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나무숲미술관’ 원종호 관장

“정원 일의 즐거움을 나누고 싶습니다”

강원도 횡성군 우촌면 두곡리 둑실마을 끝자락에는 자작나무 숲이 있다. 20여 년 전 원종호(58) 관장이 한 그루 한 그루 정성들여 심은 자작나무 묘목들이 무럭무럭 자라 숲을 이룬 것이다. 이후 그는 이곳에 갤러리 두 동과 스튜디오를 차례로 지었다.
자연스레 자작나무에 둘러싸인 미술관이 만들어졌다. 일상에 지친 이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달래줄 안식처가 되는 것이 자작나무 숲을 가꾼 그의 바람이다.
“찌르륵찌르륵… 씁 쓰읍 씁 쓰읍… 차르르차르르….”

‘미술관자작나무숲’의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곤충들의 울음소리가 기분 좋게 들려왔다. 상쾌한 가을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자작나무 잎사귀들이 부딪치며 특유의 화음을 만들어 냈다. 현재 미술관 카페로 사용 중인 스튜디오 갤러리에서 원종호 관장을 만났다. 그는 어깨까지 내려오는 백발을 뒤로 넘겨 단정히 묶고, 청바지와 체크무늬 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와 인사를 나눈 후, 날씨 좋은 야외 정원으로 자리를 옮겨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파라솔이 달린 테이블의 작은 의자에 앉자마자 그는 영국의 철학자 토머스 모어가 한 말을 들려주었다.

“그는 ‘도시 생활은 의무고, 시골 생활은 권리’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시골 생활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가 맞아요. 그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까요.”

5남매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서양화를 전공한 그는 자작나무 숲이 자리 잡은 횡성군 우촌면 두곡리 출신이다. 진로에 대해 고민하던 그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땅에서 한우 농장과 사료대리점 등을 운영했다. 전성기를 누리던 사업은 쇠고기 수입 등으로 적지 않은 손해를 보았다. 그는 선산에 한 그루에 200원 하던 자작나무 묘목 1만2000여 그루를 심었다. 과일나무도 아니고 아무 소용도 없는 나무를 심는다고 했을 때 주위 사람들은 그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심지어 미쳤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자작나무의 매력은 그런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을 만큼 강하다”며 수줍게 웃었다.

“‘세상에 이런 나무가 있구나’ 싶었습니다. 1990년에 백두산여행을 갔다가 자작나무 숲을 보고 매료된 게 제 인생을 바꾼 계기가 되었지요. 집에 돌아오자마자 자작나무 심는 일을 추진했어요. 참, 자작나무를 보고 이국적이라는 말을 종종 하지요? 잘못된 표현입니다. 자작나무의 원산지가 우리나라 북쪽지방이거든요(웃음).”

그러나 자작나무를 키우는 일은 쉽지 않았다. 추운 지방에서 자라는 자작나무의 특성상 어린 묘목은 병충해 피해를 입고, 잘 자라지 못했다. 당초 심었던 묘목 중 절반이 채 안 되는 4000여 그루만이 지금 자라고 있는데, 그러기까지 엄청난 공을 들였다 한다.

“매일 단 하루도 빠짐없이 나무를 돌봤습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었지만, 일일이 공을 들여 키웠습니다. 이런 제게 가끔 어떤 분은 ‘왜 나무에 매여 사는가?’ 묻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반대지요. 나무 덕분에 저는 자유를 얻었으니까요.”

그는 유별나다 싶을 정도로 자연에서 사는 것을 원했다. 인위적인 아름다움이나 세상의 규칙이라 할 수 있는 삶의 여러 규칙에도 반대하는 입장이다. 이러한 그의 철학을 바탕으로 조성된 ‘자작나무숲미술관’은 한마디로 자연스럽다. 일반적인 미술관이나 숲, 정원 등에서 기대할 수 있는 풍경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잘 가꾼 꽃과 식물을 보호하기 위한 울타리도 없고, 식물에 대한 설명을 적어놓은 팻말도 없다. 얼핏 둘러보면 전혀 신경쓰지 않은 정원 같기도 하다. 하지만 찬찬히 보면 여기저기 자라난 잡초와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자연 자체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자작나무숲미술관’으로 가는 길도 인간의 편리를 위해 인공을 가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옛날 마을길, 흙길이다. 차 두대가 마주치기라도 하면, 한 대는 후진해서 길을 비켜주어야 한다. 해마다 찾는 사람이 늘어나니 길을 포장할 법도 한데, 그의 생각은 다르다.

그의 아내는 지난해까지 자작나무 숲 속 생활을 반대했다. 하지만 원 관장의 노력으로 지금은 스튜디오 갤러리에서 관람객들에게 커피와 차를 대접하고 있다.
◎ 자작나무숲미술관
(033-342-6833, www.jjsoup.com)
“미술관이 지금의 모습을 갖춘 것은 2004년 봄부터입니다. 갤러리를 개관하고, 펜션도 두 동을 지었지요. 처음에는 입장료를 받지 않았습니다. 돈을 벌 목적으로 만든 공간이 아니었으니까요. 하지만 무료 개방하다 보니 이 공간을 함부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더군요. 정원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시끄럽게 노는 사람이 많았어요. 쓰레기 더미도 만만치 않았고요. 솔직한 마음이 그런 분들은 이곳에 안 왔으면 했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다른 사람들과 즐기려는 의도로 개방한 자작나무 숲이 훼손될까 두려웠던 그는 2000원의 입장료를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역시 소용없었다. 무료와 입장료 2000원은 큰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 큰 결심 끝에 그는 지난해부터 입장료를 1만원씩 받고 있다. 그런데 이곳을 찾는 사람이 오히려 몇 배로 늘었다고 한다. 한창 이야기를 하던 중 휴일을 보내려 이곳을 찾은 몇몇 아주머니들이 그에게 다가왔다.

“공기 좋은 곳에서 사셔서 좋으시겠어요”라며 그에게 관심을 보였다. 이어 자작나무 숲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떤 점이 좋은지를 쉴 새 없이 물었다. 그는 흐뭇한 미소를 띠며 “그냥저냥 삽니다. 허허”라고 답했다.

“종종 이런 숲을 만들고, 갤러리를 열고 싶다는 사람이 찾아오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제가 하는 말이 있습니다. 우선 최악의 경우 이혼할 마음까지 있는지, 어떤 경우라도 부지런히 정원을 가꿀 자신이 있는지를 묻습니다. 아내들은 대부분 남편이 무모한 일에 시간과 돈을 낭비한다고 엄청 반대하거든요. 물론 제 아내도 그랬습니다(웃음). 또 나무와 정원을 매일매일 돌보는 책임감도 중요하지요. 이 두 가지 결심이 없다면 저는 무조건 뜯어 말립니다.”

그가 자작나무 숲에서 살며 가장 행복할 때는 손수 가꾼 나무와 정원의 이름 모를 풀들이 아름다워 보일 때다. 기자는 그 행복감이 어떤 것인지 궁금했다. 농부가 수확했을 때와 비슷한지, 아니면 부모가 자식을 다 키워놓았을 때 같은지 물었다.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무 한 그루를 심어 크게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는 뿌듯함은 그 어떤 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저도 남매를 다 키웠지만, 부모 마음과는 달라요. 매일같이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정원을 돌보며 사는 일이 사실 쉽지는 않거든요. 최근에 다리가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정원 일을 그만두라고 하더라고요. 안 될 말이죠….”


그때 몇몇 입장객이 그에게 다가와 차 한 대가 입구 근처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익숙한 일인 듯 그는 “차를 끌어내고 다시 오겠다”며 잽싸게 입구로 내려갔다. 종종걸음으로 스튜디오 갤러리의 정원을 지나가는 그의 뒷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자작나무와 닮아 보였다. 하얀 자작나무의 빛깔이 그의 백발과 닮은 듯하고, 군더더기 없이 곧게 뻗은 나무 기둥이 그의 마른 체형과 비슷한 것 같았다. 수어 분 후 스튜디오 갤러리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자작나무는 잎이 다 진 후가 가장 멋있습니다. 아기 손톱만 한 여린 잎이 나기 시작하는 이른 봄의 자작나무도 아주 매력적이고요. 이곳의 한 풍경이 되어 자신만의 평화를 찾고자 하는 분들을 언제나 기다리겠습니다.”

사진 : 김선아
  • 2011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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