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부부가 산골에서 부치는 편지 (61) 눈 오는 날 나무하기

글 : 이상희 

그림 : 원재길
새벽까지 일한 탓에 느지막이 일어나 창문을 여니 매서운 바람 속을 민들레 홀씨 같은 눈이 날아다닙니다.

“눈이 오네… 어디 있어요?”

창문을 닫으며 소리치는데, 대답이 없습니다. 이 방 저 방 문을 열어봐도 남편은 보이지 않습니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무반주 전위음악인 듯 욕실 두 군데서 조금 어긋나게 ‘똑 또똑 똑 똑’ 물 떨어지는 소리만이 숲골짜기 집을 울리고 있습니다.

무안한 마음으로 난롯가에 앉아 사과 한 알과 요구르트로 아침밥을 먹으며 어젯밤에 읽던 책을 폅니다. 헬렌 니어링과 스콧 니어링 부부의 《조화로운 삶》과 《조화로운 삶의 지속》은 《솔로몬의 반지》 《태양의 아이》 등과 함께 2~3년에 한 번씩 거듭 읽는 책입니다. 수없이 읽었건만, 구절구절 새로이 마음을 때리며 숲골짜기에서 살아온 날과 살아갈 날을 격려합니다.

점심시간이 넘어서야 남편이 보낸 문자 메시지가 뜹니다. “지금 출발. 차 한 잔, 물 한 병 부탁해요.” 책 덮고 난로 위 대추차 한 잔에다 물병 준비를 마치자마자 부르릉, 하는 자동차 소리가 나고 컹컹대며 반기는 호돌이에게 대답하는 남편 목소리가 들립니다. 뜰로 나가보니, 자동차 짐칸에 땔나무가 그득합니다.

“나무하러 갔었구나! 이걸 어떻게 다 실어왔어요?”

찻잔을 건네고는 나무를 내리려는데 남편이 한사코 말립니다.

“내가 하는 게 나아요. 장갑을 껴도 가시가 박혀서 고생이야. 옷도 시원찮게 입고 나왔잖아. 얼른 들어가요.”

“나도 도끼질 한번 하고 싶은데… 일찌감치 점심이나 준비해야겠네.”

두부된장찌개 끓는 사이 김장김치 썰어놓고 구운 김 한 접시 차려놓고 창밖을 내다봅니다. 남편은 어느새 나무를 죄다 부려놓고는 톱질까지 끝낸 땔감을 들통 두 개 그득히 거실로 옮기는 중입니다.

식탁 화제는 나무 이야기.

“간벌한 뒤에 싣고 나가고 남겨둔 나무들이 아직도 꽤 있나 보네요.”

“땔감이 가져가기 쉽게 잘 쌓여 있는 게 아니어서 한참을 땔감 될 만한 나무를 찾아 헤매는 거지요. 찾아서 평지까지 끌어내리고, 실어 올리고.”

“에고, 얘기만 들어도 힘드네요. 덕분에 집안은 훈훈하다만.”

“그전에는 나무하는 게 힘들다고만 생각했는데, 직접 구하고 장만한 땔감으로 얻는 이 열기를 생각하면 마음이 달라지더라고요.”

“아, 바로 그런 얘기가 이 책에도 나와요. 아마 자기도 읽은 적 있을 거야.”

《조화로운 삶의 지속》의 ‘나무하기’를 펴서 읽습니다.

“‘시골에 사는 사람은 아무나 나무를 할 수 있다. 손에 들고 일하는 단순한 연장 몇 개만 있으면 된다. 연장 다루기는 어렵지 않다. 나무하기는 하릴없이 텔레비전 앞에서 빈둥거릴 시간에 해치울 수 있는 일이다. 손을 떠는 노인네들이 나무를 해서 식구들 벌이에 큰돈을 보탤 수도 있다. 게다가 톡톡 소리를 내며 타오르는 불꽃 앞에 식구끼리 둘러앉아 웃음꽃을 피울 수도 있지 않은가.’”

“앉아서 글 쓰는 글쟁이들 건강에 도움이 된다, 뭐 그런 내용도 있었는데.”

“맞아, 여기 있네요. 주말마다 숲농장에 가길 좋아했던 호레이스 그릴리라는 글쟁이가 한 얘기를 인용한 거예요. ‘…도끼질을 하면 굽은 어깨가 뒤로 넘어가면서 가슴이 펴지기 때문에 허파가 크게 열린다. 나는 도끼질이 서툴다. 하지만 도끼는 내 의사이자 기쁨이다. 도끼질을 하노라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잡생각에 빠져들지 않고 정신이 또렷해진다. 몸에 있는 근육들이 맘껏 운동을 하지만 지치지 않는다.’”

전기나 석유를 사서 쓰지 않고 손수 자연 속에서 얻은 이 열기가 새삼 경건하게 마음을 덥힙니다. 고구마와 옥수수를 구워주고 대추차를 끓여주고 집안을 훈훈하게 덥혀주는 고마운 난로, 고마운 나무, 고마운 노동입니다.
글쓴이 원재길·이상희 씨 부부는 원주시 부론면 단강리 산골에서 살며 시와 그림책을 씁니다.
  • 2012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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