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부부가 산골에서 부치는 편지 (52) 움튼다, 돋아난다, 봄뜰!

글 : 이상희 

그림 : 원재길
씨 뿌리고 모종 심은 것들이 여기저기 파릇파릇 돋아납니다. 저 혼자 알아서 움트고 싹튼 것들은 더욱 생기차게 뜰을 누빕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는 사이에도 쑥쑥 뻗어나가고 솟아오르는 듯 원기가 눈부십니다. 5시부터 울리게 맞춰놓은 자명종을 끄고 또 끄면서 미적대다가 남편이 기다리다 못해 ‘냉이 캐러 갑시다아아, 아욱 심으러 갑시다아아-’ 노래를 부르는 통에 꾸물꾸물 일어난 몸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입니다.

“냉이, 여기 있다!”

“잠이나 깼는지, 원. 냉이가 맞는지 잘 보시우, 냉이한테 물어보든가.”

퉁을 놓는 남편이 서운하다 싶은데도, 냉이한테 물어보라는 말이 반가워서 주절주절 말이 나옵니다.

“맞아. 나하고 동갑내기 약초 캐는 양반이 쓴 책에 보면 그러라고 하던데! 씨앗을 뿌릴 때는 ‘씨앗아, 너를 땅에 뿌리려고 하니 한 알도 빠짐없이 싹을 틔워 잘 자라다오. 나도 잘 보살펴주마’ 이러고, 물을 줄 때에도 ‘목마르지? 내가 물 줄게. 잘 받아 마시고 쑥쑥 자라거라’ 이러고, 싹이 돋을 때에도 ‘고생 많았지? 이제 내가 더욱 더 잘 보살펴줄게’ 이러고, 다 자란 것을 캐고 뽑고 잘라 쓸 때에도 ‘잘 먹고 좋은 일 할게. 고맙다!’ 이러라고.”

“그려, 그려! 잘 먹고, 좋은 글 쓰고 좋은 그림 그릴게. 고맙다, 냉이야!”

그러면서 캐어낸 딱 세 뿌리 냉이를 넣은 된장찌개를 먹으며, 이번에는 냉이 예찬입니다.

“이게, 나같이 코피 자주 흘리는 사람한테 좋고, 기운 없는 이들, 피로회복에도 좋고… 간에 좋아서 술 마시고 난 다음에도 이걸 먹으면 회복이 빠르대요. 비타민 A가 많고 알칼리성이라 항암 효과도 있고. 참, 우리같이 노안이 된 눈에도 좋고, 위에도 좋고!”

“생각난다, 《본초강목》에도 나와 있다고 해서 깜짝 놀란 적 있어요. 그러니까, 이게 약초라는 거지!”

얘기가 많다 보니 어느새 뜰에 나와 커피며 대추차를 한 잔씩 들고 서 있는 것이, 정작 그 냉이된장찌개며 밥을 먹었던가 싶습니다.

“아욱은, 지금 심을 거예요?”

“그래야지요. 저기 감나무 둘레, 우리 딸내미 나무 에메랄드그린 앞쪽에다 심자고요.”

장화 신고 장갑 끼고 괭이를 들었지만, 그다음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두커니 섰는데, 남편은 윗뜰로 왔다 갔다 하며 퇴비며 비료를 푸대째 날라다 척척 뿌립니다.

“퇴비는 농협에서 산 거고, 퇴비 열다섯 배쯤 비싼 이 비료는… 이게 친환경 비료라는 건데, 뭘로 만든 건지 어디, 한번 볼까… 주로 곡물 껍질이구만. 콩껍질 같은 거 말이지.”

거뭇거뭇 기름져 보이는 밭에다 아욱 씨를 뿌립니다. ‘치마아욱’ 봉투에 든 바스라진 검은깨 같은 것을 뿌리는데, 무씨도 이렇게 생겼던 것이 떠오릅니다. 언젠가 무꽃을 소재로 글을 쓰던 밤에 무씨를 뿌리는 장면에서 막막해져 여기저기다 묻고, 그래저래 얻어 듣는 것만으로는 성에 안 차 결국 날이 밝기를 기다려 종묘상에 가서 무씨를 샀더랬습니다. 이제 아욱 씨 모양까지 알았다고 생각하니, 그걸 손수 뿌려 자라는 걸 보게 될 걸 생각하니, 마음 뿌듯하기 그지없습니다.

“우리 집이 부자다, 부자! 씨감자를 저리도 고랑고랑 심어놨지, 상추밭에, 아욱밭에 감나무·사과나무·복숭아나무·자두나무·살구나무… .”

“어제 초등생 강연 다녀오시더니, 딱 그 수준이시구먼요!”

열 살 미만 그 나이 그 기분으로 살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한 지복이 없겠지요. 그득히 흐뭇해진 마음으로 건너편 숲을 보니 소나무며 잣나무며 늘푸른 나무들에도 새 초록빛이 감돌고 있습니다. 새들도 배가 볼록한 채 힘차게 날아다닙니다.
글쓴이 원재길·이상희 씨 부부는 원주시 부론면 단강리 산골에서 살며 시와 그림책을 씁니다.
  • 2011년 05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
이름      비밀번호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독자팀)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