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향기 따라가는 여행] 정지용의 시를 따라 떠나는 충북 옥천 ‘향수바람길’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향수, 정지용의 도시’는 오랫동안 충북 옥천을 대표했던 또 다른 이름이다. 최초의 모더니스트, 모던보이로 알려진 정지용 시인의 작품을 예술가들의 상상력으로 재해석한 ‘멋진 신세계’ 등 개성 있는 시문학아트벨트는 우리 시에 바치는 가장 멋진 헌사다. 정지용 시인의 문학관과 ‘멋진 신세계’에서 출발해 장계리를 거쳐 ‘한반도 지도 모양’으로 큰 화제가 되고 있는 연주리 둔주봉까지 ‘향수바람길’을 따라가본다.
정지용문학관에서 시문학아트벨트 멋진 신세계까지, ‘향수30리’

연주리 둔주봉에서 내려다본 대청호. 마치 한반도 지도를 형상화해놓은 듯한 풍경이 펼쳐진다. 향수바람길의 종착점이다.
무형의 문학은 도시를 어떻게 살리고 키울까. 정지용 생가가 있고, 이제는 국민의 시로 칭송받는 ‘향수’의 배경지로 사랑받고 있는 옥천은 ‘보이지 않는 시’를 걸으면서 보고 느낄 수 있는 ‘걷기길’에서 그 답을 구하고 있다.

그동안 정지용의 생가가 있는 마을인 구읍에서 옛 37번 국도를 따라 ‘멋진신세계’(장계관광지)까지 잇는 길인 ‘향수30리’는 그를 추억하는 길이었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이 길이 더 길어질 예정이다. 현재 옥천에서는 대청호 주변인 안내면 장계리, 옥천읍, 수북리, 동이면 석탄리, 안남면 연주리를 잇는 25km의 ‘향수바람길’을 조성하고 있다.

대청댐 건설로 30여 년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대청호 주변 길은 이번에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얼룩백이 황소가/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이하 생략)

정지용 시인(이하 지용)의 시 ‘향수’의 첫 구절이다. 그는 한국 현대시의 선구자로 우리 언어를 탁월하게 표현하면서 민족의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한 시인으로 알려진 이다. 하지만 대중에게는 국립오페라단 테너 박인수 씨가 노래를 불러 더 친근해진 시이기도 하다. 이외에도 ‘고향’ ‘카페 프란스’ ‘산너머 남쪽’ ‘호수’ ‘유리창’ 등 그의 시에는 유독 노래가 된 게 많다. 옥천이라는 작은 읍을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본능적으로 그리워하는 ‘고향’의 대표 이미지로 떠올리게 한 것도 이 노래들 덕분이다. 시가 노래뿐 아니라 조각, 건축물, 걷기길로 다시 태어나고 있는 옥천의 ‘향수바람길’을 걸어보았다. 시가 있는 길은 뭐니뭐니 해도 진달래 피고, 벚꽃 피는 봄길이 제격이다.

1. 멋진신세계에 있는 정지용 시인의 ‘카페 프란스’를 재현한 카페 프란스와 프란스 광장.
2. 정지용문학관. 시인의 작품세계를 알 수 있는 초간본 등 희귀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3. 지용의 생가가 있는 구읍은 당시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100여년 전 근대 거리를 연상케 하는 당시의 우편취급소.
시 ‘향수’ 속의 고향은 정지용생가와 문학관이 있는 구읍(舊邑)이다. 개발에 밀려 아파트가 들어서는 여타의 읍과 도시와는 달리 옛 모습을 비교적 잘 지켜내고 있다. ‘구읍(舊邑)’은 죽향리와 상·하계리, 문정리와 교동리 등 다섯 마을을 일컫는데 조선시대 600년 동안 관아가 있던 중심지였다. 경부선 철로 예정지였지만 주민들의 반대로 읍내 남쪽으로 옮기면서 옛 정취를 이어갈 수 있었다. 정지용은 1902년 5월 15일 옥천읍 하계리에서 태어났다. 휘문고보를 거쳐 일본 도시샤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경향신문 주간, 이화여전 교수를 거쳤다. 시집으로 《정지용시집》 《백록담》 《지용시선》 등을 남겼다. 윤동주 시인을 시단에 소개하고, 청록파 3인을 추천하는 등 한국문학에 크게 기여했다. 정지용 생가와 정지용문학관은 그의 문학세계를 조망해볼 수 있는 공간이다. 그의 시와 산문집 초간본이 전시되어 있어 그를 아끼는 이라면 추억이 될 것이다.

그가 다니던 옥천공립보통학교(현 죽향초등학교)는 최근 개교 100주년을 맞았다. 그가 다니던 구교사는 현재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데, 이 학교는 고 육영수 여사 등을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목조 단층의 3개 교실을 갖추고 있는데 가로로 마감된 형태는 근대건물로서의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다고 한다. 이외에도 구읍에는 조선시대 사마시(司馬試) 합격자들이 유학을 가르치던 ‘옥주사마소’ ‘옥천향교’ 등 문화유적이 골목마다 숨어 있다.

“모초롬 만에 날러온 소식에 반가운 마음이 울렁거리여 가여운 글자마다 먼 황해가 님설거리나니…”(‘오월 소식’)이라는 시간판이 걸려 있는 곳은 100년 전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우편취급국이다. 100여 년 전부터 약방과 담배가게를 하면서 우표를 팔던 곳이었는데 지금도 우편물을 취급하고 있다. 이외에도 마을엔 “불 피어오르듯 하는 술 한숨에 키여도 아아 배고파라”란 정지용의 시 ‘저녁햇살’의 한 구절이 간판에 적혀 있는 정지뜰식당, “더딘 봄날 반은 기울어 물방아 시름없이 돌아간다”는 시 ‘홍춘’을 걸어놓은 문정식당, “산모루 돌아가는 차, 목이 쉬여 이 밤사 말고 비가 오시랴나”란 시를 써넣은 산모루식당 등 시인을 추억하는 시들을 쉬이 만날 수 있다.

구읍을 거쳐 옛 37번 국도를 따라 이르는 ‘멋진신세계’는 옥천군이 추진한 공공예술프로젝트 1호로 시문학아트벨트다. 이완·이정인·홍지윤 작가 등이 참여해 만든 ‘멋진신세계’는 대청호가 내려다보이는 산책길을 따라가야 제맛을 느낄 수 있다. 시인이 습작하던 곳을 연상케 하는 시문학광장인 ‘모단광장’에 서보자. 대청호반의 절경이 눈앞에 시원히 펼쳐진다. 광장 밑으로 난 ‘일곱걸음산책로’에는 그의 시구를 음미할 수 있는 벤치와 조각, 정지용 문학상 시비 등을 만날 수 있다. 최초의 모더니스트로서의 그를 기억하기 위한 ‘모단가게’는 북카페와 미니 라디오방송국으로 이용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특히 도토리 형태를 띠는 조형물인 빨간 ‘창’은 유소년을 위한 창작놀이시설이지만 그 자체 조형물로도 매력 있다. “옮겨다 심은 종려나무 밑에/빗두루 선 장명등/카페 프란스에 가자.” (‘카페 프란스’ 중에서)는 시 속의 카페 프란스는 갤러리와 카페로 태어났다.

향수바람길이 시작되는 마을로 함초롬길 코스다. 대청호반을 따라가다 보면 산과 호반 마을이 어우러진 풍경을 만난다.


<찾아가는 길>
경부고속도로 옥천 IC 보은 방면으로 좌회전, 구읍 정지용문학관을 거쳐 장계교 앞 장계사거리에서 좌회전, 멋진신세계에 도착, 향수바람길 코스 중 선택한다.

<향수옥천자전거길>
향수옥천자전거길은 KBS TV <1박 2일>에 방영되면서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금강향수 100리 코스, 대청호향수 200리 코스, 금강, 보청천 코스, 옥천읍 싱글트랙 코스 등 8가지 코스가 있다. 특히 금강과 대청호를 끼고 가는 코스는 절경이다. (문의 : 옥천군 문화관광과, 043-730-3412)

‘멋진신세계’에서 둔주봉까지 이어지는 ‘향수바람길’

1. 대청호로 섬이 되어버린 오대리 마을 건너편의 취수탑. 앞으로 전망대로 활용할 계획이다.
2. 정지용 생가마을에 있는 옥주 사마소. 충북유형문화재로 조선시대 사마시 합격자들이 모여 유학을 가르치던 곳이다.
‘향수바람길’의 진정한 시작은 장계리 ‘멋진신세계’다. 장계리에서 주막말까지 구간은 함초롬길, 주막말에서 용골까지는 ‘전설바다’, 용골에서 전망대까지는 ‘넓은벌’, 전망대에서 안터까지는 ‘실개천’, 안터에서 피실까지는 ‘성근별’, 피실에서 독락정까지는 ‘모래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데 모두 정지용 시인의 시에 담겨 있는 시어다. 어휘뿐 아니라 시의 내용을 연상케 하는 풍경이 금강과 대청호를 따라 이어진다. 총길이는 걸어서 6~7시간 코스인데 이 중 한 구간을 선택해서 걸을 수 있다. 대청호와 금강 주변의 마을은 30여 년 동안 뭇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곳이다. ‘대청호’는 수몰로 인해 옥천 읍내나 평택과 안성으로 집단이주를 했던 아픈 기억을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특히 대청호 때문에 섬이 아닌 섬이 되어버린 오대리 마을은 지금도 배를 타야 들어갈 수 있다. 현재 다섯 가구가 살고 있는데 덕분에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마을 건너편 취수탑은 1940년대 건물로 낡았지만 앞으로 전망대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한다. 오대리는 KBS 대하드라마 <찬란한 여명>의 촬영지이기도 했다. 마을과 마을을 잇는 걷기길은 대청호반을 따라 걷는데 마을마다 품은 전설을 들을 수 있다. 마을이 언덕에 있어 비가 올 때만 물이 흐른다 해서 지어진 욱계, 주막이 있던 곳이라 해서 주막말, 며느리가 죽고 용이 승천하지 못했다 해서 지어진 며느리재와 용골 등이 있다. ‘향수바람길’의 정점은 최종 목적지인 안남면 연주리 둔주봉에서 내려다보는 전망에 있다. 금강을 휘돌아 흐르는 숲은 한반도 지도를 연상케 하는 풍경으로 비현실적이기까지 하다. “한겨울 지난 석류 열매를 쪼기여 홍보석 같은 알을 한알 두알 맛보느니”(‘석류’ 중에서),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열없이 붙어 서서 입김을 흐리우니…”(‘유리창’ 중에서) 등의 시들을 남긴 지용의 흔적을 찾아 떠나는 길은 어쩌면 ‘보이지 않는 길’인지도 모른다.

사진 : 김선아
  • 2011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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