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부부가 산골에서 부치는 편지 (65) 생일잔치

글 : 이상희 

그림 : 원재길
꽃 피우고 새 잎 내는 나무도 아닌데 하루하루 봄날이 덧없이 분주합니다. 돌아서면 주말이다 싶더니, 이즈음엔 고개만 돌려도 어느새 주말… 그나마 이 주말, 패랭이꽃그림책버스 개관 8주년 기념행사를 치르고 들어온 숲골짜기 뜰은 벌써 일요일의 해가 저무는 참입니다.

자동차 문을 열자마자 돌돌이가 보입니다. 그새 허리며 다리가 길어져 다 큰 개가 된 채 꼬리를 치며 올려다봅니다.

“봄꽃은 지고, 우리 돌돌이는 쑥쑥 커버리고!”

녀석을 쓰다듬으며 한탄하는데, 서울에서 며칠 다니러 오신 어머니가 현관문을 열고 나오십니다.

“얼마나 고단하니? 어여 들어가서 밥 먹자!”

“다녀왔습니다… 아범 왔지요?”

“그럼, 왔지. 씻고 있다.”

남편도 오늘 후배를 데려와서, 행사 내내 투호며 제기 차기며 공기놀이 같은 전통놀이 프로그램을 맡아 아이들과 놀아주고 탁자 나르는 뒤치다꺼리까지 해주느라 크게 애를 썼습니다. 수고한 후배와 맥주 한잔한다고 먼저 출발했는데 벌써 와 있는 걸 보니, 말 그대로 딱 한 잔만 하고 헤어진 모양입니다.

“쑥 뜯어다가 떡도 쪄놨으니 어서 먹어라들. 난 먼저 먹었다.”

그렇지 않아도 내외는 행사 짬짬이 숲골짜기 할머님들과 어울려 쑥 뜯으러 가신 어머니 얘기 주고받으며 입맛을 다셨습니다. 쑥버무리 맛있겠다면서요.

곧바로 눕고 싶은 몸을 간신히 부지해 욕실에 들렀다가, 주방으로 갑니다. 식탁이 쑥버무리며 산나물 반찬으로 푸릇푸릇합니다. 밥 생각 없이 잠깐 앉았다 일어나야지 했던 생각과는 딴판으로 금세 밥 한 공기를 비우고 맙니다.

밥심에 기운이 나서 내외는 비로소 낮의 행사 얘길 나눕니다.

“아주 한여름 날씨 같더군. 다 좋은데, 햇볕 때문에 힘들더라고요.”

“해마다 날씨 때문에 아주 힘들었잖아요. 이번엔 웬일로 날씨가 도와줬다고 모두 좋아했는걸요.”

“처음 그림책버스 개관식 하던 날도 오늘 날씨와 비슷했어요. 그날도 오늘처럼 양복 입고 참석했다가 고생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렇구나. 그때 딱 한 번 날씨가 좋았고, 이번에 좋았던 거네요. 매번 비 오고 바람 불어서 프로그램 부스마다 준비물이 날아가고 야단이었어요. 그러고 보니 원 작가 등장하는 날마다 ‘햇살 가득’이었네!”

그러자마자 남편은 그림책버스 회원들이 자기를 그처럼 많이 알아보는 걸 보면 여러 번 참여한 거라고 강변합니다.

“그런가? 왜 내가 기억을 못하지? 또 언제언제 왔어요?”

함께 기억을 더듬은 끝에 남편은 개관기념 잔치 아닌 행사에 두어 번 왔던 것으로 정리되었지만, 얼굴을 내보이거나 않거나 상관없이 늘 그림책버스 일을 지켜봐주고 지지해준다는 것을 내가 모를 리 없습니다.

“그나저나… 세월 빠르네요. 벌써 8년째라니.”

“아득한 옛일 같기도 하고, 엊그제 같기도 하고요.”

“회원들 아이들은 통 못 알아보겠던데요.”

“도연이, 도은이, 지영이… 아까 인사하던 아이들, 기억나요? 야들야들한 꼬마들이었는데 처녀티가 나잖아요? 민성이며 용채는 기저귀 시절부터 보던 아이들이고요.”

“그림책 읽고, 그림책 만들고….”

“그러는 덕분에 친구들한테 크리스마스카드 만들어 보내면서도 ‘글・그림 김도연’ 이렇게 쓴다잖아요.”

남편이 껄껄 웃고, 나도 따라 웃으며 어둑해진 창밖을 내다봅니다.

문득 모두들 돌아가고 없는 공원 한켠에 잠자코 서 있을 그림책버스가 떠오릅니다. 나는 마음의 손을 쭉 뻗으며 악수를 건넵니다.

‘그림책 전문 꼬마도서관 패랭이꽃그림책버스, 생일 축하해!’
글쓴이 원재길·이상희 씨 부부는 원주시 부론면 단강리 산골에서 살며 시와 그림책을 씁니다.
  • 2012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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