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부부가 산골에서 부치는 편지 (53) 두릅 대신 들꽃

글 : 이상희 

그림 : 원재길
아침 식전에 잠깐 올라갔다 오기 딱 좋은 우리의 등산(이라기보다 산책)코스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른 봄부터 시작된 간벌작업으로 뒷산 곳곳에 트럭이 돌아다니는 데다, 베어낸 나무가 숲길 여기저기 가로놓인 것입니다.

“얼른 새로운 산책로를 찾아야지.”

“그러게요, 지금쯤 숲 속에서 멋진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 텐데!”

그런 얘기를 주고받기만 하던 어느 날, 장맛비 못지않은 폭우가 한바탕 퍼붓고 간 아침에 남편이 장화를 내어놓았습니다.

“두릅 순 따러 갑시다. 언젠가 우리 흙집 왼편으로 내려간 적 있지요? 그쪽에 산책 다닐 만한 숲길도 있는지 찾아보자고요.”

“아하, 거기! 그날 수확량이 상당해서 때마침 와계시던 아버님이 잘드셨지요.”

호돌이 앞장세워 장화 신고 챙모자 쓰고 장갑 낀 것만으로도 탐험에 나선듯한 기분입니다. 잔뜩 불어난 개울물이 콸콸콸 폭포 쏟아지듯 흐르는 걸 내려다보니 적잖이 긴장감도 느껴지고요. 신이 나서 천방지축 날뛰는 호돌이에게 벼락이 떨어집니다.

“호돌이, 속도 맞춰서 가야지!”

그러자 대번에 얌전히 발을 늦추는 녀석이 어찌나 대견한지 가슴이 다 뭉클해집니다.

이제 탐험대는 콩밭을 가로질러 개울을 건너고 습지를 지납니다. 야트막한 언덕을 오르자 원시림으로 들어선 듯 축축한 숲 내음이 훅 끼치는데, 빈가지 꽂아놓은 듯한 두릅나무 하나가 금세 눈에 띕니다.

“어, 그런데… 누가 벌써 새순을 다 따갔나 보네!”

다른 두릅나무를 찾아낸 남편도 당황한 얼굴입니다. 간밤에 새로 나온 듯한 순이 손톱만큼씩 뾰족뾰족 나와 있을 뿐, 죄다 빈 가지입니다.

“어이쿠! 어제 그 양반들이….”

어제 개울 건너 어느 댁에 왔을 성싶은 낯선 아주머니들이 옹기종기 나물캐느라 쪼그리고 앉았던 모습을 나도 봤습니다만, 두릅 순을 이처럼 깡그리 따갔을 줄은 몰랐지요.

“산책길로 어때요, 여기도 괜찮겠지요?”

“괜찮고말고요.”

짐짓 딴전 피우는 남편 말에 얼른 맞장구를 치며 나도 마음을 급히 돌려세웁니다. 그 덕분에 숲길을 더듬는 눈에 온갖 어여쁜 풀꽃들이 그득히 들어찹니다. 어떤 것은 유난히 모양이 어여쁘고, 어떤 것은 꽃 색이 어여쁘고, 어떤 것은 꽃 없는 잎에 맺힌 이슬방울이 믿기지 않게 신비롭습니다.

“이것 좀 봐요, 잎 가장자리에 이슬이 어쩌면 이렇게 일부러 찍은 듯이 맺혔을까!”

“야, 나도 이런 건 처음 보는데!”

그래저래 감탄하며 다시 개울을 건너려 보를 딛고 올라서는데, 문득 지난해 남편이 번역하는 틈틈이 읽어줬던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케네스 그레이엄)의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그 말을 하려고 돌아서는 순간, 뒤따라오던 남편도 “버드나무…” 하고 말을 꺼냅니다.

영국의 어느 호젓한 강둑에서 두더지와 물쥐, 오소리, 두꺼비, 수달이 한데 어울려 살아갑니다. 어느 날 수달의 어린 아들 통통이가 사라지자, 두더지와 물쥐는 밤새 보트를 타고 강 곳곳을 뒤지고 다닙니다. 마침내 두 친구는 동틀무렵에 개울물이 막힌 보 앞쪽에 있는 섬에서 피리 부는 목신이 돌보고 있는 통통이를 찾아내는데요. 우리 내외 모두 그 장면의 배경이며 분위기가 이곳 풍경과 아주 흡사하다고 여긴 거지요.

“두더지와 물쥐는 통통이를 발견하고, 우리는 원시림 같은 숲골짜기 냇가 산책로를 발견했네!”

“이름 모를 수많은 봄 들꽃들도!”
글쓴이 원재길·이상희 씨 부부는 원주시 부론면 단강리 산골에서 살며 시와 그림책을 씁니다.
  • 2011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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