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 디자이너 배상필씨

아무 일도 안 하지만 모든 것을 하는 수집가

쇳덩어리를 좋아하고, 물건을 못 버리는 소년이 있었다. 형이 주워 온 총알 조각으로 시작된 소년의 기이한 수집벽은 앤티크 가구와 조명들로 집안을 빼곡히 채울 때까지 계속됐다. 서울 명륜동에 자리 잡은 카페 ‘The Office’는 조명 수집가이자 디자이너인 배상필씨의 앤티크 조명 창고이자 작업실이다. 현재는 카페를 운영하지 않지만, 아직도 근처를 지나는 사람들이 홀린 듯이 찾아들곤 하는 그의 작업실에는 수백 년의 시간이 아무렇지 않게 널려 있다.
배상필씨는 인터뷰 약속시간에 약간 늦었다. 그러나 그의 작업실에 가득한 앤티크 조명들을 구경하느라 기다린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만큼 조명 하나하나가 독특하고 아름다웠다. 셜록 홈즈 소설의 배경인 런던 베이커가 어딘가에 있을 법한 가로등과 수십 년 전 수술실에나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의료용 조명을 살펴보느라 넋이 나가 있는 사이, 배상필씨가 도착했다.

“어릴 때부터 물건을 못 버렸어요. 칫솔도 버리지 않고 수북이 쌓아놓기도 했죠. 쇳덩이를 좋아해서 길을 가다 나사 하나를 봐도 주워 오곤 했어요. 어딘가에 쓰일 것이다, 하면서.”

어느 날 형이 친구에게서 빼앗아 온 총알을 건네주었을 때 배상필씨는 묘하게 마음이 차분해졌다고 한다. 쇠가 몸에 맞았는지, 그 뒤로 쇠로 만들어진 것들을 보면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나사, 볼트, 기계 조각, 와이어 등을 보이는 대로 모으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쌓인 쇠붙이는 아직도 뉴욕 창고에 있다. 반면 형은 제대로 된 수집가였다. 아프리카와 파푸아뉴기니의 물건을 좋아했던 형은 어린 시절부터 배상필씨를 벼룩시장과 경매장에 곧잘 데리고 다녔다. 그런 형한테 혼난 적이 있다.

“뉴욕 소호 거리에서 의자를 하나 샀어요. 4000달러를 주고 산 빈티지 의자였는데, 형이 보더니 10분의 1 가격으로 살 수 있는 것이라며 혼내는 거예요. 수집하고 싶으면 공부부터 하라고 했죠. 그래서 빈티지, 앤티크를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의자로 시작된 본격적인 수집생활은 앤티크 가구와 시계, 조명으로 옮겨갔고, 머지않아 그의 통장 잔고는 바닥났다. 좋아하는 것을 모으기 위해 열심히 일했고, 또 수집에 돈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돈에 구애받지 않는 삶을 살고 싶었다고 한다. 조명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한 지는 5~6년 됐다. 17세기 마차에 붙어 있던 조명등부터 치과 수술실에 붙어 있던 의료용 조명까지 그가 수집한 조명은 600개가 훌쩍 넘는다고 한다. 대부분은 뉴욕의 창고에 있고, 현재 명륜동 작업실엔 130여 개가 있다. 배상필씨는 1910년대의 조명을 특히 좋아한다고 한다.

“그 시절 물건들은 어떤 것이든, 무슨 기능이 있든 꼭 ‘아트’를 넣었어요. 산업용 기계에도 항상 미적인 요소가 반영되어 있었죠. ‘아트앤크래프트’ ‘빅토리아 양식’ ‘바우하우스 디자인’ 등 모든 물건에 예술이 있었어요.”


그는 고전 산업디자인을 사랑한다고 했다. 단순히 전시용・감상용이 아닌 실생활에서 쓰이기에 내구성과 기능성을 가졌으면서도 미적 쾌감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수집한 많은 앤티크 조명들은 100년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현역으로 빛을 환하게 밝히며 작동하고 있다. 배상필씨는 오래된 조명에서 그것을 쓰던 사람의 기운이 느껴져 빠질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는 소문난 수집가이기도 하지만, 조명 디자이너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동안 수집한 앤티크에 자신만의 감각을 입혀 새로운 조명기구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레스토랑 등의 조명 디자인을 의뢰받아 진행하기도 하다. 그가 단순한 수집광이었다가 호기심에 디자인에 손을 댔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디자인과 그의 인연은 수집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됐다. 그의 첫 디자인 작품은 신발이라고 할 수 있다.

“초등학생 때 미국에서 누나가 나이키 운동화를 사왔어요. 그때는 나이키가 거의 명품이었죠. 장인정신이 반영되지 않았음에도 그저 고가라는 이유로 명품 취급받는 나이키 운동화가 너무 싫었어요. 그래서 나이키 마크를 뗌으로써 첫 디자인을 했죠(웃음).”

어릴 적부터 취향이 확실하고 고집 센 아이였던 배상필씨는 무엇이든 마음에 안 들면 자신의 미적 감각에 맞게 리폼했다. 아버지가 아끼던 라디오를 사포로 갈아 혼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다시 만든 물건들이 예뻐 보였다. 이런 고집은 그만의 자기표현 방식이었다.

“어릴 때부터 자기표현을 못하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뭐가 됐든 나 자신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노래도 하고 요리도 하고 연극도 했죠. 디자인은 그중 하나일 뿐이에요.”

대학에서는 존경하는 괴짜 교수님을 따라 정치학을 전공했지만, 자기표현에 대한 갈증으로 순수미술도 복수전공했다. 2년 넘게 그림만 그리기도 했다. 대학을 나와서는 영화에 미쳐서 뉴욕대에서 영화공부도 했다. 기초적인 테크닉을 익힌 후 그가 주인공인 추상영화를 찍었다. 하지만 그의 정신세계를 온전히 표현할 수 있는 배우가 없었다. 배우들과 소통이 안 되기를 몇 차례 겪고 스스로 연기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번엔 연극배우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지금의 반려자인 마리온씨를 만났다.

“아내는 그때 연극 연출자였어요. 무술이 가능한 배우를 모집했는데, 마침 무술에 꽂혀서 여러 가지 운동을 했던 제가 뽑혔죠. 그 계기로 만나서 사랑하게 됐습니다. 아직도 저는 그 연극이 작품으로나, 인연으로나 최고였다고 생각해요(웃음).”

한때는 와인에 빠져 정식 소믈리에 교육을 받고 와인바를 운영하기도 했다. 그는 와인 중 부르고뉴의 피노 누아를 가장 사랑했는데, 공교롭게도 아내 마리온씨가 부르고뉴 출신이었다. 그는 “정말 운명적인 만남 아니냐”며 웃었다.


이렇듯 배상필씨는 항상 자기표현을 하고자 했고, 수집한 쇳덩이들도 갈고 닦고 붙이고 빼면서 늘 디자인을 해왔다. 그렇기에 조명 디자인도 그에겐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지금도 그는 작업실에서 앤티크 조명들을 가지고 뚝딱거리며 디자인하고 있다.

그가 디자이너로서 더 공부해보고 싶은 것은 솥뚜껑이다. 통인시장의 조명을 새로 디자인하는 작업과정에서 우연히 솥뚜껑의 기능성과 조형미에 빠져들었다. 그는 빨리 솥뚜껑도 수집하고 공부하고 싶지만 좀처럼 여유가 나지 않아 아직 못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서두르지 않는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그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은 꼭 하고야 말 것이기 때문이다.

“너무 진지하지 않게, 가볍게, 욕심을 버리고 살고 싶어요. 이제까지 그래왔듯 하고 싶은 것, 표현하고 싶은 것들을 재미있게 하면서 살 겁니다.”

사진 : 김선아
  • 2012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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