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디자인 공모전 석권한 디자이너 이호영

수없이 실패한 게 힘이 되었죠

세계 3대 디자인 공모전인 iF와 레드닷, IDEA를 비롯해 국내외 공모전에서 10여 회 수상한 이호영(27) 디자이너. 그를 ‘아이디어맨’ 이라고 불러도 지나치지 않을 듯하다. 그는 “제가 수상할 수 있었던 것은 수많은 실패 덕분이었습니다. 제가 들은 말 중 가장 상처받은 게 ‘네 주제에 무슨 국제공모전이야?’라는 말이었어요”라고 말한다.
계명대학교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대학시절 공모전에서 수십 차례 떨어지는 아픔을 맛보았다.

“심하다 싶을 정도로 계속 떨어지다보니 ‘이 길이 과연 내 길일까?’라는 회의와 좌절에 빠지더군요. 디자인을 잠시 접고 필리핀으로 가서 6개월간 자원봉사를 했습니다.”

필리핀에 본부를 두고 있는 아시아 농민을 돕는 단체 AFA(Asian Farmers Association) 디자인팀에 들어간 그는 신문 편집, 로고 디자인, 컨퍼런스 관련 문서 편집 등을 맡아 자원봉사를 했다. 그곳에서 학교 선배인 김도영씨(디자인소리 대표)를 만났다. 김도영씨는 공모전을 휩쓸다시피 해 후배들에게 신적인 존재와 같았다. 선배는 자신도 수십 차례 낙방 끝에 한계를 뛰어넘었다고 이야기하면서 그에게 계속 도전해보라고 힘을 불어넣어주었다. 그게 전환점이 되었다. 선배의 조언에 힘입어 그는 기존 아이디어를 보완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면서 공모전에 응모했고, 국내외 공모전에서 수상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그에게 첫 수상을 안긴 작품은 ‘Long and Short Plaster’. 상처 크기에 따라 밴드의 길이를 조절할 수 있는 반창고 케이스로, 거즈와 테이프를 따로 떨어뜨려놓아 밴드 길이를 조절할 수 있다. 이 작품으로 그는 2009 미국의 디자인공모전 스파크어워드 은상, 서울디자인올림픽 특선을 수상했다. 이후 수상은 줄줄이 이어졌다.

도로 위에 차선이나 안내 문구를 자동으로 인쇄해주는 ‘Road Printer’. 사용자의 편의를 극대화한 이 작품은 태양열을 동력으로 사용하는 친환경 디자인으로 높은 평가를 받으며 2009년 독일디자인공모전 레드닷(red-dot) 콘셉트위너와 스파크어워드 동상을 수상했다. 더운 여름날, 땀을 흘리며 차선을 그리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컴퓨터 프린터기의 원리를 응용해 쉽게 차선을 그릴 수 있게끔 제품을 구상했다고 한다.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작은 불편을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해결한 ‘Water and pill’(2010 독일의 디자인공모전 iF의 콘셉트어워드위너 , 스파크어워드 금상 수상)은 휴대용 튜브에 알약과 물을 함께 포장,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복용할 수 있도록 고안한 작품이다. 호주에서 배낭여행을 할 때 물이 없어 감기약을 제때 먹지 못했던 기억에서 나온 아이디어다. 음료에 탄산가스가 얼마나 차 있는지 병뚜껑의 색을 보면 알 수 있는 ‘Caution mark’(2010년 iF 유니버설 위너 수상), 에어백처럼 부풀어 오르는 도로 위 안전 콘(Air cone tape, 2009 스파크어워드 금상 수상) 역시 그의 경험에서 아이디어가 나왔다.

“고속도로 운전 중 툭 튀어나온 콘을 피하려다 사고가 날 뻔한 적이 있어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설치한 콘이 사고를 유발하는 것을 막아야겠다는 생각에서 만들게 됐어요. 바람만 불어넣었다 뺐다 하면 되는 설치의 용이성도 생각했습니다.”

도로 위 차선이나 안내 문구를 자동으로 인쇄해주는 ‘road printer’.
에코 디자인 제품인 ‘Pencil printer’(PIN UP공모전 일반부문 동상 수상)는 연필심으로 쓰이는 흑연을 파우더로 만들어 잉크 대신 사용, 인쇄물을 지우개로 지울 수도 있는 재미난 제품이다. 프린터 유지비도 줄이고, 종이도 아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Return brick’(2009년 스파크어워드 입선)은 폐건축 자재를 벽돌로 재활용한 제품이다.

“건물을 다시 지을 때 기존 건물에서 나오는 폐건축 자재를 재활용할 수 있게 만든 에코 디자인입니다.”

수많은 작품 중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가장 기억에 남고 힘들기도 했던 작품은 대학교 2학년 때 만든 종이 숟가락처럼 접히는 면도기 ‘Folding razor’예요. 생산성과 친환경, 휴대성을 모두 고려해 만들었죠. 어렵게 만들었는데 공모전에서 탈락해 아쉬움이 남았지만, 아이디어를 보강해 새롭게 도전, 2010년에는 미국의 산업디자인상인 IDEA(Industrial Design Excellence Awards)에 입선하는 기쁨을 안았습니다. 사람은 보통 아무리 공을 들였어도 공모전에서 탈락한 작품에는 미련을 버려요. 그런데 전 이게 아까웠어요. 끈질기게 보완해 도전한 결과, 상도 받고 특허도 등록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끊임없이 공모전을 준비한 게 글로벌 마인드를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가장 힘들 때 공모전의 길을 열어준 선배가 있었던 것처럼 저 역시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며 공모전을 준비하는 후배 디자이너들에게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아이디어에만 치중하지 않았으면 해요. 제품으로서 실용성이 있는가도 생각해야 합니다. 또 공모전을 준비하는 과정 자체를 즐겼으면 해요. 이를 통해 자신만의 디자인 철학을 확립하고, 꿈을 꿀 수도 있습니다.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용으로 의무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봐요.”

상처 크기에 따라 밴드의 길이를 조절할 수 있는 반창고케이스 ‘Long and Short Plaster’.
그는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나 물건 모으는 것을 좋아했다. 새로 나오는 워크맨, mp3 등을 수집했다. 자연스레 제품 디자인에 관심이 생겼고, 디자이너 김영세가 디자이너 지망생들에게 필요한 세 가지 덕목을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디자이너란 직업에 반했다.

“디자이너에게 필요한 것은 첫째, 사람을 좋아하는 따뜻한 마음. 둘째, 항상 무언가를 재창조해서 남들의 박수를 받고 싶어 하는 목마름. 셋째, 새로움을 찾기 위해 무한히 도전하는 용기라고 합니다. 저도 무엇이 되겠다는 목표만이 아닌 목적을 가진 디자인을 하고 싶다고 마음먹었죠.”

그는 현재 LG전자 HA디자인 연구소에서 가전제품을 디자인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수집해오던 제품을 직접 디자인하고 있는 요즘 정말 행복합니다. 가전제품이 만들어지는 과정부터 디자인까지 전체적인 흐름을 알아가며 궁금증을 하나하나 풀어가는 게 무척 즐겁습니다.” 자신만의 디자인 아이디어를 찾아내고 만드는 과정이 뭔지 묻자 그는 “메모”라고 답했다.

“영화를 좋아하는데, 영화감상을 하면서도 아이디어를 생각합니다. 일상생활을 집중력 있게 관찰하면서 늘 메모하지요. 학생 때부터 메모하고 아이디어 스케치를 해온 습관이 이제는 자연스럽게 일상이 되었습니다. 이 메모들이 나중에 밑천이 될 것 같아요.”

그에게 디자인이란 대중에 대한 ‘설득’이라고 한다. 설명을 늘여가며 이해를 구하는 디자인이 아니라 누가 봐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디자인, 정말 괜찮은 디자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싶다고 한다.

그는 “현재 있는 곳에서 역량을 펼쳐나가 전 세계 사람들에게 행복이라는 가치를 주는 디자이너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디자인은 힘없는 저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어요. 세상에 저를 알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고, 또 세계를 상대로 도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이제 다시 시작입니다. 슈퍼 디자이너가 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사진 : 김선아
  • 2011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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