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신 ‘경신공방’ 대표

한지 장신구로 세계인 마음 사로잡은 공예작가, 북촌한옥마을로 돌아오다

◎ 북촌한옥마을 경신공방
전시 시간 : 매일 오전 11시~오후 5시(월요일 휴무)
문의 : 02-763-1770
한지와 귀금속, 은은한 중간색과 오방색(한국의 전통 색상인 황(黃)·청(靑)·백(白)·적(赤)·흑(黑)). 서로 동떨어진 것 같은 요소들을 조화시켜 동서양의 만남을 추구하는 장신구, 도자기의 상감기법을 칠기에 처음 시도한 생활용품으로 우리 공예의 전통과 힘을 유럽·미국·일본 등지에 알린 이가 있다. 우리나라보다 국제무대에서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먼저 인정받은 공예작가 김경신(56) 씨다.

2009년 서울 북촌의 한옥마을에 둥지를 튼 ‘경신공방’은 공예작가 김경신 씨의 이름을 딴 공방이자 전시장이다. 안마당을 둘러싸고 ‘ㄴ자형’ 바깥채와 ‘ㄱ자형’ 안채를 앉힌 전형적인 북촌 한옥의 모습이다. 이곳에는 한지의 고유한 맛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물에 젖지 않도록 하는 기술을 개발, 한지와 귀금속을 결합해 만든 귀고리·목걸이 등 장신구, 상감기법을 활용한 칠기 소반, 의자, 조명기구 등 생활용품이 전시되어 있다.

서울산업대학교에서 금속공예를 전공한 그는 1990년 독일로 건너가 포르츠하임 예술대학에서 롤프 로흐 교수에게 회화와 판화를 배운 것이 한지에 현대성을 접목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고 한다. 1994년 프랑스 파리의 코미테 콜베르 국제디자인 공모전에서 랑콤 화장품 디자인대상을 받으며 국제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그 후 한지 조각과 한지 회화를 귀금속과 접목하면서 ‘한지 귀금속’이라는 장르를 개척해 독일 공예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그의 공예작품이 세계적으로 알려진 것은 한지 덕분이었다. 그는 어떻게 한지를 귀금속에 접목할 생각을 했을까.

“서울 북촌 한옥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어요. 아침 해가 뜰 때 한지를 바른 창으로 들어오던 아른아른한 햇빛에 대한 기억이 지금도 제 몸과 정신에 남아 작품을 만드는 원동력이 됩니다. 그 순간을 생각하면 마음이 푸근해지는데, 이런 느낌을 다른 사람에게도 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한지 장신구 만드는 법 개발해 독일과 한국에서 특허

그러나 금속을 주재료로 하는 장신구에 한지를 활용하려면 물에 젖거나 찢어지지 않도록 만들어야 했다. 그는 실험을 거듭한 끝에 한지를 여러 겹 단단하게 붙인 뒤 파라핀으로 표면을 처리하고 전기분해기법을 활용해 금과 은 등 금속을 결합시키는 특수 기술을 개발, 독일과 한국에서 특허를 받았다. 전해주조(Electroforming) 기법(왁스 등의 모형 겉면에 전기도금의 원리로 금속을 전착시킨 후 모형은 제거하고 순수 금속화된 제품을 얻는 제조기법)에서 착안했다 한다. 이렇게 태어난 한지 귀금속은 매우 가벼우면서도 내수성과 내구성이 뛰어날 뿐 아니라 빛을 잘 투과시켜 느낌이 독특하다. 새로운 차원의 장신구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그는 유럽 전역을 돌며 매년 100회 이상 개인전을 열거나 그룹전에 참여하고, 미국 박람회에 참가해 호응을 얻으며 판매망을 넓혔다. 2007년 2월 독일 베를린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위한 〈오마주 아 앙겔라(Hommage a Angela)〉 장신구전에는 그가 전 세계 디자이너 64명 중 동양인으로는 유일하게 초청받아 한지를 활용한 장신구로 호평을 받기도 했다.

그가 20여 년간 유럽에서의 화려한 경력을 뒤로하고 한국에 온 이유도 한지와 관계가 있다.

“가끔 한국에 올 때마다 어린 시절 추억이 어린 한옥을 찾았어요. 그런데 그곳이 황폐해지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한옥마을을 우리나라 문화의 중심으로 되살려 세계에 알려야겠다고 결심했지요.”


그는 아파트 문화에 길든 아이들이 한옥과 한지를 체험하면서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도록 공방을 열었다. 최근에는 한지와 함께 옻을 현대공예에 접목하는 데 전력하고 있다. 2005년 청주공예비엔날레에 참가했다가 베트남에서 활동하는 채 색옻칠 전수자 민경환 씨를 만난 게 계기가 됐다. 귀금속 디자인으로 연마한 그의 디자인 감각과 민경환 씨의 채색 옻 기술이 만나 새롭고 독창적인 소반·의자·타일·조명기구 등 생활용품이 탄생하고 있다. 옻칠한 막사발은 오묘한 색감으로 보는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다양한 색감으로 제작되는 막사발과 식기 세트는 대량생산을 앞두고 있다.

지난해 5월 열린 〈월드 IT쇼 2010〉에서 옻 처리한 스마트폰 케이스를 선보여 주목받기도 했다. 그는 옻을 심하게 타는 편이라, 옻칠 작업을 할 때마다 온몸이 퉁퉁 붓곤 하는데 “억제제를 먹으며 작업하다 응급실에 실려 간 적도 있다”고 했다.

“몸은 힘들지 몰라도 이 아름다움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죠. 표현해보고 싶은 것이 많아서 포기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옻이라면 흔히 ‘피부에 옻이 올랐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옻은 원적외선이 나오고 살균·방부 작용이 뛰어납니다. 이집트의 미라도 옻 처리해서 그토록 오래 보존된 거라고 합니다. 옻 처리한 휴대전화 케이스는 휴대전화에서 나오는 전자파를 막아주는데다 미적으로도 훌륭하지요.”


유럽에서 실력 하나로 당당히 세계적 명성을 얻은 그는 우리 전통문화에 기대를 건다. “한지, 옻 공예를 현대화해 세계화·브랜드화하는 게 소망입니다. 유럽과 미국에서 그 가능성을 경험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면 길이 열릴 거라고 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문화재들의 솜씨에 현대작가들의 디자인이 결합한 21세기형 상품을 만들어 세계시장을 두드려야 한다면서 그는 “작가들의 힘만으로는 어려운 일이니 정부와 기업들이 나서주었으면 한다”고 말한다.

그에게 한지는 영혼과 같은 존재라고 한다.

“25년 동안 한지를 가지고 작업하고 있는데, 하염없이 바라만 봐도 좋고 그 아름다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우리도 명품을 만들어야죠. 외국의 명품을 들여오기만 할 게 아니라 옻·한지·모시 등 고부가 가치가 있는 공예를 현대화해서 세계로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진 자산의 가치를 정작 우리가 모르는 것 같아요. 한옥·음식 문화 등 우리 문화가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깨닫고 계속 이어나갈 수 있도록 후배들에게 제 경험을 전수하고 싶어요.”

경신공방에서는 분기별로 공방테마전시회를 진행하면서 전통문화와 현대문화를 함께 체험할 수 있다. 민화·다도·승무 등의 행사를 진행하고, 올 5월에는 한지 작품 전시와 함께 한복 입기, 절하기, 다과 등 한국문화를 영상으로 보여줄 예정이다.

“이곳이 한국문화의 사랑방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옛날 분들께는 옛 기억을 더듬을 수 있는 장소, 어린 친구들에게는 부모님이 성장한 곳, 외국인들에게는 한국문화를 만나는 곳이 되게 하고 싶습니다.”

사진 : 김근호
  • 2011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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