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부부가 산골에서 부치는 편지 (54) 새들과 함께

글 : 이상희 

그림 : 원재길
오미자 냉차를 준비하다 말고, 주방 창밖으로 고개를 늘입니다. 이러는게 벌써 몇 번째인지 모릅니다. 기다리는 친구들 대신 불쑥 남편 얼굴이 나타납니다.

“올 때가 지난 거지요?”

“그러게요. 고속도로가 많이 막히나?”

“참, 경이는 내일 오후에 강연이 있어 오늘 저녁에 가야 한다네.”

같은 달에 태어난 친구들 셋이 이맘때 마주치면 장난삼아 얼렁뚱땅 합동 생일파티를 하곤 했는데, 이번엔 제대로 한번 숲골짜기에 모이기로 했지요.

셋 다 몹시도 숨 가쁘게 지내는 터라 무리해서 일정을 짜다 보니 간신히 하루를 내긴 했는데, 한 친구 일정이 아슬아슬하게 턱걸이를 하게 된 겁니다.

“그렇게 가면 힘들 텐데? 저녁 들다 말고 나가셔야겠네.”

그래놓고 거실로 나간 남편이 인사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둘이 잠깐 얘기하는 사이에 친구들이 도착해 현 관으로 들어온 모양입니다. 부랴부랴 차가운 오미자 냉차 두 잔을 쟁반에 받쳐 듭니다.

“아, 시원하다. 새큼달큼 맛있네. 이게 뭐야?”

“오미자 냉차!”

“뜰이 그전보다 더 훤하게 넓어졌네?”

“원 작가가 만날 손질해서 그렇지. 자기들 온다니까 요 며칠은 더욱 공을 들였고.”

“나가보자. 새들이 부르잖아!”

아닌 게 아니라 오늘따라 유난히 새소리가 낭랑합니다.

“저, 네 박자로 우는 새소리 들리지? 이름이 뭔지 알아맞혀봐.”

묵묵부답 고개만 갸웃거리는 우리에게, 퀴즈를 낸 친구 정이는 그게 바로 검은등뻐꾸기 소리라 일러줍니다. 이어서 저 예쁜 소리는 개똥지빠귀, 이 삐약거리는 소리는 동박새, 쪼르릇 쪼삣 소리 내는 건 박새, 거위같이 왝왝거리는 건 어치, 휘리릭 호루라기 같은 소리 내는 건 곤줄박이, 째째쨋 하는 건 개개비, 하며 각 새의 소리며 모습이며 생태적 특징을 줄줄 늘어놓습니다.

“지금은 번식기가 아니니까 저 소리들은 단순하게 본능적으로 내는 ‘콜call’일 거야. 번식기 때 짝을 부르는 소리는 ‘노래-송song’라고 해서 훨씬 멀리 가.”

“와! 강원도 화천에서 태어났을 뿐 완벽한 도시내기라더니, 새 박사잖아?”

“새소리가 좋아서, 숲길 다니면서 듣고 〈한국의 새소리〉 음반 들으면서 확인하고 그랬지.”

“그렇게 새소리가 좋으면 여기서 살아야지! 이제 집에 갈 생각하지 말어.”

50대 소녀 셋이 숲골짜기가 들썩이게 깔깔 웃는데, 어느새 남편이 살뜰히 가꾼 채소로 푸른 식탁을 차려놓고 숯불 피워 고기를 구우면서 부릅니다.

“어서들 와서 앉으세요… 자, 매실주부터 한잔 하시고!”

매실주가 맛나다고 제일 먼저 잔을 비우고 다시 채운 경이는 배시시 웃는 얼굴로 중얼거립니다.

“어휴! 이러다간 오늘 저녁에 진짜 못 가겠네. 난 쉽게 나갈 수 있는 데인 줄 알았는데, 오는 길에 정이가 시내까지 한 시간 넘게 걸리는 산골짜기래서 어쩌나 망설였거든.”

정이는 의기양양, 기다렸다는 듯 소리칩니다.

“이렇게 맛있는 걸 먹다 말고 가긴 어딜 간다고… 강연 구상은 내일 서울 가는 길에 하면 되잖아. 아침 일찍 시간 맞춰서 내가 잘 모시고 갈 테니 걱정 마.”

나도 다행이다 싶어, 같은 얼굴이 된 남편을 쳐다봅니다.

“제가 식탁 차리기 전에 뒤뜰 느티나무 아래에다 경이 선생 강연 구상 자리를 마련해뒀어요. 편안히 맛나게 드시고, 거기 가서 앉아보세요. 좋은 얘기가 막 떠오를 거예요.”

‘강연 구상 자리’라니! 모두 함께 와르르 웃음이 터집니다. 나무들도 웃고 새들도 웃습니다. 이제 막 돋아나는 저녁별들도 웃습니다.
글쓴이 원재길·이상희 씨 부부는 원주시 부론면 단강리 산골에서 살며 시와 그림책을 씁니다.
  • 2011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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