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녀와 나무꾼’ 신도웅・박경애 부부

지리산에 내려가 동화같이 사는 부부 이야기

신도웅·박경애 부부.
앞으로는 섬진강이 흐르고 뒤로는 지리산을 이고 있는 경남 하동군 화개면 중기마을에는 ‘선녀와 나무꾼’이 산다. ‘선녀와 나무꾼’ 집은 하도 아기자기하게 예뻐서 아무리 무심한 사람이라도 들어가보고 싶어 어쩔 줄 모르게 만든다. 이 집은 도시 한복판에 살다가 귀농한 부부가 15년동안 가꾼 공간이다. 남편은 서울대 음대에서 작곡을 전공하고, 아내는 이대 무용과를 나와 서울 진선여고에서 부부 교사를 지냈다. ‘노후에는 시골에 내려가 앞마당엔 야생화를 가득 심고, 강아지들 맘껏 뒹굴게 하면서 살자’던 부부는 그 꿈대로 살고 있다. 널찍한 정원에서는 중기마을 사람들을 위한 음악회도 열린다. 이 음악회에는 피아니스트 임동창, 신관웅 재즈밴드도 초청됐다.

‘선녀와 나무꾼’ 집 입구.
‘선녀와 나무꾼’은 부부의 소꿉놀이터 같다. 나무 현판과 철제 대문에 ‘선녀와 나무꾼’을 알록달록 새겨놓고, 새빨간 우체통에도 ‘중기마을 선녀와 나무꾼’이라고 써 넣었다. 울도 담도 없는 집의 벽에는 <선녀와 나무꾼> 동화의 장면을 하나 가득 그렸다. 좁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있는 건물들은 저마다 용도와 사연이 분명하다. 왼쪽에는 소 축사를 개조해 만든 부부의 주거공간이 있고, 오른쪽에는 사슴 축사를 개조해 만든 주방과 남편의 작업공간이 있다. 원래 있던 건물을 허물지 않고 리모델링하면서 최대한 자연과의 공존과 조화를 추구한 결과다.

정원에 심은 꽃에 호랑나비가 찾아왔다.
‘선녀와 나무꾼’의 테마는 재생과 재활용이다. 부부는 건축 재료를 사기 위해 인테리어숍 대신 구례 철물점을 찾는다. 구례 철물점에서 구한 고장 난 재봉틀과 녹슨 의자들은 ‘선녀와 나무꾼’에서 대문과 테이블 다리, 화분 받침대로 멋들어지게 환생했다. 꽃모종을 살 때 딸려온 수십 개의 일회용 플라스틱 화분은 정원의 허수아비로 변신했는데, 딸의 어릴 적 옷을 입고 길가에서 주은 안경테를 쓰고 있다. 아이들이 어린 시절 만든 찰흙 작품을 벽에 붙여 수족관처럼 꾸몄고, 강가에 뒹굴던 깨진 병조각은 투명한 병 안에서 구슬처럼 빛나는 진열품이 된다. ‘선녀와 나무꾼’에 들어서자 장도(長途)의 피로가 싹 가시고 정체 모를 행복감이 피어올랐다. 집 안 곳곳을 거닐수록 건축물 하나하나, 소품 하나하나의 스토리가 보이면서 빙그레 웃음이 절로 났다.

왼쪽) 재봉틀을 개조해서 만든 철제 대문.
오른쪽) 우체통.
“오늘 낮에도 한 큐레이터가 다녀갔어요. 한 시간 정도 놀다 갔는데, ‘최근에 가본 공간 중에서 가장 행복한 느낌을 받은 곳’이라고 하더군요. 오시는 분마다 그런 말들을 하네요(웃음).”(박경애)

이 공간에 매료되는 건 도시인들이다. 시골 할머니들은 “왜 쓰레기들을 가져다 집을 만드느냐” “마당에 먹을 것을 심지, 뭐하러 돈 안 되는 꽃을 심냐”며 타박한다. 도시에서 놀러오는 반가운 손님들을 위해 얼마 전에는 게스트하우스를 지었다. 편백나무를 주재료로 했고, 천장에는 화선지에 꽃을 붙인 벽지로 도배하고 지붕에는 기와를 얹었다. 나무로 만든 현관문에는 나뭇가지로 ‘나무꾼 공방’이라고 붙였다. 손님이 많을 때에는 부부의 넓은 방을 내주고 부부는 손님방에서 잔다. 펜션으로 운영해도 손색없지만 부부는 무료로 잠자리를 내주고, 밥을 지어준다. 지리산 밭에서 유기농으로 농사지은 배추와 고추, 열무와 깻잎 등으로 만든 반찬은 아삭거리고 채소 하나하나의 향이 살아 있다. 아내는 “우리 집에서 묵고 간 사람들, 밥 먹고 간 사람이 수백 명이에요. 이것만으로도 우리 극락 갈 수 있지 않을까요?”라며 웃는다. 부부는 돈 욕심이 없다. 공예 체험, 펜션 등 돈을 벌 수 있는 소재가 널렸는데 부부는 “뭣하러요”라며 그저 또 웃는다.

왼쪽) 소 축사를 개조해서 만든 부부의 주거공간. 낡은 피아노 앞에 허수아비를 앉혔다.
오른쪽) ‘선녀와 나무꾼’ 벽화.
도시인들이 이 공간에 마음을 뺏기는 것은 소품이 안고 있는 스토리 때문이다. 억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수작업 소품들. 그 소품을 소꿉놀이하듯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만드는 부부의 모습이 동화처럼 그려진다.

“저 솔방울이요? 산에 솔방울이 가득 떨어져 있는데 너무 예쁜 거예요. 이 솔방울로 뭘할까 생각하다가 알록달록 색칠을 하기 시작했지요. 이틀 내내 색칠해서 장식해놨는데, 손님들이 예쁘다고 해서 많이 줬어요. 저 표주박 그림이요? 반으로 쪼개서 저렇게 그림을 그려 넣으니까 예쁘지 않아요?”(박경애)

플라스틱 일회용 화분은 정원에서 인형으로 변신한다.
부부의 러브스토리는 한때 진선여고를 떠들썩하게 했다. 미혼의 선남선녀였던 음악 선생님과 무용 선생님은 교무실에서 옆자리에 나란히 앉았고, 학생들이 짐작한 대로 연인이 됐고, 결혼을 했다. 당시 사립학교에서는 부부 교사가 한학교에서 근무하지 않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에 남편은 분당의 계원예고로 자리를 옮겼다. 그렇게 부부는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낳고 부부 교사의 생활을 이어갔다.

왼쪽) 플라스틱 일회용 화분은 정원에서 인형으로 변신한다.
오른쪽) 곳곳에 빨간 우체통이 있다.
여행을 좋아하던 부부는 주말이면, 방학이면 어디론가 떠났다. 전국 각지를 돌며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텐트를 치고 머물렀다. 그렇게 다니면서 노후에 살 곳을 점찍어뒀다. 남편은 일찍 귀농하기를 원했다. 도시에서 사람들로부터 받는 스트레스가 심했고,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맘껏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은퇴하기에는 조금 이른 40대 초반, 신도웅씨는 아내보다 먼저 경남 산청에 둥지를 틀었다. 하지만 지리산 북쪽에 위치한 산청은 몹시 추웠다. 그래서 좀더 따뜻한 ‘화개면 중기마을’로 이사했다. 지리산 남쪽 마을인 이곳은 지명 그대로 봄꽃이 일찍 피기로 유명하다.

왼쪽) 부부는 자주 웃는다.
오른쪽) 들고양이 나비. 마당에는 개 네 마리와 닭 세 마리도 산다.
아내는 주말마다 남편을 보러 시골에 내려왔다. 서울 남부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왔다가 일요일 밤 기차를 타고 서울역에 새벽 4시에 도착하는 일정이었다. 아내 박씨는 “피곤해서 ‘이번 주는 가지 말아야지’ 했다가도 금요일만 되면 마음이 설레었다”고 했다. 남편 신씨는 “아내가 내려오는 주말만 기다리면서 살았다”고 한다. 주말에 만난 부부는 주중에 남편의 손길이 새롭게 닿은 곳을 둘러보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4년 전, 아내도 명예퇴직을 하고 이곳으로 내려왔다. 부부는 시골생활을 좋아했다. 남편은 경남 산청 출신이라 시골생활이 편했고, 서울에서 나고 자라 상추와 배추도 구별하지 못하던 아내는 뒤늦게 자연의 매력에 푹 빠졌다.

왼쪽) ‘선녀와 나무꾼’의 어느 것 하나 부부의 손길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다.
오른쪽) 정원. 위쪽에 게스트하우스가 보인다.
“서울은 사람이 많아서 자연이 잘 보이지 않잖아요. 여기에서는 어딜 가든 자연이에요. 자연 속에서 나 혼자 걸어가는 느낌이 그렇게 한적하고 좋을 수 없어요. 또 시골은 깜깜해서 좋아요. 별도 보이고 달도 보이니까. 감자 나는 것, 고구마 캐는 건 또 얼마나 신기하고 재미있는데요.”(박경애)

사슴 축사를 개조해서 만든 2층 건물. 1층은 주방과 식당, 2층은 소품 작업실이다.
부부는 시골에 정착하면서 사슴 수십 마리를 키웠다. 소일도 하고 녹용을 팔아 용돈 벌이도 할 심산이었다. 사슴에게 사료 먹이는 게 내키지 않았던 신씨는 날마다 사슴 먹일 것을 구하러 산으로 갔다. 사슴과 나무꾼, 그리고 나무꾼이 주말마다 목 빠지게 기다리는 선녀 같은 아내. 자연스레 동화 <선녀와 나무꾼>의 장면이 떠올랐다. 이렇게 해서 부부의 집은 ‘선녀와 나무꾼’이 됐다. 하지만 사슴은 족쇄가 됐다. 사슴을 돌보느라 집을 비울수도, 꿈꾸던 음악 작업을 할 수도 없었다. 과감히 사슴을 처분한 남편은 꿈에 그리던 아코디언의 본고장인 이탈리아로 홀로 여행을 다녀왔다. 한 달 반 동안 그는 목적지도 없이 이탈리아 골목길을 거닐면서 때로는 아코디언 케이스를 깔고 잠을 청했다.

신도웅씨의 음악작업실인 팔각정.
부부는 마당 정원에서 마을 음악회도 연다. 이제까지 세 번 열었는데, 세 번째 음악회에는 피아니스트 임동창, 신관웅 재즈밴드도 초청 연주자로 다녀갔다(신관웅씨는 신도웅씨의 형이다). 중기마을 주민 전체에 옆 마을 주민까지 찾아와 200명 정도의 관객이 몰렸다. 아내는 이 사람들을 위해 무료로 비빔밥을 만들어 대접했다. 수준 높은 라이브 공연을 시골 한가운데에서 감상한 동네 사람들은 두고두고 음악회 이야기를 한다. 남편이 환갑이 되는 내후년에는 특별한 음악회를 열 예정이다. 남편은 연주하고 아내는 남편의 연주에 맞춰 춤을 추는 음악회. 남편은 동네 주민에게 아코디언을 가르치기도 한다.

왼쪽) 가족의 과거-현재 사진. 여고생 시절 엄마 얼굴과 딸의 얼굴이 꼭 닮았다.
오른쪽) 다녀간 사람들이 남긴 편지와 쪽지들.
시골에서의 삶은 부부의 많은 부분을 바꿔놓았다. 먼저 의식주 소비가 확 줄었다. 옷은 헐렁한 개량 한복 몇 벌이면 되고, 신발은 장화, 털신, 고무신 3종세트만 있으면 그만이다. 직접 농사를 지으니 식비가 거의 들지 않고 아파트를 벗어나니 관리비도 없다. 무엇보다 표정이 달라졌다. 남편은 미간에 수직으로 선명하게 파였던 주름이 없어졌고, 화장기 없는 아내는 피부가 맑아졌다. 또한 행복도가 높아졌다. 신도웅씨는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이 어릴 적 만든 물고기 모양 찰흙으로 벽을 장식했다.
“프로의 삶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아마추어로서의 삶이 행복하죠. 서울에서 프로 틈에서 살 때에는 만족을 몰랐어요. 늘 경쟁하면서 완벽을 추구했죠. 내 전공인 음악에서 철저하려 하다 보니 행복과 점점 멀어지더라고요. 이곳에 와서는 아마추어적인 삶을 삽니다. 집을 짓고 소품을 만드는 건 제 전공이 아니기 때문에 아마추어로서 그저 즐기면서 할 수 있죠. 그러다 보니 삶에 대한 만족도와 행복도가 훨씬 높아졌어요. 서울에서 계속 살았다면 스트레스 때문에 벌써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음악은 1등만 필요하지 그 외에는 묻혀버리니까요.”
  • 2011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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