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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집 《당신을 위해 지은 집》 낸 함성호

시인이자 건축가가 시인 아내를 위해 지은 집

사랑은 당신에 대한 나의 기대고,
집은 당신을 위한 나의 일이다.
사랑한다는 행위는 그래서 일이다.…
집을 위한 집은 있을 수 없다.
집에는 항상 당신이 있어야 하고,
집은 항상 당신을 위해 지어진다.
좋은 집은 꼭 당신을 위해 지어진 것이다.

- 《당신을 위해 지은 집》 중에서



그 당신은, 건축가 시인 함성호의 넘치는 사랑의 대상인 아내는, 바로 시인 김소연이다. 기자의 책꽂이에는 김소연 시인의 《마음사전》이 꽂혀 있다. ‘중요하다’와 ‘소중하다’, ‘공허하다’와 ‘적막하다’, ‘사실’과 ‘진실’, ‘솔직함’과 ‘정직함’ 등 비슷한 어휘의 미묘한 차이를 잡아내 단어의 본질을 한결 한결 헤집어내는 이 책은 언어에 천착하는 사람들에게 질투와 찬사를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한편으로는 궁금했다. “외롭다는 말을 설명하기 위해 하룻밤을 꼬박 새워본 적이 있다”는 시인과 동침하는 이는 누구일까, 하고. 그는 바로 함성호였다.

함성호가 아내를 위해 지은 집을 찾아갔다. 고양시 일산동구 마두동 주택가에 있는 그의 집은 멀리서도 ‘저기다’ 싶을 만큼 눈에 띈다. 회색 콘크리트 외벽에 담쟁이 덩굴이 인상적인 3층짜리 집은 ‘건축은 이러해야 한다’는 통념을 깨부순다. 집 한가운데에 나선형 철제 계단이 박혀 있고, 담장 없는 정원에는 어린아이 주먹만 한 클로버가 빼곡하다. 예각과 둔각 투성이인 건물 외곽은 삐뚤빼뚤하고, 창문은 외벽에 불규칙하게 툭툭 튀어나와 있다.

“건축주가 제 아내입니다. 다른 건축주의 집을 지을 때는 못 해본 것들, 다른 건축주들이 싫어하는 것들을 마음껏 해보고 싶었어요. 대개 집을 먼저 짓고 빈 땅에 조경을 하는데 여기는 반대입니다. 나무 심을 곳을 먼저 정하고 나머지 땅에 건물을 지었지요. 다행히도 건축주가 도면에 까막눈이라 설득하기 쉬웠습니다(웃음).”


가난한 시인 부부가 무슨 돈으로 3층짜리 집을 지었을까? 우연한 계기가 있었다. 김소연 시인은 일산에서 비영리 아동도서관 ‘웃는 책 도서관’을 운영중이었다. 만기가 되어 재계약하려는데, 집세가 너무 많이 올랐다. 함성호 시인은 “그 돈이라면 차라리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그 돈만큼 은행이자를 내고 집을 짓겠다”고 지나가듯 말했다. 아내는 이 말을 놓치지 않았다. 아내는 건축가 남편에게 백지 한 장을 들이밀면서 집을 지어달라고 했다. “땅 사는 것부터 설계, 시공, 건물 임대까지 모두 다 알아서 해주세요”가 의뢰인의 말이었다. 단 세 가지 요구사항이 있었다. 첫째, 장인 장모와의 생활공간이 독립적일 것, 즉 동선이 겹치지 않게 할 것. 둘째, 빛이 잘 들어오는 옥탑방이 있어야 하고, 옥탑방 옆에는 마당을 둘 것. 셋째, 1층은 ‘웃는 책 도서관’용으로 설계할 것. 건축가는 의뢰인이자 건축주의 요구를 충실히 수행하되, 다른 건축에서는 못 해본 다양한 실험을 했다.

“건축은 남의 돈으로 집을 짓는 것이기 때문에 실험이 안 돼요. 그런데 이 집을 지으면서는 건축주 몰래 마음껏 실험을 했지요. 거푸집에다 어떤 나무가 콘크리트 외벽에 결이 더 잘 나는지 다양하게 찍어보고, 단열재도 나사(NASA)에서 우주선에 쓰는 필름도 써봤어요. 두께가 얇으니까 단열 효과만 확실하면 실내 공간이 확 넓어지죠. 그런데 실패했어요. 단열이 잘 안 돼서 겨울에 엄청 춥네요(웃음).”

아내 김소연 시인.
건축가의 다양한 실험 끝에 탄생한 건물은 낯설다. 〈해리포터〉에 등장하는 호그와트 마법학교의 움직이는 계단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건물 중간의 나선형 철제 계단은 판타지 같은 비현실감을 안긴다. 드라마 〈아이리스〉의 촬영감독이 옥상에서 이 나선형 계단을 내려다보고 오묘함에 반해 촬영 제의를 했다. 그러나 입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다섯 평짜리 옥탑방에는 창을 네 개나 냈다. 하나는 별을 볼 수 있도록 천장에 내고, 나머지 세 개는 고봉산・정발산・북한산을 향해 하나씩 냈다. 그래서 옥탑방의 이름을 ‘삼봉재’로 제안했다. 그러나 아내가 촌스럽다고 해 ‘소소재’로 바꿨다고 한다. 아내가 그토록 좋아하던 옥탑방은 아쉽게도 세를 줬다. 1층 웃는 책 도서관 역시 만성적자를 면치 못해 운영을 접어야 했다. 도서관에 있던 책들은 그 이름 그대로 강동도서관에 통째로 기증했다.

함성호 시인이 200m2(60평) 대지에 건평 90m2(27평)인 이 집을 짓는 데 든 비용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저렴하다. 건축설계를 직접 했기에 우선 설계비가 안 들었고, 외벽 자재는 대부분 콘크리트를 썼다. 건물 내부는 거친 벽에 페인트로 마감했다. 시인 부부의 살림살이는 더없이 소박했다. 옷장 하나, 소파 하나 없다. 시인의 작업 책상은 이전 집의 식탁이었고, 침대는 공간의 크기에 맞게 목공소에서 주문 제작했다. 가구라고는 책꽂이가 거의 전부였다.

부부가 서로의 얼굴을 그렸다.
아내는 겨울에 춥다고 궁시렁거리면서도 창가를 좋아해 꼭 침대의 창가 쪽에서 잔다고 한다. “선이 참 곱더라”면서 아내의 외모에 반했다는 함성호 시인. 그에게 아내 김소연은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다.

“못된 여동생 같은 사람. 여동생이니까 어쩔 수는 없고, 그렇다고 교정은 안 되니까 맞춰줘야 하는 사람. 자다가도 아내가 깨워서 자기가 쓴 시를 읽어보라고 하면 읽어야 해요. 큰 소리로 낭독하고 어디가 좋고 어디를 어떻게 고쳤으면 좋겠다고 말도 해줘야 해요. 때론 커피 심부름도 해요(웃음).”

그렇다면 시인 김소연은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다.

“말해질 수 없는 것들, 만질 수도 없는 것들, 사람들이 큰 덩어리로 얘기하지 않는 사소한 것들에 대해 굉장히 치밀하게 시를 쓰는 사람이에요. 사람들이 버려놓은 것, 사람들이 ‘그런 것들 다 그런 것 아니겠어?’ 하는 것들을 모아서 시를 쓰는 사람이죠.”

결혼 17년차인 부부는 그렇게 아이를 낳지 않고 시인 부부로 살고 있다. 함성호는 “시인이기만 했다면 시를 쓰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건축과 시. 얼핏 다른 영역 같지만 그는 “둘 다 굉장히 논리적인 분야”라고 말한다.

“문학하는 사람들이 ‘난 수학에 젬병이다’ 그러는데 거짓말이에요. 그건 산수를 못하는 거지, 수학을 못하는 게 아닙니다. 주어・동사・목적어를 아주 교묘하게 자리를 바꿔가며 말의 맛을 내는 사람들이 글쟁이잖아요. 건축도 같아요. 누구나 쓰는 벽돌, 석고보드 같은 어휘들을 어떤 식으로 직조하느냐가 관건이죠.”


《당신을 위해 지은 집》은 함성호의 인생철학을 담은 책이다. 건축에 대한 철학뿐 아니라 세계 곳곳을 여행하면서 느낀 단상을 광범위하게 담았다. 여행・문학・사랑 등 소재를 종횡무진 넘나들며 펼쳐지는 사유의 세계에서 일관되게 읽히는 주제는 ‘소박함’이다. 그는 건축이든, 삶이든, 사랑이든 꼭 지금 거기에 있어야만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래서 그는 “최고의 건축은 아무것도 건축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좋은 집이란 없고요, 좋은 마당이 있을 뿐입니다. 저는 집 안에 돈을 들이지 말고 집 바깥에 돈을 들이라고 합니다. 집 바깥에 있는 것들은 반드시 그 바깥에 있는 것들과 연결돼 있거든요. 올봄에 정원에 핀 민들레 때문에 마음이 쓰였는데, 민들레도 집 바깥 어디선가 날아든 것이고, 땅도 정발산의 어떤 지세가 흘러서 여기에 있는 것이고, 햇빛도 여기에만 있는 빛이죠. 그 건물이 아름다운 건 거기 있기때문이에요. 땅과 시간은 인간이 만져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유신론자는 아니지만 자연은 신의 선물이라고 생각해요. 주변 환경이나 땅을 훼손하는 행위를 최소화하는 게 인간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건 저희 어머니한테 배웠습니다. 어머니는 한글을 모르는 분인데, 땅이 뭔지 아셨던 것 같아요. 땅강아지 죽는다고 뜨거운 물을 함부로 땅에 버리시지 않고, 쌀 한 톨 안 버리셨죠. ‘수챗구멍에 입 큰 아귀가 사는데, 입은 이만하고 목구멍은 요만하다. 쌀이 들어가면 얼마나 괴롭겠냐’는 말을 전설처럼 듣고 자랐습니다.”

사진 : 김선아
  • 2011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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