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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부부가 산골에서 부치는 편지 (59) 감 대신 돼지감자

글 : 이상희 

그림 : 원재길
어느새 감나무는 잎을 다 떨구고 점점이 허공에 붉은 점을 찍어놓았습니다.

“저렇게 까마득히 높이 열린 뜻은… 공중을 오가는 자의 몫이라는 거겠지요?”

“그러게요! 지난해 담근 감식초도 한 병 남았겠다, 이번엔 눈으로 먹고 말자고요.”

“땅에 떨어져 용케 상하지 않은 것 두어 개만 주워 먹고요.”

“새들아, 실컷 먹으렴!”

“개울 건너 할머님들이 원 작가 감나무 터는 날만 기다리실 텐데.”

“잡숫고 싶다 하시면 따드려야지.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기!”

각자 편한 시간에 일어나 자기 먹을 것을 챙겨 먹은 내외가 이렇게 늦은 아침 뜰에 나란히 앉아 있는 것도, 두런두런 얘기 나누는 것도, 모두 꿈결인듯합니다. 어제 늦은 밤, 6월부터 짬짬이 준비했던 박경리문학제 행사를 연이틀 치르고 돌아온 터여서 숲골짜기의 일상이 더욱 실감나지 않습니다.

“감이니 사과니 열매라는 거, 그 자체로도 유용 유익하지만 말이에요. 그 안에 씨앗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숭고하달까, 그냥 먹고 마는 게 아닌거지요.”

“박 선생님 소설 생각?”

“어, 어떻게 알았어요? 이번에 문학포럼 준비하고 참관하면서, 한 작가가 내놓고 간 작품들이 이렇게 숱한 사유와 담론을 낳는구나, 하고 여러 번 감탄했거든.”

남편이 고개를 끄덕이다 말고, 불쑥 일어납니다.

“‘권 이장님 열매’ 돼지감자 좀 캐려고요. 몸에 좋다니, 좀 먹어봅시다.”

“‘권 이장님 열매’? 돼지감자?”

재작년에 돌아가신 개울 건너 권 이장님이 생전에 길가에 심었던 건데요, 돼지한테나 던져주던 감자라고, 아무도 귀하게 여기질 않으니 캐어가라고 했답니다.

남편이 소쿠리 옆에 끼고 호미 들고 개울을 건너가는 동안 의자 위에 가부좌를 틀고 단풍빛 더욱 고운 쪽을 향해 앉아봅니다. 이제 난생처음 먹어보게 될 돼지감자는 어떤 맛일까… 내가 남기는 열매는 어떤 맛이 될까… 지금 존재하는 이 모든 것은 무엇에서 비롯된 열매일까…

휘파람 소리에 눈을 뜹니다.

“자, 드셔보시우. 껍질은 베어내고요.”

딱히 정해진 모양이 없다 싶은 생김새가 생강 같기도 하고, 야콘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달리 부르는 이름이 뚱딴지래. ‘뚱딴지 같은 소리’라고 할 때, 그 ‘뚱딴지’!”

껍질을 베어내니 투명하도록 하얀 속이 나옵니다.

“서늘하고, 차갑고, 아주 살짝 달콤하고… 꼭 가을 맛이야!”

“야콘 맛인가, 먹어본 맛 같기도 하고.”

“마 맛 같기도 하네. 참, 마는 꽤 끈적이지.”

아삭거리는 가을이 입 안에 그득합니다.

“어디서나 잘 자라서, 사막화를 방지하기 위해 중국 내몽고 같은 데서도 이걸 많이 심는대요. 잘 잡수시네? 내년엔 우리도 심어볼까?”

“노는 땅이 많으니까… 이게 어디에 좋대요?”

“인슐린을 정상적으로 유지해서 당뇨에 가장 좋고, 체지방 분해 기능이 있는데다가 칼로리가 거의 없다네요.”

대대로 고혈압 병력이 있는 집안에서 태어난 탓에 늘 음식 조절에 신경이 곤두서는 내 마음에 쏙 드는 먹거리입니다.

“감 대신 돼지감자! 좋아요, 고마운 열매!”

오늘 저녁엔 돼지감자로 샐러드를 만들어 먹어볼까 생각합니다. 그 맛은 또 어떨지 궁금해집니다.
글쓴이 원재길·이상희 씨 부부는 원주시 부론면 단강리 산골에서 살며 시와 그림책을 씁니다.
  • 2011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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