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부부가 산골에서 부치는 편지 (57) 다시 문을 열 때까지

글 : 이상희 

그림 : 원재길
이제 더는 큰비 올 일 없을 테니 내일은 초가을 볕에 이불이나 내어 말려야지, 생각하며 늦은 밤 도서관에서 책가방을 꾸리고 있을 때입니다. 소리 나지 않게 해둔 휴대전화 화면으로 남편의 문자 메시지가 들어옵니다.

“현관문 고장으로 폐쇄, 먼저 잠들면 다용도실 문으로 들어오세요.”

대문이 따로 없는 숲골짜기 집 현관문이 고장났다니, 어쩐지 주말의 조촐한 안식이 스르륵 손에서 빠져나가는 듯합니다.

불길한 예감은 다음 날 이른 아침부터 진땀 나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문을 고쳐야 해. 난 하루에도 수십 번씩 뜰에 나가잖아. 창문으로 넘어다니자니, 할 짓이 아냐.”

그러면서 시원찮은 내 팔 힘까지 보태어 현관문을 해체한 다음, 문 위쪽의 망가진 경첩을 떼어내 들고 나가며 남편이 소리칩니다.

“한 시간쯤 걸릴 거야. 용접기 있는 친구네 가서 해결해 올 테니 밥 차리고 있어요.”

그러나 압력밥솥의 신호음이 울리고, 찌개며 계란찜이 다 끓고, 멸치볶음을 마무리해 찬기에 담도록 남편은 기별이 없습니다. 두어 시간이 지나서야 전화가 옵니다.

“병구가 자신 없대서 귀래 철물점 갔는데 허탕 치고, 흥업철물점에서 섀시문 제작업체 가보래서 시내로 나가는 길이야. 먼저 식사해요!”

배고픈 걸 잘 못 참는 사람이 30리 달려서 이 집, 40리 달려서 저 집을 들르고는 이제 생각지도 않은 먼 걸음에 나섰다니, 집에 있는 사람 마음도 집을 나가 함께 땡볕 길을 헤맵니다. 밥상을 덮어놓고, 안 읽히는 책을 엎어놓고, 문이 떨어져 나간 현관을 우두커니 바라봅니다. 하얀 문틀에 들어찬 풍경이 기괴한 초현실주의 그림 같기도 하고, 설치미술 같기도 합니다.

“경첩 주문해놓고 밥 먹으러 가는 길”이라는 문자를 받고서야 마음이 편해집니다. 문틀이 거대한 풍경화를 두른 액자처럼 멋지게 보이기도 합니다. 눈높이에 따라 먼 산의 능선 아래 감나무며 정자가 빚어내는 구성미가 달라지는 게 신기해서 허리를 굽혀서 바라보기도 하고, 엎드려서 바라보기도 합니다. 새삼 ‘문’이라는 것이 재미난 구조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바깥과 안의 경계 짓기, 그 경계를 들고 나는 양식화된 행위며 문을 여닫는 행위가 불러일으키는 은유도 떠오릅니다. 존 단의 시였던가, “(시종을 거느리고 다니는) 왕은 문 여는 기쁨을 모르느니…”라는 시구도 떠올려봅니다.

이런저런 해찰에 이어 동화책 한 권에 시집 두어 권을 애써 읽어치우는 참인데, 자동차 소리가 납니다. 다섯 시간 만의 귀가지만, 율리시즈만큼이나 초췌한 사람이 보입니다.

남편이 손바닥에 감싸 쥐고 있는 새 경첩을 보여줍니다. 얼핏 보기엔 신통찮아 보이는 그 작은 쇠붙이가, 사연을 듣고 나니 성배인 듯 찬란해집니다. 시내의 섀시문 제작업체을 찾아가 경첩을 보이며 판매처를 물었으나 그런 중소기업체들이 대거 도산해 사라졌으니 대형 철물점으로 가보라더라는 것, 대형 철물점에서는 용접업체를 소개해주더라는 것, 물어물어 찾아간 용접업체에서는 경첩이 합금이라 용접이 불가능하다더라는 것, 그러나 마침 일손이 비었으니 새로 제작해주겠다 해서 주문해놓고 그제야 해장국을 먹으러 갔더라는 것, 밥을 먹고 가서도 두 시간여 기다려서야 새 경첩을 받아들었다는 것….

남편은 얼른 이 불운을 끝내겠다는 듯 곧바로 작업을 시작합니다. 내가 몸으로 밀 듯이 문짝을 받친 사이, 남편이 새 경첩을 들고 사다리를 오릅니다. 이제 구멍에 맞춰 나사 네 개를 죄기만 하면 되는 참인데, ‘이런!’ 하고 탄식이 떨어집니다.

“암나사가 문틀 안으로 빠졌나 봐. 죄어지질 않네!”

그러자마자 남편이 전기 드릴로 문틀 한쪽에 구멍을 뚫기 시작합니다. 이제 어쩔 수 없이 사람을 사서 공사를 해야 하나 보다, 새 문을 구입하는 비용은 둘째 치고 문틀 떼어내는 작업부터가 만만치 않겠구나, 낭패한 마음으로 고개를 드는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져 있습니다. 남편이 기어이 암나사 판을 찾아내고는 새 경첩을 단단히 죄어 문짝을 붙인 겁니다. 뚫린 구멍도 그 정도면 흉하지 않습니다.

거의 반나절 만에 문을 열어놓고, 기적을 겪은 듯 감탄하며 내외는 냉커피 한 잔을 나눕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라고, 숲골짜기의 한 페이지를 넘깁니다.
글쓴이 원재길·이상희 씨 부부는 원주시 부론면 단강리 산골에서 살며 시와 그림책을 씁니다.
  • 2011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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