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s pick

magazine 인기기사

topp 인기기사

daily 인기기사

시인 부부가 산골에서 부치는 편지 (63) 새 식구 돌돌이

글 : 이상희 

그림 : 원재길
열다섯 시간을 내리 자고, 어둑한 오후에 일어나 아침밥으로 먹는 사과를 한입 베어 문 채 우두커니 창밖을 바라봅니다. 계절이 바뀌느라 까칠한 숲골짜기 풍경이 눈앞에서도 오랜 옛일인 듯싶습니다. 여행에서 돌아온 이틀째까지도 애매하고 서먹한 기분으로 몸살을 앓는 참입니다. 여덟 시간이나 차이가 나는 꽤 먼 거리를 날아온 탓만은 아니지 싶습니다.

“일어났어요? 햇살이 좋아요오?”

짐짓 말꼬리를 늘이며 소리치는 남편 목소리 쪽으로 향하던 걸음조차 엉키고 맙니다. 주방에서 거실로 나가는 어둑한 복도가 마치 판타지 동화에 등장하는 시간의 통로인 듯, 이제 막 아침을 맞은 제네바 친구네 집에서의 일상이 보입니다. 아래층 주방에서 필리핀 도우미가 아침 준비를 하는 기척이 들리고, 그 소리에 늦잠을 털어내느라 목을 이리저리 돌리던 몸짓마저 익숙하게 살아납니다.

“뜰에 나가봅시다아?”

부드럽게 재촉하느라 계속 말꼬리를 늘이는 남편 목소리를 다시 한번 듣고서야 숲골짜기집 흙벽돌이며 통나무 천장이 또렷이 눈에 들어옵니다.

“나가요오?”

덩달아 말꼬리를 늘어뜨리며 현관문을 여는데, 하얀 공 같은 것이 쪼르르 달려와 주위를 빙빙 돕니다.

“우리 돌돌이 한번 불러봐주시우!”

까만 단추 같은 눈을 반짝이며 나를 올려다보곤 휙 몸을 돌려 남편 쪽으로 통통 튀어 가더니, 또 다시 달려와 나를 올려다봅니다. 남편이 메일로 보내준 사진에서 봤던 돌돌이란 녀석인가 봅니다.

“네가 돌돌이로구나. 에고, 그새 다 커버렸네!”

조그만 상자가 헐렁하도록 쬐그맣던 사진 속의 녀석과는 사뭇 딴판입니다.

“데려올 때 젖 뗀 지 한 달이라 했으니, 태어난 지 벌써 석 달째인 걸요. 숲골짜기 구경하며 돌아다니느라 하얗던 털이 다 누르스름해졌어요.”

남편은 나 없는 어느 주말에 선배 댁에 갔다가 데려오게 되었다는 돌돌이가 강원도 태생답게 영하의 추위에서도 이불을 다 걷어낸 채 낑낑거리는 소리도 없이 잠을 잘 자더라는 얘기, 마침 탈고한 동화 속 주인공 강아지 이름을 붙여줬다는 얘기, 묶여 지내는 큰형 호돌이며 호돌이의 옛 연인이었던 뒷집 개 발바리와도 잘 어울린다는 얘기를 전해줍니다.

그리고 남편이 운동하느라 설치한 평행봉 근처 돌배나무 아래에 정해놓고 대소변을 본다는 얘기, 그렇게 신통하게 굴면서도 가끔 안아줘보면 갓난쟁이인 듯 칭얼거리는 소리를 낸다는 얘기, 해 저물 즈음 북쪽 먼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든 채 하울링도 하더라는 얘기, 잠시 햇볕 쏘이느라 내놓았던 구두며 장갑을 모조리 물어뜯어놓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당부, 동네의 온갖 뼈다귀를 다 물어다 놔서 현관 앞뜰이 자연사박물관 비슷하게 되었다는 얘기 끝에 물어오기 대장 돌돌이의 빛나는 전적을 듣습니다.

“하루는 웬 휴대폰을 다 물어다 놨길래 개울 건너 할머니들 댁에 가서 임자를 찾았지요. 우씨네 할머니 말씀이, 윗집 강선씨가 몇 번이나 오르락내리락하며 뭔가 찾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강선씨 집으로 전화를 해보니 과연 중요한 걸 잃은 채 저기압 상태라, 우리 집 우편함에 넣어둘 테니 언제든 찾아가라고 했지요.”

그런데 그 다음 날인가 강선씨가 전화를 해서는 고마운 강아지한테 북어나 한 마리 사먹이라며, 우편함에 만원짜리 한 장을 넣어놨더라는 겁니다. 배가 아프도록 웃으며 돌돌이를 간질이는 내게 남편이 일러줍니다.

“살짝 한번 뒤집어 눕혀봐요… 이 집 저 집으로 형제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셋이 남아 있었는데, 돌돌이만 하얗더라고요. 둘은 점박이고 말이지요. 집에 와서 보니 배에 점이 있는 거예요.”

아아, 정말입니다. 돌돌이 배에 별자리처럼 점이 나 있습니다. 유럽 어디가 아닌 동아시아 한반도 강원도 숲골짜기에 지금 내가 점 찍혀 있듯, 돌돌이의 내력이 점 찍혀 있는 겁니다.
글쓴이 원재길·이상희 씨 부부는 원주시 부론면 단강리 산골에서 살며 시와 그림책을 씁니다.
  • 2012년 04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
이름      비밀번호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독자팀)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