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아이디어로 글로벌 디자인 상품을 만들다 - 윤성문 아벨파트너즈 디자이너

일상에서 스치는 생각, 영화에서 디자인 영감을 얻죠

이은미, 권정주, 윤성문. (왼쪽부터)
잠수부가 물속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연상케 하는 귀여운 티 인퓨저(tea infuser, 차를 우려낼 때 쓰이는 도구) ‘티 다이버(Tea Diver)’. 바닷속을 헤엄치는 스쿠버다이버가 끓여주는 차는 과연 어떤 맛일까? 스쿠버다이버 모양의 인퓨저 안에 찻잎을 넣고 뜨거운 물속으로 잠수시키면 1~2분 뒤 차를 마실 수 있다.

아벨파트너즈의 윤성문 디자이너가 세상에 내놓은 ‘티 다이버’는 지난해 파리에서 열린 세계 최대 생활용품 박람회 ‘메종 오브제’에서 해외 바이어로부터 10만 개의 선주문을 받으며 준비한 물량이 동날 정도로 호평을 받았다.

바닷속으로 다이빙하는 잠수부 모습에서 영감을 얻은 티 다이버 제품은 그가 일상에서 얻은 아이디어였다. 그는 낚시하는 사람 모습에서 영감을 얻어 티백을 고정해주는 ‘티 피싱’이라는 제품도 디자인했다. 티 피싱은 종이인형이 컵에 걸터앉아 마치 낚시하는 것처럼 티백을 물에 담그고 있는 모습이다. 다큐멘터리와 영화를 좋아하는 윤성문씨는 티 피싱, 티 다이버 제품의 모티프를 각각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과 다큐멘터리 〈북에서 온 머구리〉에서 가져왔다.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에 나온 플라잉 낚시 장면의 느낌은 ‘티 피싱’으로, 다큐멘터리 〈북에서 온 머구리〉의 주인공인 잠수부의 형상은 고스란히 ‘티 다이버’로 이어졌다. 윤성문씨의 아이디어는 대부분 일상에서 스쳐가는 이미지를 캐치하는 데서 시작된다. 홍익대학교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윤성문씨는 졸업 후 잠시 일했던 전시회사에서 산업전시 프로젝트를 하며 제품디자이너를 꿈꾸게 되었다.

“그림을 사서 감상하는 사람은 소수이지만, 제품을 만들면 여러 사람이 사용할 수 있어 피드백도 많고, 제 제품을 사용하면서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쾌감이 클 것 같아 제품디자이너가 되었습니다.”

제품디자이너로 진로를 정한 그는 홍익대학교 국제디자인 전문대학원에 들어갔다.

“회화를 할 때는 자기만족이 중요한 데 제품 디자인을 하면서 관점을 바꾸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그동안 개인 작업만 하다 팀 작업을 하다 보니 부딪치는 일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데생은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제품 스케치는 따로 배우지 않았다.

“회화를 할 때는 완성된 이미지를 미리 상상하면서 이를 얼마만큼 표현해내느냐가 중요합니다. 제품 디자인 작업도 머릿속에서 스케치하고 바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지요.”

티 인퓨저 ‘티 다이버’.
취업 대신 아벨파트너즈 스튜디오를 꾸린 건 교환학생으로 스웨덴 에테보리 디자인예술대학에서 지낸 경험이 도움이 되었다. 졸업을 앞두고 유럽 친구에게 취업 걱정을 털어놓았더니, 그 친구는 의아해했다. 왜 취업을 하느냐며 자신은 디자인 스튜디오를 차릴 생각이라고 했다. “경력도 없는 사람에게 누가 일거리를 주겠느냐”고 물었더니 친구는 “디자인이 좋으면 제조업체가 스스로 찾아올 것이고, 아니면 직접 판매해도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언뜻 무모한 것처럼 들렸지만, 유럽은 그만큼 소규모 디자인 스튜디오에 대한 인식과 시장이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그는 ‘한국도 이제 그렇게 될 것’이라는 비전을 가지고 돌아와서 비슷한 생각을 가진 홍익대학교 국제디자인전문대학원 동기 권정주 대표와 의기투합해서 아벨파트너즈를 시작했다. 2009년 아벨파트너즈를 시작했을 때 자본이 부족했던 이들은 가격 대비 성능이 좋은 초기 제품으로 뭘 하면 좋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

“어느 날 새 차가 지나가는데 신차에 붙어 나오는 파랑색 스크래치 방지용 스펀지가 눈에 띄었습니다. 이왕 붙일 거 모양이 예쁘면 더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스크래치 가드를 출시했습니다.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어요. 신차 출시 때 붙어 나오는 스펀지를 그대로 붙이고 다니는 사람도 많은데, 이왕이면 예쁜 디자인으로 하자는 거였죠. 출시 2년이 지났지만 꾸준히 팔리고 있습니다.”

티백을 고정해주는 제품 ‘티 피싱’.
아벨파트너즈는 충분한 리서치를 거친 후 시장상황을 보고 상품화할 제품의 콘셉트를 잡는 일반적인 프로세스와는 달리 아이디어 스케치를 리서치보다 우선시한다. 콘셉트에 제약을 두면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기 힘들다는 판단 때문이다. 일상에서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이리저리 스케치를 해보다 좋은 아이템이라고 생각되면, 리서치와 분석에 들어간다. 그 아이디어가 이미 제품화되어 시장에 나와 있는지, 시장성은 충분한지, 구매층은 어떤지를 철저히 분석하고 이에 맞게 초기 디자인을 수정해나가는 방식이다.

“저희는 시장성을 분석할 때 먼저 잘 아는 생산공장 사장님들에게 의견을 물어봐요. 그분들은 경험이 많아서 안목이 정확하거든요. 그 후 프로토 타입을 대중에게 선보이며 일반인의 반응도 살피죠. 전문가・비전문가 그룹을 나눠서 평가를 받기도 하고요. 가격도 직접 현장에서 체크하고 결정해요. 콘셉트를 꺼내기까지는 무한한 자유를 두지만 이어지는 분석과정에서는 현실성을 가지고 꼼꼼하게 진행하는 편이죠.”

스크래치 방지용 제품 ‘스크래치 가드’.
‘티 다이버’ 를 비롯해 이들이 만드는 상품의 80%는 영국・프랑스・독일 등 유럽과 중국 등 세계 각국에서 팔린다. 아벨파트너즈의 제품들은 국내보다 해외 판매가 더 활성화되어 있다. 이들의 판매 전략 역시 해외 7, 국내 3 정도로 해외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 해외 판매를 개척하는 주요 통로로는 메종 오브제, 100% 디자인 같은 전시회나 디자인 마켓 등으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참가하고 있다.

“아직 국내시장은 디자인 제품 구매에 인색해요. 유럽 같은 선진 해외시장에서는 디자인 제품 구매는 물론 디자인 가치를 인정하는 인식이 성숙되어 있습니다. 최근에는 한국 디자인이 크리에이티브하다고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는 분위기입니다.”

현재는 소비자들의 피드백을 바탕으로 티 다이버에서 부족한 점을 보완한 버전업 제품인 티다이버 2가 출시됐다. 미묘한 색감이 감도는 조명 제품도 함께 출시되어 인기몰이 중이다.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리빙 디자인 브랜드 알레시(Alessi) 같은 회사를 꿈꾼다는 그는 “알레시에는 디자이너가 없어요. 프로젝트마다 그에 맞는 디자이너와 손잡고 일해 수익을 나누는 구조죠. 저희도 그런 모델로 가고 싶은데, 그전까지는 아벨파트너즈라는 회사가 제품 생산부터 마케팅까지 할 수 있다는 걸 보여드려야 할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아벨파트너즈의 ‘아벨’은 그리스어로 용기・창조・열정을 뜻합니다. 거기에 파트너즈를 붙여서 열정을 가진 디자이너들의 파트너랄까요? 디자인을 하고 싶은 친구들에게 금전적인 지원은 해주지 못하더라도 조언과 컨설팅, 실무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습니다. 디자인 사업을 시작하려는 분들도 자주 찾아오는데, 저희 경험을 나눠드리고 싶습니다.”

사진 : 김선아
  • 2012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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