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디자이너 우기하

고정관념을 깨면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안겨주는 디자인을 하고 싶습니다

아니, 이게 MP3플레이어라고? 디자이너 우기하(32) 씨가 디자인한 MP3플레이어는 언뜻 보면 일반 플러그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그런데 플러그 줄 끝에 이어폰이 달려 있다. 플러그 모양으로 만든 MP3 플레이어다. 콘센트에 꽂으면 그대로 충전돼 플러그 본래의 역할을 한다. 최소한의 디자인으로 기능성과 편리성을 살린 이 MP3가 화제다.

우기하 씨는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아이’였다. 텔레비전에서 로봇 만화를 보다가 그걸 따라 그리고, 다시 스스로 상상해낸 로봇을 그렸다. 그걸 친구들에게 보여주면서 “어느 로봇이 좋아 보이냐”고 물었다.

“친구들이 제 그림을 보면서 좋아하면 덩달아 기분이 좋았고, 더 잘 그리려고 노력했어요. 아주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로봇의 정밀한 부분까지 그려냈어요. 제 머릿속에는 수백 가지 비행기와 로봇이 들어 있었어요. 그게 자연스럽게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꿈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는 지금도 어릴 때처럼 그림을 그린다. 이제는 로봇이나 비행기가 아니라 휴대전화, 오토바이, 각종 전자제품 등을 상상하면서 그린다. 그 구상이 실제 제품으로 만들어져 사람들이 사용할 것을 생각하면 즐겁다. 언젠가는 로봇과 비행기도 디자인하고 싶다며 상상의 끈을 놓지 않는다.

한양대 산업디자인과를 졸업한 후 이노디자인에서 5년여간 디자이너로 활동해온 그는 지금 프리랜서로 일한다. “회사에 소속돼 있을 때는 프로젝트에 맞는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찾았지만 퇴사한 후 작업을 하면서는 매 순간 아이디어를 떠올리기 위해 노력하게 돼요. 일상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튀어나올 수 있으니까요.”

그의 작품은 고정관념의 틀을 깨는 게 주를 이룬다. 2010년 베를린 DMY(Design Mai Youngster) 디자인 페스티벌에 출품했던 는 하나의 벽시계에 전 세계의시간이 다 들어가는 흥미로운 콘셉트가 눈길을 끌었다. 동심원의 영역이 세계 각국의 도시를 나타내며 구부러진 시곗바늘의 꼭지점 부분이 각 도시의 시간을 나타낸다. 세계의 시간이 흘러가는 모습을 한눈에 도형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세계 시간의 지도라고 표현해도 좋을 것 같다. 건전지 두 개로 시간과 분을 표시하는 은 시계 뒤에 감춰진 재료를 적극적으로 끌어낸 절묘한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그는 “시계에 꼭 들어가는 건전지를 시침과 분침으로 활용한 미니멀 디자인을 시도했다”고 말한다. 처음 볼 때는 ‘이게 뭐지?’라는 의문을 자아내는 그의 독특한 아이디어 제품들은 <미운 오리새끼>라는 동화에서 모티프를 얻었다.

〈Plug & player〉 플러그와 MP3의 결합을 보여주는 MP3플레이어.
“어떤 물건이든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형태가 있잖아요? 오리들 틈에 있을 때는 백조도 ‘미운 오리’가 되지만, 백조라는 사실을 알고 보면 예뻐보입니다.”

어떤 물건을 연상할 때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떠올리는 이미지를 ‘아키타입(archetype)’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아키타입에서 벗어난 익숙하지 않은 것에 사람들은 거부감을 보인다. 그래서 ‘미운오리새끼’가 되는데, 그게 완전히 새롭게 창조된 디자인이라는 것을 알면 백조의 발견보다 더 극적이라는 것. 경쟁력 있는 디자인을 하려면 아키타입에 대해 끊임없이 재구성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그는 생각한다.

〈Bent hands〉 벽시계 하나로 전 세계의 시간을 한번에 볼 수 있다.
해외 사이트를 통해 더 잘 알려진 는 메모도 하고, 간단한 수납접시 역할도 하는 재미있는 무선전화기다. 메모할 때마다 펜과 메모지를 찾아야 하는 불편을 해소해주는 디자인이다. 작년 할리우드 영화 <맨인블랙3>에 소품으로 쓰고 싶다는 연락도 받았지만, 양산되는 제품이 아니어서 다음 기회로 미뤄졌다. 9월에 열리는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에서 선보일 는 첫눈에 의자처럼 보인다. 그런데 의자의 프레임 사이를 분리하면 스탠드로 변신하면서 숨겨진 기능이 나타난다. 그가 만든 제품은 이렇게 하나하나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깨면서 ‘재발견’하는 기쁨을 선사한다.

〈Hidden light〉 의자와 스탠드 역할을 한다.
“저는 어릴 때부터 ‘원래 그래’ 란 말을 싫어했어요. ‘원래 그래’라고 생각하는 물건들을 뒤집어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을 제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싶어요. 디자인을 통해 이런 제 생각을 세상에 어필할 수 있다는 게 즐겁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이 디자인한 물건을 보고 ‘신기하다’ ‘놀랍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싶었다고 한다.

〈Phone on board〉 메모도 하고, 간단한 수납접시 역할도 하는 무선전화기.
“제3세계 국가나 소외 계층을 위한 디자인도 계속 고민하고 싶습니다. 제가하는 ‘미운 오리새끼’ 프로젝트를 두 개로 나눌 생각이에요. 하나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디자인으로 돈을 벌고, 그렇게 벌어들인 돈으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디자인을 하는 거예요. 디자인도 그런 식으로 분배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을 보는 시선이나 생각은 계속 바뀌는 만큼, 순간순간 제게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하고 무엇보다 제 자신에게 솔직하고 싶습니다.”

사진 : 김선아
  • 2011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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