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첼시플라워쇼에서 최고상 받은 환경미술가 황지해

우리만의 독특한 조경 철학, 세계에 소개할래요

환경미술가이자 정원 디자이너인 황지해 작가(36). 그는 한국의 전통 화장실을 테마로 만든 작품 ‘해우소’로 영국 첼시플라워쇼(Chelsea Flower Show)에서 최고상인 금상과 베스트 아티즌 가든상을 수상해 화제가 됐다. 첼시플라워쇼는 1827년부터 약 180년간 이어져 온 세계 최고의 정원 박람회로, 영국 왕실과 각국 정・재계인사들이 방문하고 BBC를 비롯한 유럽과 세계의 언론이 주목하는 행사다.

상을 받은 후 몇 달간 유럽에 머물다 돌아온 그를 만났다. 인터뷰 장소에 도착한 그는 가녀린 몸에 큰 배낭 여러 개를 들고 있었다. 가냘픈 손목에는 파스가 여기저기 붙어 있었다.

“이 정도 짐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인터뷰가 끝나면 곧바로 식재 채집하러 강원도로 갈 거예요.”

그는 자신이 정원 디자이너로 활동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은 전남 곡성에서 보낸 어린 시절에 있다고 말한다. 자연을 늘 가까이서 느낄 수 있었던 데다 시골이라 학원 갈 일은 없었고, 가장 재미있었던 일이 그림 그리기였다.

“제가 그림을 그리면 사람들이 ‘잘 그렸다’고 칭찬해주셨는데, 그게 참 좋았어요. 칭찬받기 위해 더 잘 그리려고 노력하다보니 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그는 1999년부터 벽화와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광주에 환경미술가 그룹 ‘뮴’ 을 설립했다. 환경미술과 정원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어머니는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지나는 바람까지 자연을 무척 사랑하셨어요. 어릴 때도 문제가 생겨 고민하면 해결책을 말씀해주시기보다 ‘밖에서 바람을 느껴봐’라고 하셨죠. 어머니의 대답이 황당하고 속상했지만 돌이켜보면 그런것들이 큰 자양분이된 것 같아요. 어머니 덕분에 자연의 경이로움을 알게 됐죠. 자연은 고전(古典)이면서도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책과 같아요.”

첼시플라워쇼에서 최고상을 받은 작품. 우리나라의 전통 화장실 ‘해우소’를 재해석한 작품이다.
작은 담장에 벽화 그리기부터 자투리 땅을 이용하는 쌈지공원, 도시경관디자인 등 환경미술 분야에서 다양하게 활동하던 그는 10년 전 러시아의 한 탐험가를 통해 첼시플라워쇼를 알게 됐다.

“첼시플라워쇼가 담긴 비디오를 선물 받았어요. 영상을 보면서 계속 짝사랑만 하다 2007년 무작정 런던으로 갔어요. 마치 첫사랑을 다시 만난 것처럼 심장이 떨렸지요. ‘내가 과연 이 자리에 설 수 있을까’ 떨리는 마음으로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준비하려고 보니 문화와 언어의 장벽이 크게 느껴졌다.

“그들의 감각적인 색감과 풍부한 감성을 보면서 제가 어떤 얘기를 해도 통하지 않을 것 같았어요. 고민도 많고 혼란스러워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2011 첼시플라워쇼에서 수상 후 인터뷰하는 황지해 작가.
그는 오랜 고민 끝에 ‘해우소’를 모티프로 작업하기 시작했다.

“고민을 거듭하다 생각해낸 거예요. 화장실은 가장 개인적인 공간입니다. 티타임처럼 한숨 돌릴 시간이 되기도 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고 독백하는 시간이 될 수도 있지요.”

‘해우소’란 ‘근심을 푸는 곳’이라는 의미로, 한국 불교의 절에서 변소, 즉 화장실을 일컫는 말이다. 근심을 버리고 나를 비움으로써 스스로 자유롭고자 하는 철학적 메시지를 담고자 했다. ‘뒷간’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소외된 공간인 화장실을 ‘정원’이라는 새로운 공간으로 해석하면서 그 안의 이야기를 끄집어내 소통하고 싶었다.

그는 한국의 전통 화장실 문화가 가진 철학을 정원 디자인으로 재해석하면서 ‘해우소 가는 길’이라는 이름으로 가로 세로, 4m 5m의 공간에 담았다. ‘해우소 가는 길’ 양옆에는 질경이, 하얀 민들레, 수수꽃다리, 더덕, 뱀딸기 등 한국의 다양한 약용식물을 심어 우리 선조들이 지닌 삶의 지혜를 표현했다. 해우소의 문은 1.2m 높이로 낮게 만들어 고개를 숙여야만 출입할 수 있도록 했다. 자연과 인간에 대해 자신을 낮추는 겸양의 의미도 담았다. 이 작품은 세계 각국 정원 전문가와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그들은 한국 건축물의 고유한 특성과 해우소가 지닌 독특한 의미, 철학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경남 창원시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
첼시플라워쇼에서 한국 최초로 금상을 수상한 그는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눈길을 처음 밟은 느낌이었어요. 이제 시작인 것 같습니다”라고 말한다.

‘해우소 가는 길’을 출품하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한국의 자생종 식물을 하나라도 더 소개하고 싶었지만, 통관 문제로 영국으로 가져가지 못했다. 또 아일랜드에서 화산이 폭발해 비행기 출발이 지연되는 바람에 가슴을 졸이기도 했다. 목재, 기와, 돌담, 바위 등 각종 자재를 영국으로 운송할 비용을 마련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우리나라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정원 문화와 철학을 세계에 알리지 못한 것은 소통의 통로를 몰랐기 때문이 아닐까요?”

전북 부안군 부안읍 ‘물의 거리’.
일본은 80년 전부터 첼시플라워쇼에 출품하면서 국가적인 차원에서 일본의 정원 문화를 소개하는 데 힘써왔고, 중국 역시 3년 전부터 국가가 나서서 첼시플라워쇼 출품을 권장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첼시플라워쇼가 창출하는 문화적, 경제적 파급 효과에 관심을 기울여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한국 정원문화의 저력을, 한국의 자생종 식물을 세계에 꾸준히 선보일 수 있도록 관심과 도움을 부탁드립니다.”

그는 내년 5월 개최되는 첼시플라워쇼에도 자동으로 출전한다. 2012년 네덜란드에서 열리는 세계원예박람회에도 참가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데, 첼시플라워쇼의 50배 크기로 연출할 계획이다.

“어려운 부분은 많지만, 한국의 정원 문화를 알리기 위해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첼시플라워쇼에서 제가 수상한 건 우리나라의 독특한 정원 문화와 철학이 인정받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새로운 정원을 만들면서 저 자신도 많은 것을 경험하고, 치유 받고 배워가는 과정에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런 경험을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습니다.”

사진 : 김선아
  • 2011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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