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부부가 산골에서 부치는 편지 (66) 산딸기, 밭딸기

글 : 이상희 

그림 : 원재길
이제 뜰은 완벽히 초록빛입니다. 서둘러 꽃 진 나무들이 가지며 덩굴을 벋고 또 벋어 새 잎을 내고 넓히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마침 새 하나가 ‘쪼르릉’ 하고 소리치며 감나무 우듬지 너머를 향해 날아오르는데, 그제야 아둔하게도 맥락을 놓치고 살던 자연의 독자가 한 소식-깨우침을 얻습니다.

“이런!”

가까운 숲과 먼 산도 초록빛, 온 세상 천지간이 벌써 초록빛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야 발견한 초록빛 세상이 지루하다고 하면 호사에 겨운 엄살이지만, 별나게 색감을 탐하는 이에게는 멀미가 나도록 눈이 심심한 것도 사실입니다. 이맘때 군데군데 피어나는 마가렛 하얀 꽃과 드문드문 점 찍힌 산딸기 빨간 열매가 고맙기만 합니다.

“아, 이 빨간색!”

윗뜰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려다 말고 바로 옆 바위틈에 오르르 맺힌 빨간 산딸기로 몸이 돌아가는데, 뒤편에 있던 남편이 “그래도!” 하고 외치며 등을 떠밉니다.

“그래도?”

“그래도 밭딸기가 먼저라고요.”

그렇게 등 떠밀려 뒤뜰 딸기밭으로 가서야 선문답의 행간을 읽습니다.

요컨대 ‘산딸기가 먹음직스럽지만 그래도 밭딸기 먼저 맛봐야 한다’는 겁니다.

“꽤 열렸지요? 함께 먹으려고 기다린 보람이 있네.”

“참, 완전히 빨갛지도 않고 모양도 시원찮은데 단맛이 깊네요. 맛있다!”

내외는 부지런히 딸기를 탐합니다. 덤불 속을 뒤져 찾느라 따느라 먹느라, 우스꽝스레 말이 끊기는 것도 부끄러워하지 않으면서요. 수퍼마켓 것에 견줄 수 없는 생생한 자연의 맛도 새삼 놀랍지만, 딸기 모종 두 포기가 이룬 놀라운 역사(歷史)가 경이롭기만 합니다.

“거의 백배쯤 늘린 셈이지요? 이렇게 딸기밭이 되었으니 말예요.”

“올해는 모종을 옮겨서 서고 뒤편에도 딸기밭을 만들려고요.”

그렇게 딸기밭에서 잠깐 시간을 보내고 들어와 점심을 먹고 났을 때입니다.

“이번엔 산딸기?”

“아하, 산딸기!”

남편이 일러주는 대로 장화를 신고, 손가락 부분에 고무를 덧씌운 면장갑을 낍니다.

“뱀과 가시를 피해?”

“맞아요, 뱀과 가시를 피해!”

밭을 일궈 열매를 거두는 경작의 역사를 거슬러 수렵채취 시대로 돌아간 내외가 빗살무늬토기 아닌 종이 대접 하나씩을 들고 뜰을 돌아다닙니다. ‘두 개의 바위틈을 지나 청춘을 찾듯’, 여느 때엔 눈길도 주지 않던 개울가 험한 바위산(집 지을 때 파내어 한데 모아 쌓아둔 바위들)을 오르내리며 가시덤불을 뒤집니다. 빨간 야생 열매를, 딴다기보다는 먹어버립니다. 물 주고 가꾸어 길러 마땅히 거두는 것과는 또 달리, 눈 밝은 자가 얻어 갖는 선물의 기쁨이 별나게 달콤합니다. 그래저래 손에 든 그릇이 좀처럼 채워지지 않습니다.

“어머니 아버지도 좀 드셔야 하는데! 우리 딸내미도 먹여야 하는데!”

그 밖에도 이 야생의 선물을 먹이고픈 열 명 백 명의 얼굴들이 떠오릅니다. 개암을 주울 때마다 가족 형제 몫을 먼저 챙긴 옛이야기의 주인공에게 진심으로 고개가 숙여지는 참입니다. ‘구석기시대식 열매 채취 놀이를 길게 할 시간이 없는 탓이야!’ 라는 마음 한쪽에서 소리치는 변명은, 그러나 대체로 진실입니다.
글쓴이 원재길·이상희 씨 부부는 원주시 부론면 단강리 산골에서 살며 시와 그림책을 씁니다.
  • 2012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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