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부부가 산골에서 부치는 편지 (48) 산골 현장학습

글 : 이상희 

그림 : 원재길
모처럼 숲골짜기 집이 그득합니다. 아이들 킥킥대는 소리며 어른들 웃음소리가 온 집안을 들썩이고, 장작 난로를 암만 때어도 썰렁하던 집안이 후끈합니다. 새삼 사람의 온기라는 것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고가는 다정한 기운이라는 것이 대단하다 싶습니다. 무엇보다 아이, 열정의 화신이 둘이나와 있는 덕분일 겁니다.

“아줌마, 이거 보세요!”

과일을 깎아 내가니, 집안 여기저기서 꺼내 온 책을 제 옆에다 잔뜩 쌓아놓고 읽던 내영이가 아침나절에 울산 집 떠나면서 자기 담임선생님께 보냈다는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보여줍니다. 잘 안 보여서 읽어달라고 했더니, 깡마른 소녀의 목소리가 차랑차랑 숲골짜기 집을 울립니다.

“‘선생님의 일등 제자 내영이는 오늘 산골 체험학습하러 갑니다. 제가 없어도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어이쿠!”

아이들 학교 결석시켜가며 멀리 울산에서 다니러 온 남편의 후배 내외가 딸아이 넉살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데, 우리 내외는 오랜만에 눈물이 나도록 웃습니다. 우리 딸아이 어릴 때 제 생일 아침에 온 동네 대문을 두드리고 다니면서 “오늘은 내 생일이에요!” 하던 거 생각난다고 수군거리며, 맞장구를 칩니다.

“그래, 그래, 내영이가 없어서 선생님이 틀림없이 슬퍼하셨겠다.”

“네, 우리 선생님이 깜짝 놀라셨어요. 그래서 엄마한테 전화하셨어요.”

내영이 동생 기환이란 녀석 또한 누나 못지않게 웃음을 자아냅니다. 초등학교 2학년이라지만 뽀얗게 곱상한 얼굴에 아기 티가 남아 있다는 걸 저도 아는지 짐짓 사내아이답게 보이려 애를 씁니다만, 어른 눈에는 오히려 재롱으로 여겨지는 겁니다. 이제도 누나의 문자 메시지 낭독이 끝나자 잠자코 점잔 부리며 앉아 있던 녀석이 조그맣게 소리칩니다.

“뜨끔!”

아마도 만화책에서처럼 마음속 생각을 표현하는 말인 듯, 저도 누나와 비슷하게 학교 결석한 일이 ‘뜨끔하게 마음 켕긴다’는 뜻이겠지요. ‘뜨끔’과 더불어 이 아이가 자주 쓰는 말은 ‘쩜쩜’입니다. ‘말줄임표를 찍듯 자신의 반응을 생략하겠다’는 뜻인 듯합니다. 아이들을 무척이나 반기는 우리 내외는 금세 기환이를 쫓아 대화 사이사이에 ‘뜨끔’과 ‘쩜쩜’을 연발합니다.

그렇게 웃고 떠들다가, 아침밥 차리는 동안 뒷산에 다녀들 오라 하고 주방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참인데 문득 ‘엄마’ ‘엄마’ 하고 부르는 사내아이 목소리가 납니다. 눈뜨자 마자 잠옷 바람으로 어제 읽던 책을 찾던 기환이가 아마도 책읽기에 빠졌던가 봅니다. 가족들이 모두 나간 다음 문득 혼자 남은 걸 깨닫고는 갑자기 엄마를 불러대는 거지요. 상황을 눈치 채고 한참을 소리 없이 웃다가 일부러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도마 소리를 내었더니, 그제야 다 큰 사내아이가 ‘엄마’ 소리를 멈췄습니다.

아침밥 먹고 나서 뜰에 나가 차를 마시는데, 아이 둘이 왕성하게 뜰을 누비고 돌아다니는 풍경이 근사합니다. 아이들은 호돌이를 외쳐 불러가며 개울너머 포장도로를 내달리기도 하고, 우리 딸아이가 타던 퀵보드를 번갈아 타고 오르막길 스피드를 즐기기도 합니다.

“시골 아이들처럼 잘 노네. 아파트에서 자라는 아이들 같지 않네요.”

내가 감탄하자, 남편이 덧붙입니다.

“어젯밤 바비큐 할 때도 기환이가 크게 한몫한 거, 모르시는군?”

심부름이며, 몸 움직여 일하는 걸 무척 좋아하더라는 겁니다.

좀 부풀려서 칭찬하는 말인가 했는데, 점심으로 매운탕을 끓일 때 눈으로 확인하게 되었어요. 두 사나이가 차가운 개울에 들어가 천렵한 물고기를 손질해놓고 가마솥에 불을 때는데, 기환이가 제 손에 맞지도 않는 면장갑을 낀 채 장작을 나르며 능숙하게 불을 돌보는 겁니다.

“기환아, 아줌마는 기환이가 꼭 필요해. 아줌마랑 여기서 살자!”

감탄을 숨긴 채 농담처럼 건네는 내 말에도 녀석은 씽긋 웃기만 할 뿐, 점심 준비하는 사나이들 쪽에서 ‘한몫하는 기쁨’을 놓으려 들지 않습니다. 식탁에 나란히 앉아 구경하는 엄마와 아줌마와 누나의 세계를 영영 떠난 듯합니다. 사나이 셋이 끓이는 가마솥 매운탕 덕분에 겨울 뜰이 풍성합니다.
글쓴이 원재길·이상희 씨 부부는 원주시 부론면 단강리 산골에서 살며 시와 그림책을 씁니다.
  • 2011년 01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는 로그인 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201909

201909

구독신청
낱권구매
전체기사

event2019.09

event
event 신청하기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30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