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복원된 ‘금강소나무숲길’ 체험

옛 보부상들이 걷던 열두 고갯길을 가다!

옛 보부상들이 등짐을 지고 고개고개 오르내리던 길. 동해안인 울진과 내륙을 잇던 십이령 길이 ‘금강소나무숲길’로 복원됐다. 보부상들이 동해안 흥부장, 울진장, 죽변장에서 해산물을 구입해 봉화・영주・안동 등 내륙지방에 팔기 위해 넘었던 열두 고갯길. 이제는 인적이 뜸한 이 길을 산림청이 주도하고 중앙 정부, 울진군, 지역 주민들이 힘을 합해 다시 열었다. 최근 제주 올레를 필두로 전국 곳곳에서 새로운 길이 만들어지면서 걷기 열풍이 일고 있지만, 이처럼 옛길을 복원한 예는 드물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총 네 개 구간으로 조성되는 ‘금강소나무숲길’은 2010년 7월, 첫 번째 구간인 경북 울진군 북면 두천리에서 울진군 서면 소광2리를 잇는 13.5km이 열린 상태. (사)울진숲길 이규봉(44) 사무국장과 이윤권 숲 해설사 등 숲 해설사와 함께 동행해 이 구간을 걸었다. 봉화로 연결되는 2구간은 현재 조성 중이며, 3구간과 4구간은 통고산과 왕피리로 이어질 예정이다.


보부상길・안동간고등어길로 불리며 물자교환의 숨통 역할을 했던 이 길은 7번 국도와 36번 국도가 뚫리면서 새 길에 자리를 내주고 숲으로 덮였었다. 금강소나무숲길은 궁궐을 짓는 건축재료로 쓰이던 금강송 군락지. 보통 200~500년, 최고 수령 700년의 금강송이 줄지어 서 있는데다 천연기념물 제217호인 산양의 서식지이기도 하다. DMZ(비무장지대)를 제외하면 우리나라 최대 산양 서식지. 천연기념물 제330호 수달도 이곳에 터를 잡고 있고, 담비・너구리・오소리 등의 보금자리이기도 하다. 산마루에서 내려다본 울진의 바다는 보기 드문 풍경을 선사한다.


생태계의 보고인 이 숲길은 하루 80명까지 예약을 받아 탐방할 수 있게 하면서 숲 해설가가 동행하는 등 독특한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이규봉 사무국장은 “가능한 인위적인 손길을 최대한 자제하는 쪽으로 복원했습니다. 안내판도 최소화하고, 심지어 화장실도 만들지 않았답니다. 이 길을 오래 보존하고자 하는 의도를 사람들이 이해해주리라 믿습니다”라고 말한다. 대신 여행자들이 옛 정취를 간직한 채 쉬었다 가게 하기 위해 옛 주막을 재현할 계획이다.

“두천리는 실제 주막이 번성했던 마을이에요. 보부상들이 주막에서 하룻밤 쉬었다 갔던 것처럼, 숲길을 찾는 분들이 마을에서 민박을 하거나 점심 도시락을 주문할 수 있게 할 계획입니다. 환경을 보호하면서 마을 경제는 살리는 생태여행, 책임여행의 모델을 만들어가는 거지요. 마을 주민들이 숲 해설 교육을 받고 해설가로 활동하기도 하는데, 여행객은 그분들로부터 생생한 마을의 역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소광리 마을 주민들은 폐교된 초등학교를 사들여 소광리 공동 펜션으로 운영하고 있다. 울진의 특산물인 송이버섯을 이용한 각종 송이요리와 집에서 직접 담근 막걸리 맛은 이미 소문이 나 있을 정도다. 두천리에 들어서는 주막은 지역 주민과 숲길 탐방객이 만나는 커뮤니티 공간으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옛 보부상들은 동해안에서 미역, 건어물, 소금, 생선, 젓갈 등을 구입해 봉화(내성), 영주, 안동장에 내다 팔고, 다시 내륙지방의 생산품인 피륙, 비단, 담배, 곡물 등을 사서 해안 장터에 와서 팔았다고 한다. 울진의 고포미역은 임금에게 올리는 진상품일 정도로 명성을 떨쳤다 한다. 이 길을 다닌 것은 보부상만이 아니었다. 선비가 과거를 보러 가기 위해, 원님이 마을에 부임하러 가는 길이자 시집가고 장가가기 위해 오르내리던 길이기도 했다. 1구간에는 이들의 애환과 기원이 담긴 ‘울진내성행상불망비’나 ‘조령성황사’, 옛 주막터, 화전민터 등 유산이 남아 있다.



마을 주민들이 준비한 도시락으로 요기하고, 주막에서 쉬고 …

십이령의 두 번째 고개인 바릿재는 가파른 길이지만 숲의 청명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소에 물건을 바리바리 싣고 다녔다 해서 붙여진 이름인 바릿재. “미역, 소금 어물지고 춘양장을 언제 가노/대마, 담배, 콩을 지고 울진장을 언제 가노…/가노가노 언제 가노 열두고개 언제 가노”라고 노래 부르며 넘던 고개다. 바릿재 입구에는 자그마한 하천이 흐른다. 징검다리를 건너자마자 ‘내성행상불망비’가 있는데, 이곳이 1구간의 시작점이다. 행상인들이 상행위에 도움을 준 사람을 기리는 공덕비로, 보부상들은 불망비를 지날 때 술을 한 잔씩 올리고 예를 갖춘 후 길을 나섰다고 한다.

찬물내기(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매우 차갑다 해서 유래한 명칭)에서 가파른 산길로 접어드는 옛길은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데, 그 모습이 온전히 남아 있다. 이윤권 숲 해설사는 “티벳의 차마고도에 비길 만큼 가파른데, 풍경이 빼어나서 1구간 중 가장 아름다운 절경으로 손꼽히는 곳이에요. 길을 가다 지칠 때 아름다운 풍경이 위로하고 격려하는 지점이지요”라고 말한다.


십이령의 세 번째 고개인 조령 혹은 샛재로 불리는 고갯마루에는 보부상들이 지역 주민들과 함께 세운 성황당인 조령성황사가 있다. 보부상들은 이 성황당을 지날 때 신변의 안전과 성공적인 행상을 기원했다. 험한 산길에는 도둑떼와 맹수가 많아 반드시 팀을 이루어 가는 게 원칙이었다고 한다. 바릿재를 넘어 장평을 지나 임도 좌우로 연결된 가파른 돌산은 산양이 주로 머무는 곳이다. ‘산양, 쉿’이라는 재치 넘치는 문구를 써 놓았다. 산양이 똥을 눈 자리를 보고 흔적을 확인할 수 있는데, 운이 좋으면 산양과 마주칠 수도 있다. 지난해에는 예기치 않은 폭설로 산양 17마리가 죽은 채 발견되기도 했다.

최윤석 숲 해설가는 “산양은 귀족적인 외모에 푸른색 눈동자가 매혹적”이라고 말한다.

“산양은 일부다처제예요. 신기하게도 아무데서나 배설하지 않을 정도로 깔끔해요. 저렇게 가파른 암석위에서 어찌 생활하나 싶은데, 발굽이 바위에 잘 달라붙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고 해요.”


1구간의 중간 지점인 찬물내기 쉼터는 점심 도시락을 먹기에 맞춤이다. 마을 주민에게 도시락을 미리 주문하면 되는데, 마을 이장을 지낸 후 지금은 숲 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는 정만식(61) 씨네 도시락은 송잇국, 송이버섯무침, 송이장아찌, 송이볶음밥 등 송이음식을 잘하는 아내를 둔 덕에 맛있다는 입소문이 났다고 한다. 어릴 적 기억과 버무려 맛깔스럽게 숲 이야기를 해주는 그는 길이 열린 후 지역민과 외지인의 접촉이 많아지면서 문화교류가 이루어지는 점이 무엇보다 좋다고 말한다. 조령성황사에서 대광천에 이르는 길 역시 희귀식물과 야생화의 보고로 이름이 났다. 너삼밭재에서는 화전민이 살았던 저진치를 만날 수 있고, 거기에서 한 시간여 가면 기착지인 소광2리에 오른다.

《산티아고 가는 길》을 쓴 네덜란드 작가 세스 노터봄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이 다니는 길로만 가서는 스페인을 제대로 알 수 없다. 미로처럼 복잡한 스페인의 역사를 거닐어본 적이 없는 사람은 스페인을 돌아다녀도 보고 느끼는 것이 없다. 스페인이 주는 경이로움은 끝을 모른다.”

훼손되지 않은 자연과 역사의 흔적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금강소나무숲길 역시 사람들이 찾지 않던 곳에서 느끼는 경이로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사진 : 김선아
사진제공 : 울진숲길
촬영협조 : (사)울진숲길(www.uljintrail.or.kr, 054-781-7118),
                 산림청 울진국유림관리소(054-780-3940~3)


▣ tip 경북 울진 소광리 금강소나무 군락지

울진 소광리 금강송 군락지는 금강송(金剛松) 숲의 원형이 잘 보전돼 있는 지역이다. 궁에서 직접 관리해 허락 없이 산에 들어가면 곤장 100대에 처해지던 곳이다. 1982년부터 산림청의 산림유전자원 보호림으로 지정 관리되고 있고, 2001년부터는 산림유전자보호지역으로 보호받고 있다. 수령이 200~500년에 이르는 금강송 군락지로 삼림의 생태적 가치가 높은 곳이다. 조선시대 궁궐을 건축할 때나 왕실에서 관을 짜는 목재로 사용했다고 한다. 나무 속(心材)이 굳어지면서 노란빛을 띠어 창자 같다 해서 황장목(黃腸木)이라 불리기도 했고, 춘양에서 유통된다고 해 춘양목이라고도 불리기도 했는데, 일제 강점기 때부터 식물학 분류에 따라 금강송으로 부르게 됐다. 하늘로 쭉쭉 뻗어 올라간 고고한 금강송은 거북이 등처럼 갈라지고, 회갈색・황적색 등 깊은 색을 띠고 있다. 옛 어른들은 우주목・신단수라고도 불렀다. 일제 강점기 때 무차별 벌목돼 일본에 실려간 불운한 기억도 안고 있는 곳이다. 현재는 일반인 출입통제구역이다.
  • 2011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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