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음식 전문관 라선재·한국역사문화음식학교 대표 차은정

천년 고도 경주에서 신라 음식을 재현하다

신라 천년의 고도(古都) 경주. 992년 동안 번성했던 신라의 숨결은 이제 유적과 유물로만 남아 있다. 신라인의 후예인 우리는 각종 문헌과 유물을 통해 신라인의 삶을 이해하고자 노력하지만 1000년 전 삶을 온전히 아는 데는 무리가 따른다. 그런데 여기 과감하게 신라인의 밥상을 복원하겠다는 사람이 있다. 경주시 보문관광단지 내 위치한 신라 음식 전문관 ‘라선재’와 ‘한국역사문화음식학교’의 대표 차은정씨다. 불가능할 것 같은 천년의 음식 복원사업에 앞장서서 화려했던 그 옛날 신라의 숨결을 되살리는 그를 만났다.
신라인의 밥상은 어땠을까. 신라 음식은 크게 세 가지 부분에서 차별성을 갖는다고 차은정 대표는 설명한다. 첫째, 화려한 양념 문화다. 경주 일대에서 발굴된 목간(木簡, 종이가 발명되기 이전에 문자를 기록하기 위해 일정한 모양으로 깎아 만든 나무 조각)을 살펴보면 신라인들이 장과 각종 젓갈을 만드는 방법을 적어놓은 일종의 레시피가 있다. 이 목간에 따르면 신라시대에도 된장・간장과 같은 장류, 젓갈 등 양념 문화가 꽤나 발달했음을 알 수 있다. 활발한 해상무역으로 다양한 식재료와 향신료가 유통되었던 신라인의 밥상은 오색찬란하고 화려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현대 우리 양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고추가 당시에는 없었기 때문에 자극적이고 매운 양념은 없었다. 이러한 신라의 음식은 덜 짜고 덜 맵게 먹는 것을 지향하는 현대인의 ‘건강 식단’에 가까워 보인다.

둘째, 식재료의 차별성이다. 신라의 화랑문화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신라인들은 사냥을 즐겼다. 현대의 가축처럼 집에서 기르는 동물보다 자연에서 노니는 짐승이 일반적인 단백질 보충원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신라인들의 밥상에 오르는 고기는 사슴・토끼・꿩 등 야생동물이 많았다.

실제로 신라 귀족 밥상을 묘사한 자료에 따르면 사슴과 토끼 등이 박제 동물마냥 밥상에 놓였다고 한다. 1000년 전 사람들이 현대인보다 더 고급스럽고 희귀한 고기를 먹었던 것이다.

세 번째 특징은 불교색이 강한 식문화였다. 신라는 불교국가였기 때문에 온갖 유물에는 연꽃과 부처 등 불교색이 짙은 무늬가 새겨져 있다. 식기도 불교색이 반영된 디자인이 일반적이었을 텐데, 이는 실제 음식의 모양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음식은 그릇과의 조화를 고려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신라인들은 화려한 미적 감각을 가졌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들이 만들어낸 음식 또한 질박하고 검소하다기보다는 온갖 색이 난무하는 아름다운 예술이었을 것이다.

위의 세 가지 특징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신라인들은 현대인이 부러워할 만한 밥상을 받았다는 것이다. 물론 기록으로 남은 것은 대부분 귀족문화에 관한 것이니 신라인 모두가 호사스러운 음식을 즐긴 것은 아니겠지만, 일부 귀족은 현대인도 감탄할 만한 고급스럽고 세련된 음식을 먹었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음식 문화와 비교해도 신라인의 음식 문화가 훨씬 더 화려했다고 한다. 한 예로 조선시대에는 청렴하고 검소한 선비문화를 지향했기에 왕족의 제사상에 네 줄의 음식이 올랐다. 이에 비해 신라 왕족의 제사상에는 무려 아홉 줄의 음식이 마련되었다고 한다.

다양한 식재료와 양념이 있었기에 조리법도 그만큼 다채로웠을 신라인의 식도락. 부드러운 사슴고기와 진귀한 상어고기를 눈앞에 두고 있었을 서라벌의 이사금을 상상하니 배가 주려온다. 비록 그 누구도 실제로 본 적 없는 신라의 밥상이지만, 그것이 현대의 고급 한정식 이상으로 입 안에서 즐거움을 주는 음식이었을 것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라선재 ‘진골’ 메뉴 상차림.
차은정 대표는 어쩌다 신라 음식에 빠져든 것일까. 그는 처음부터 요리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고 한다. 경희대 식품영양학과를 나온 그는 평범한 영양사로 살아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대학을 갓 졸업한 20대 중반의 영양사가 현장 경험이 풍부한 선배 조리사들과 일하다 보니 학교에서 배운 이론과는 달라 당황스러웠다. 차은정 대표는 다른 길을 택했다. 조리학을 공부해 식품영양학과 조리학의 격차를 극복하는 것.

“식품영양학에 조리학이 더해지니 시너지 효과가 났어요. 단순히 어떤 음식, 어떤 영양소를 섭취해야 하느냐가 아닌, 실제로 어떻게 조리해야 몸에 더 좋은 음식을 만들 수 있는지 알게 되었으니까요.”

동아대학에서 조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그는 몸에 약이 되는 음식인 ‘약선음식’에 심취했다. 부산 영산대학교의 약선학과에 초대학장으로 몸담으며 약선 전문가로 강연을 다니던 도중 경주시에서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당시 백상승 경주시장으로부터 신라음식복원사업에 합류할 것을 요청받은 것이다. 이를 계기로 경주시청 문화재과와 경주국립박물관, 식품영양학 전문가 등이 모여서 신라전통음식복원사업팀이 꾸려졌다. 라선재와 한국역사문화음식학교도 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생긴 것이다.

“우연히 접하게 된 신라 음식에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어요. 마치 운명처럼요.”

신라시대 때 주로 먹었던 꿩고기로 만든 만두.
삼국사기에 “그 옛날 신라 내물왕 시대에 차득공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그의 친구 안길이 찾아오니 50가지 음식을 차려서 연회를 베풀었노라”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그 차득공이 바로 차은정 대표의 조상이었다. 오래된 역사라 본명은 알 수 없지만 ‘득공’이라는 호칭에서 내물왕 시기에 높은 관직에 있던 귀족이었음을 추측해볼 수 있다. 자신의 뿌리가 경주에 있었음을 깨달은 차은정 대표는 알 수 없는 운명의 힘을 느꼈다고 한다.

“경주에서 1년에 두 번씩 신라시대 왕들을 모시는 제사를 지내요. 통일을 이룩한 문무왕과 마지막 왕이었던 경순왕 앞에서 절을 할 때에는 별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그런데 내물왕 위패 앞에서 절을 하는데 갑자기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렀어요. 제가 대성통곡을 하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놀랐지요.”

일련의 놀라운 경험을 한 뒤 신라 음식을 복원하는 것에 더 큰 책임감을 가지게 되었다는 차은정 대표. 지금은 그것이 삶의 소명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아는 것이 많지 않지만 평생을 연구해서 조상들이 먹었던 몸에 좋은 전통 음식을 최대한 가깝게 만들어내는 것이 그의 일생의 목표다.

“제가 식품영양학만 했으면 영양학적으로만 접근해서 신라 음식을 복원하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문화에 대한 접근, 문화재와 고문헌, 벽화에 나온 단서들을 총망라하는 세미나를 통해 유의미한 결과물을 만들어낸 것 같습니다.”

그는 신라 음식의 매력이 현대의 약선과 다를 바 없는 ‘건강한 음식’이라고 말한다. 다채로운 양념을 사용하지만 담백하고, 재료의 궁합이 잘 맞아 독이 되지 않고 편안하게 소화된다. 이런 음식 철학은 만물의 조화를 중요시하는 불교국가였던 신라의 문화에서 자연스럽게 나왔을 것이라고 한다.

차은정 대표는 설을 맞아 신라 전통 음식 중 꿩고기떡만둣국을 추천했다.

“예부터 수렵이 발달했던 신라에서는 꿩고기를 자주 먹었습니다. 꿩은 성질이 급하고 더운 기운을 가진 동물이어서 한파가 몰아치는 연초에 먹기 좋은 음식입니다. 꿩고기로 육수를 내고 고기를 잘게 찢어 얹은 떡만둣국을 먹으면 몸을 따뜻하게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사진 : 장은주
  • 2012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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