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계족산 맨발축제

맨발로 황톳길을 걷다

대전 계족산에 위치한 장동산림욕장에는 특별한 숲길이 있다. 이 길에 들어서면 누구도 예외 없이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걸어야 한다. 장장 14.5km에 걸친 붉은 황톳길은 계족산의 푸근한 산세와 잘 어우러진다. 지난 5월 13~15일에 이곳에서 올해로 6회를 맞이한 <2011 계족산 맨발축제>가 열렸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맨발로 마라톤 대회에 참가했고, 곳곳에 설치된 전 세계 작가들의 설치작품을 감상했다. 휴식을 찾는 사람에게 더없이 만족스러운 계족산 황톳길에서 하루를 보냈다.

계족산 맨발축제
www.barefootfesta.com
오전 11시, 장동산림욕장으로 가는 길

대전역에서 차로 20여 분 거리에 위치한 장동산림욕장에 도착했다. 3일간 열리는 <2011 계족산 맨발축제>를 즐기려는 인파로 삼림욕장 입구는 북적거렸다. 양손에 먹을거리를 들거나 등산복 차림으로 올라가는 사람이 무척 많았다. 올해로 6회째 열리는 계족산 맨발축제는 지역주민들에게 매우 인기가 많은 듯했다. 취재진도 축제를 즐기려는 인파와 함께 삼림욕장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올라갔다.

등산로 왼편으로는 물을 가득 채운 논과 시골집 몇 채가 드문드문 보였다. 이 길에는 황토가 깔려 있지 않았다. 5분 정도 더 올라가니 장동산림욕장 정문이 나왔다. 이날 취재진을 안내하기로 한 (주)선양의 관계자가 마중을 나왔다. 선양은 계족산 맨발축제를 주최한 주류회사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희가 꼬치꼬치 설명해드리는 것보다 이곳을 더 잘 아실 수 있는 방법이 있지요. 저쪽에다 신발 벗으시고요, 쭉 한번 걸어보세요.”

기자는 당황했다. 우선 신발을 벗어놓으려면 신발을 보관할 사물함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정문에 마련된 작은 사물함은 이미 다 찬 상태였다. 이를 눈치 챈 관계자는 “아무 데나 두어도 괜찮다”고 했다. 그가 먼저 신발을 벗고 그늘을 피할 수 있게 만든 작은 쉼터 의자 아래에 신발을 밀어 넣었다. 취재진도 그를 따라 했다. 양말을 벗어 신발에 넣고 그의 신발 옆자리에 밀어 넣었다. 다른 사람들은 신발을 어디에 두나 지켜보았더니, 비닐로 만든 배낭에 넣거나 자신만이 알 수 있는 공간에 대수롭지 않게 두고 황톳길로 나섰다.

황톳길에 맨발을 디딘 첫 느낌은 차가웠다.

선양 조웅래 회장의 아이디어로 계족산 숲 속 황톳길이 문을 열었다. 그는 앞으로 이곳을 예술과 자연 음악이 어우러진 공간으로 만들 계획이다.
몇 걸음을 내딛자 발은 더 차가웠다. 폭신폭신할 정도로 황토가 깔려 있었다면, 흙과 자갈을 밟는 기분을 모를 뻔했다. 황토 아래에 숨은 자갈을 밟을 때마다 발바닥이 따끔따끔했다. 그런데 그 따끔따끔한 기분은 온전히 황토만 깔린 구간을 걸을 때 더 시원했다.

계족산의 숲 속 황톳길은 14.5km의 숲길에 황토를 깔아놓은 길이다. 6년 전 선양의 조웅래 회장이 이곳을 찾았다가 동행했던 한 여성이 구두 때문에 불편해하는 것을 보고 맨발로 걸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황톳길을 만들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황토를 부으며 황톳길을 유지하는데 1년에 평균 6억원가량 비용이 들어간다는 관계자의 설명이 이어졌다.

“저희는 이 황톳길을 기업의 사회공헌의 하나로 생각합니다. 황톳길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면 힘이 나고 즐겁지요.”


오후 2시, 연둣빛 숲과 붉은 황톳길에 취하다

숲 속 황톳길은 계족산의 둘레 일부를 한 바퀴 크게 도는 구간이다. 30분쯤 맨발로 걷다 보니 발이 더 얼얼했다. 계족산의 깊은 곳으로 걸어갈수록 산 냄새는 더욱 진해졌다. 사람들은 천천히 맨발로 그들만의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여느 시골 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들. 인위적으로 조성하지 않고 오랜 세월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무들이 더욱 편안해 보였다. 그때 덤프트럭 한 대가 천천히 올라왔다. 붉은 황토를 한 가득 싣고 조금씩 길에 뿌리며 지나간다. 축제가 열리기 며칠 전 비가 많이 내려서 황토가 많이 쓸려 내려갔다고 선양 관계자는 안타까워했다.

일꾼들은 황토를 뿌리고 그 자리에 골고루 펴지게 발로 밟기도 하며 황톳길을 채워 넣었다. 가끔씩 산바람도 불어왔다. 이때마다 나뭇가지들이 흔들리면서 황톳길에 연둣빛 그림을 그렸다. 얼핏 보아도 이 길에서 맨발 걷기를 즐기는 사람은 대전에 터전을 가진 사람이 많은 것 같았다.

한 아주머니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1주일에 세 번씩 이곳을 찾아 맨발로 운동을 한다고 했다.

“확실히 건강이 좋아졌어요. 이 길이 힘든 길이 아니라서 오래 걸어도 피곤하지 않고요.”


오래 앓던 무좀도 없어졌다며 황톳길의 효험에 대해 신나게 말한다. 그의 말처럼 이곳은 누구나 편히 걷기에 좋다.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뿐 아니라 운동을 싫어하던 사람도 그 매력에 푹 빠지게 하는 길이다. 이 황톳길은 맨발축제 기간뿐 아니라 봄부터 가을까지 항상 열려있다. 이것은 “다른 사람이 웃는 모습을 보고 싶어 황톳길을 계속 유지하게 할 것”이라는 조웅래 회장의 의지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황톳길을 절반쯤 걸어 올라갔을 때 조 회장을 만났다. 베이지색 바지 아랫단을 돌돌 말아 올린 그는 취재진에게 악수를 청했다.

“막걸리 한잔 하십시다”라며 그는 황톳길 옆 간이주점으로 일행을 안내했다. 주인은 돗자리를 펼쳤다. 이곳은 맨발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이 애용하는 산중 간이 매점이다. 막대 아이스크림과 막걸리가 인기 메뉴다. 주인이 직접 담갔다는 막걸리 한 잔과 돼지껍데기, 삶은 달걀, 마른 멸치와 고추장이 양은 쟁반에 담겨 나왔다. 막걸리를 사이에 두고 사발 건배가 이어졌다.

“맨발로 걸으면서 예술작품도 감상하고, 또 신명 나는 음악도 감상하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싶었습니다. 올해부터 국내외 유명 작가들을 초청해 황톳길에 작품을 설치해달라고 했습니다. 어때요? 보기 좋지 않아요? 바로 이런 겁니다. 남들과 함께 즐길 무언가를 찾고 만드는 일요.”

계족산 맨발축제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날 열리는 맨발 마라톤 대회다. 5000여 명의 참가자가 맨발로 황톳길을 달린다.
그가 이곳에 가장 신경 쓰는 것은 바로 황토다. 지난 6년간 황토를 수시로 채워 넣었으니, 전국의 이름난 황토는 다 써봤다고 했다. 좋은 황토의 조건을 물었더니 그는 “붉은색”이라고 답했다.

“점성도 중요하고… 무엇보다 황토는 붉은빛을 띠는 것이 좋아요. 소주 회사에 다니다 보니 술을 자주 마시는 편입니다. 저는 매일 맨발로 이곳에서 숙취를 풀어요. 기가 막힙니다.”

막걸리 사발을 비우고 그와 함께 걸어온 길을 되돌아 걷기 시작했다. 발을 떼었다 들었다 하는 동작을 크게 했더니 순간 황토가 미끌미끌거렸다. 위험한 기분이 아닌, 정말 푹 쉬었다는 기분을 들게 해주는 상쾌한 움직임이었다. 그런데 황톳길에 풀잎 같기도 하고 꽃잎 같기도 한 연둣빛 작은 물체가 심심치 않게 보였다. 허리를 굽혀 자세히 들여다보니 애벌레다. 어느 곤충의 애벌레인지 알 수 없었지만, 계족산 숲 속 황톳길에서 만난 가장 작은 생명체였다. 꿈틀거리며 황톳길을 기어가는 그 애벌레도 이곳의 한 풍경을 차지하고 있었다.

사진 : 김동욱
  • 2011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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