버려진 옷으로 새 옷을 만드는 일이 건강을 지킬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 이후로 주변에 버릴 옷이 있으면 보내달라거나 아름다운 가게 등 재활용품 가게에서 새롭게 태어날 옷감을 구하고 있습니다. 재활용 천으로 만든 옷은 조금 허름하고 수수해 보이지만, 우리의 건강과 미래를 밝게 비춰줄 방법입니다.”

그가 재활용 옷감을 활용해 만든 옷이나 소품은 공장에서 갓 나온 신제품보다 결코 싸지 않다. 낡은 옷을 해체한 후 새 제품으로 재탄생하는 과정의 인건비를 생각하면 신제품 못지않게 가격을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버려지는 것과 새로 사는 것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옷과 인형을 직접 만들어줄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 기뻤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드러내놓고 바느질을 하기까지는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어요. 패션 디자이너 중에는 남자가 많지만, 바느질을 한다고 하면 이상하게 보거든요. 가게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틈틈이 바느질 공부를 하기 시작했어요. 주로 일본의 바느질 관련 서적을 열심히 봤고요. 일본어를 배운 것도 바느질 교본을 보기 위해서였어요.”

바느질에 관심 있는 인터넷 블로거들과 그가 쓴 책 《바느질 하는 남자》 등을 통해 그의 사연은 조금씩 세상에 알려졌다. 그는 최근 몇 년간 바느질을 배우고 싶다며 자신을 찾아오는 남자들이 늘고 있다며 웃었다. 그는 “남성과 여성의 바느질은 분명 차이가 있다. 섬세한 면은 여성이, 견고한 면은 남성이 더 강한 편”이라고 말했다.

“제가 추구하는 것은 세탁하면 할수록 강해지는 힘입니다. 바느질해서 만든 홈패션 제품은 약할 것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요. 남성적인 느낌이 나면서, 견고하고 튼튼한 제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인형 제작은 바느질 꽃이라고 볼 수 있어요. 바느질의 모든 기술이 다 필요하거든요.”

그는 죽을 때까지 바느질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눈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무언가를 만들고, 그것을 사용하며 기뻐할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 그가 만드는 인형, 옷 등은 이 세상에 버려지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이야기한다. 그는 또 그것들이 다시 쓰일 때 얼마나 좋은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해 부모의 마음으로 전달할 것이다.

사진 : 김선아
  • 2012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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