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이 ‘도이파리스’ 대표

크리스찬 디올 겐조에서 일한 경험 바탕으로 세계적인 브랜드 만들 거예요

디자인이 힘이고 경쟁력인 시대다. 창의적이고 새로운 스타일로 세계시장에 승부수를 띄우고 있는 한국인 디자이너가 느는 가운데, ‘차세대 안나 수이’라는 별칭으로 다양한 컬렉션을 선보이며 해외 바이어들의 수주를 따내는 패션 디자이너가 있다. 주인공은 디자이너 브랜드 ‘도이파리스(Doii Paris)’의 이도이 대표다.

국내에서는 생소하던 그가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건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관한 한국 패션문화쇼룸 구축사업에서 ‘The Best 6 Korean Designer’로 선정되면서부터. ‘뉴욕패션위크’가 열리는 동안 뉴욕 퍼블릭 라이브러리에서 운영된 ‘한국패션쇼룸’에 작품을 전시했던 그는 직접 그린 프린트에 스팽글을 단, 독특하고 로맨틱한 라인으로 국내외 패션 인사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6명의 대표 디자이너에 선정된 후 들은 얘기예요. 국내 심사위원과 해외 심사위원으로 나누어 이루어진 심사에서 ‘도이파리스’는 해외 심사위원들에게 특히 높은 점수를 받았대요. 정구호・박춘무・홍승완・정욱준・앤디&뎁 등 저 이외에 디자이너 다섯 분은 이미 패션계에서 입지가 단단한 분들이어서 제가 그 대열에 포함된 사실이 저도 놀라웠는데 해외에서의 성장 가능성을 높이 평가해주신 것 같아요.”

오픈한 지 이제 만 1년 넘었다는 신사동 도이파리스의 매장에 들어서니 그의 외양만큼이나 활기 넘치고 반짝거리는 소녀 감성의 드레스가 가득하다. 2010년 10월 말 열린 ‘서울패션위크 S/S 2011’를 위해 그가 제작한 스토리보드에는 이교도 소녀가 인도의 신, 멕시코 신, 연못의 신, 달빛의 여신 등 세계 각국의 신들과 교감하면서 다양한 문화를 편견 없이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 진정한 아름다움을 깨닫는다는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어릴 때, 동화책을 읽거나 인형을 가지고 노는 걸 좋아했어요. 혼자 있는 시간이면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마음의 위안을 얻었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이야기를 지어내는 게 취미가 됐어요. 제 컬렉션은 항상 스토리가 있는데, 대개 한 여자아이가 등장해서 어딘가로 놀러 가는 내용이에요. 말하자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어린 시절 놀이의 연장선인 거죠.”

끼 많고 재주 많던 그는 그중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던 미술을 선택, 자연스럽게 대학에서도 서양화를 전공했다. 그러나 원하는 걸 마음껏 그릴 수 없다는 사실은 그를 주눅 들게 했고, 더 이상 동기부여도 되지 않았단다.

“무엇보다 졸업 후 불투명한 장래가 걱정이었어요. 이대로 가다가 ‘뭘 해먹고 살까’ 하는 고민이 있었어요. 더 늦기 전에 영국으로 패션유학을 떠나기로 결심했죠. 패션에 대한 무한한 열정 때문이라기보다는 진로에 대한 냉정하고 현실적인 판단에서였습니다. 패션에 워낙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거든요.”


반대하는 부모님께는 어학연수를 간다고 둘러대고, 한국에 다시 돌아오지 않을 작정으로 1996년 12월 영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듬해 영국 블레이크컬리지에 입학해 패션디자인을 공부하고, 1998년에는 존 갈리아노, 마크 제이콥스, 알렉산더 매퀸 등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의 모교이자 세계 3대 패션 스쿨 중 하나인 ‘센트럴 세인트 마틴 스쿨’에 진학했다. 졸업 패션쇼에서 300여 명의 학생 가운데 ‘The best 10 Graduates Of Central St. Martins 2002’에 선정된 그는 졸업과 동시에 프랑스로 날아가 평소 동경하던 디올의 수석 디자이너 존 갈리아노의 스튜디오에서 본격적인 커리어를 쌓았다.

“부모님께 ‘언젠가 내 이름을 건 브랜드를 만들어 세계적인 패션하우스로 키우겠다. 그러기 위해 먼저 유명한 명품 브랜드에 입사해 경력을 쌓겠다’고 공언했어요. 그래서 졸업 패션쇼 포트폴리오는 제가 좋아하는 크리스찬 디올의 수석 아트디렉터 존 갈리아노 스타일에 초점을 맞추었고, 덕분에 존 갈리아노와 함께 그의 브랜드인 파리 ‘메종 갈리아노’에서 일할 수 있었죠.”


하지만 정작 갈리아노는 너무 바빠서 스튜디오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많지 않았고, 열심히 일한 만큼 대우를 받지 못하는 등 작업 환경에 만족할 수 없었다. 그는 이직하기 위해 평소 갈리아노만큼 좋아하던 겐조의 수석 아트디렉터 안토니오 마라스에게 자신의 작업 샘플을 보냈다.

“별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그의 아내로부터 연락이 왔고, 이후 겐조에서 4년 동안 일했어요. 안토니오 마라스는 스스로를 아티스트라고 믿기 때문에 저로부터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예술적인 영감을 받고 싶어 했어요. 그래서 언제나 그를 놀라게 해 줄 ‘재미있고 이상한’ 작업물을 수작업으로 만들곤 했죠.”

갈리아노와 겐조에서 세계적인 아트디렉터들의 어시스턴트로 일한 기간은 그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회이자 경험이었다.

“라이프스타일은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웠지만 독립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하루빨리 제가 직접 디자인한 옷을 만들고 싶었거든요. 현실에 안주하면 제 브랜드를 만들지 못할까 봐 불안했어요.”

자신의 이름을 내건 독립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좇아 회사를 그만둔 그는 럭셔리 패션하우스에서 5년간 차곡차곡 쌓은 경력을 바탕으로 2006년 10월, 파리에서 ‘도이파리스’를 론칭했다. 화려한 프린팅과 다양한 색감이 돋보이는 도이파리스의 컬렉션은 데뷔 때부터 해외 바이어들로부터 ‘신선하다’ ‘여성스럽고 매력적이다’라는 반응을 이끌어내며 각국 언론에 소개되었고, 미국・독일・영국 등지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한국에는 서울 신사동에 사무실 겸 매장, 대구에 매장을 열었다.


남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사람을 위한 옷

“도이파리스는 나이에 상관없이 자신을 남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면서 주목받고자 하는 사람의 옷이에요. 남의 이목에 지나치게 신경 쓰고 트렌드에 민감한 사람은 저희 제품을 어려워해요. 그래서 아직 고객의 대부분은 마니아층이에요.”

이번 시즌 온라인 구매대행 사이트인 ‘위즈위드(www.wizwid.com)’와 함께 진행하고 있는 ‘W Concept with Doii Paris 2010 F/W Collection’은 기존 고객층과 바이어뿐 아니라 대중에게 접근하기 위해 기획된 한정판 컬렉션이다. 디자이너 브랜드의 제품을 10만~30만 원대의 합리적인 가격대로 만날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인데다 그간 시도해보지 못하던 스타일을 다양하게 선보일 수 있어서 기대가 크단다. 차분한 가운데 넘치는 에너지가 엿보이고, 한없이 여린 소녀 같다가도 씩씩하고 거침없는 면모를 드러내는 그녀의 양면적인 캐릭터는 여가시간에도 고스란히 반영된다. 집에 틀어박혀 온종일 책을 읽거나 그림 그리는 것 외에도 댄스를 좋아해서 주말이면 친구들과 어울려 클럽을 찾거나 파티에 참석하기도 한다고. 철들고 나서 생긴 취미는 세계 각지를 홀로 여행하는 것. 박물관과 시장은 빼놓지 않고 들른다. 순박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특히 덜 개발된 오지를 좋아한다. 때로는 이렇게 전혀 낯선 문화 속에서 영감의 원천을 찾곤 한단다. 그래서일까. 도이파리스의 스타일을 한마디로 규정짓기는 어렵다. 이도이가 디자인한 옷은 유연하고 자유로운 감성으로 경계를 넘나드는 그녀의 아이덴티티와 닮아 있기 때문이다.

디자이너로서뿐 아니라 독립 브랜드를 책임지고 있는 사업가로서 그녀에게 가장 큰 힘이 되어주는 존재는 가족이다. 자신의 재능은 임플란트 전문의인 아버지의 손기술과 세련된 어머니의 감각에서 비롯된 것 같단다. 동생은 영화감독인 이사강. 동생은 터울도 많이 나고 생김새도 다르지만 도이파리스의 가장 열렬한 팬이다.

“부모님은 언제나 훌륭한 비즈니스 멘토가 되어주세요. 어려서부터 저의 독립성을 길러주셨고요. 그래서 결혼한다면 제 일을 존중해주고 저와 동등한 입장에서 많은 것을 나눌 수 있는 사람과 하고 싶어요.”

이도이가 생각하는 ‘럭셔리 브랜드’란 세월을 뛰어넘는, 즉 영속적인(timeless) 가치를 갖고 있어야 한단다. 또한 패션 디자인은 사람들과 꾸준한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므로 도이파리스를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게 궁극적인 목표라고 말한다.

“현재 중동과 홍콩의 바이어가 저희 옷을 독점 판매하고 싶다고 해서 협상 중이고, 4년 후에는 세계 여러 도시에 매장을 내고 싶어요. 생산성이나 트렌드에 집착하지 않고 옷에 가치를 불어넣어 진정한 ‘명품’을 만들고자 해요. 도이파리스만의 고유한 아이덴티티는 가지고 가되 늘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고요. 그래서 저희 옷을 좋아하는 고객과 함께 성장하고 싶어요.”

20세기 패션과 문화의 흐름을 주도한 디자이너 코코 샤넬은 일찍이 이런 말을 남겼다. “패션은 사라져도 스타일은 남는다.”

도이파리스가 갖고 있는 고유의 아이덴티티와 유연한 스타일이 언젠가는 패션 그 너머의 가치를 지니게 되기를.

사진 : 김선아
  • 2011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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