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세영 알리프(ALIFE) 대표

세계 50개국에서 팔리는 ‘메이드 인 코리아’ 디자인 상품

1852년 문을 연 유서 깊은 백화점으로 파리 상류층이 즐겨 찾는 ‘르 봉 마르셰’와 퐁피두센터, 루브르박물관, 반 고흐박물관, 로댕박물관 아트숍 등에 모두 들어가 있는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이 있다. 디자인 소품 브랜드인 ‘알리프(ALIFE)’. 여행 파우치, 수첩, 여권 커버, 카드지갑 등을 만드는 이 회사의 제품은 정작 한국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런데 프랑스의 350개 매장을 비롯해 독일・이탈리아・스페인・포르투갈・네덜란드・벨기에・룩셈부르크・덴마크・스웨덴・핀란드・노르웨이・스위스・오스트리아・영국・미국・일본・홍콩・러시아・뉴질랜드・싱가포르・호주・콜롬비아・태국, 중국 등 50개국 2500개 매장에서 팔리는 제품이다. 프랑스・영국・이탈리아・북유럽 등 디자인 선진국에서 호평을 받고 있어 더욱 의미가 깊다.

알리프의 대표인 엄세영 씨를 서울 강남구 논현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홍콩 전시회를 앞두고 있는 그는 분주했다. 그는 어떻게 우리 제품으로 세계시장을 공략했을까. 알리프의 디자인은 군더더기가 없다. 기능에 충실한 미니멀 디자인. 글로시한 폴리염화비닐(PVC)을 주재료로 사용하는데, 제품 한 가지에 6~8가지에 이르는 다양한 색상을 갖추고 있는 게 특징이다. 화사한 색감에 고급스러운 광택, 심플한 디자인과 깔끔한 마무리가 한눈에 들어오면서 ‘알리프’만의 아이덴티티를 드러낸다. 세계의 고급 백화점이나 문구 매장들은 이 제품들을 눈에 잘 띄는 맨 앞자리에 진열한다고 한다. 지나가는 고객들의 눈길까지 사로잡아 매장으로 끌어들이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엄세영 씨의 원래 꿈은 소품이 아니라 자동차를 디자인하는 디자이너였다. 이를 위해 서울대 산업디자인과에 진학했고, 자동차 디자인 공모전에서 금상까지 받았다. 대학 졸업 후 그는 바로 취업하지 않고 카이스트 디자인경영대학원에 진학했다. 디자인과 비즈니스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외환위기 여파로 그가 취업하려고 마음먹었던 자동차 회사가 문을 닫았다. 미래를 고민하고 있을 때 만난 사람이 세계적인 디자인 브랜드 ‘알레시’를 수입하던 김주선 씨였다. “외국의 유명 제품을 들여오기만 할 게 아니라 이제 우리 브랜드를 만들어 세계시장으로 나가야 한다”는 말에 그는 귀가 번쩍 뜨였다. 김주선 씨에 대해 그는 “내가 앞으로 나갈 길에 대해 ‘영감’을 준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김주선 씨는 1999년, 그가 디자인 사무실 ‘알리프’를 열 때 공동투자까지 했다. 처음에 그는 제품디자인부터 가구, 인테리어까지 다양한 영역에 도전했다. 그러나 쉽지는 않았다. 그가 세계시장에 노크하기 시작한 것은 2004년 1월, 파리컬렉션 데코에 참가하고서였다. 그곳에서 세계 최고 권위의 생활디자인 전문 박람회 ‘메종 오브제’의 디렉터를 만났다. 프랑스 파리에서 매년 1월과 9월, 2회에 걸쳐 개최되는 메종 오브제는 사전 예약한 바이어들과 취재진만이 입장할 수 있는 세계 최대 상업 박람회. 전 세계 유통 전문가 10만여 명이 유행을 선도할 디자인을 발굴하고 판권을 선점하기 위해 몰려든다. 출품 심사가 까다롭기로도 유명해 통상 3~5년씩 심사 기간을 거치는데, 그 디렉터는 알리프에 대해서만은 예외적으로 그해 9월, 바로 참가하라며 초청했다. 그만큼 상품성을 높이 평가한 것. 이후 알리프는 매회 빠짐없이 메종 오브제에 초청받으면서 세계 각국의 유통 전문가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게 세계시장으로 뻗어나가는 교두보가 되어줬다. ‘어 라이프(a life)’였던 브랜드 이름도 프랑스 사람들이 부르는 대로 ‘알리프’로 바뀌었다. 알리프는 메종 오브제뿐 아니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리는 유럽 최대 소비재 전시회인 앰비엔테와 텐덴스 등 세계 각국에서 열리는 전시회에서 제품을 선보였고, 점차 50개국에서 판매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우리나라보다 유럽시장에서 장사하는 게 쉬웠어요

“솔직히 우리나라보다 유럽에서 장사하는 게 쉬워요. 우리나라에서는 제품을 만드는 업체가 매장을 직접 운영하는 등 유통까지 책임져야 하기에 엄청난 자본이 필요합니다. 유럽은 브랜드를 만드는 업체와 유통이 분리되어 있는 시스템이라 디자인과 제품 개발에 집중할 수 있지요.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 세계 각국의 유통 전문가들이 저희 제품을 팔아주기 때문에 저희는 핵심적인 일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전(苦戰)하다 ‘유럽시장에 나가 붙어보자’는 각오로 해외로 눈을 돌렸는데, 제품 자체의 힘으로 50개국의 유통망을 뚫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알리프의 모토는 ‘a little more’. 소비자가 요구하거나 기대하는 것보다 ‘조금 더’ 충족시켜 주자는 의미다. 전 세계 소비자의 필요를 그들보다 먼저 읽기 위해 그는 이 나라 저 나라로 날아가 사람들의 생활을 유심히 살피고, 그곳 파트너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프랑스 사람들은 개인수표를 많이 사용해 수표책을 들고 다니는데, 나달나달해질 때까지 쓰더군요. 가죽으로 만든 수표책은 너무 비싸 새로 구입할 엄두를 못 내는 거지요. 가죽 제품보다는 싸면서 가볍고 내구성이 좋은 PVC 수표책을 내놓았더니 반응이 좋았습니다.”


선글라스 등 안경을 목에 걸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목걸이처럼 사용하는 ‘안경걸이’도 새로 내놓았다. 폭신폭신한 소재를 사용해 안경에 흠이 생기지 않게 하면서 면 끈으로 줄을 만들어 저렴하면서도 실용적인 제품. 낯선 나라에서 기본적인 의사소통도 할 수 없어 고충을 겪는 사람들을 보면서는 화장실, 식당, 버스 등의 그림이 빙 둘러 그려져 있는 팔찌를 만들기도 했다. 그림을 가리키며 도움을 청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이디어인데, “특히 일본 소비자들이 반겼다”고 한다.

“다른 나라에 가면 제가 이방인이라 그곳 사람들보다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게 장점입니다. 그들의 삶을 관찰하며 ‘이런 물건이 있으면 편리할 텐데’라며 아이디어를 내는 거지요. 그들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요. 저 역시 소비자로서 사용하기 불편한 물건을 보면 못 참아요. ‘왜 이렇게 만들었나’ 화가 나고, 이렇게 저렇게 새로 디자인해 봅니다. 저희와 함께 일하는 파트너 유통 전문가들에게도 가장 강조하는 게 ‘시장과 소비자의 반응을 피드백해달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죽 같은 고급 소재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디자인이나 품질은 높은 퀄리티를 추구합니다. ‘가격 부담이 크지 않으면서 품질은 좋은 디자인 상품’이라는, 유럽에는 없던 틈새시장을 저희가 개척한 셈이지요.”

‘봉 마르셰’, 퐁피두센터 등 프랑스 백화점과 미술관에서 ‘ALIFE’ 제품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알리프의 디자인 아이덴티티는 이제 세계시장에서 공인받고 있다. 알리프와 비슷한 콘셉트의 스페인 제품이 편집매장에 함께 진열되게 됐을 때 ‘왜 우리랑 비슷한 것을 넣느냐?’고 항의하자 매장 책임자가 당장 스페인 제품을 철수시켰을 정도다. 처음 세계시장에 나갈 때는 제품 종류나 디자인이나 지금보다 다양했는데, 점차 ‘알리프만의 색깔’을 확고히 하면서 다른 브랜드와 차별화 전략을 취해 온 결과다. 퀄리티 컨트롤을 위해 제품을 모두 한국에서 생산하고, 제품을 내보내기 전 철저한 검열을 거친 게 세계시장에서 신뢰를 얻는 바탕이 됐다. 대신 가격협상에서는 양보하지 않아 ‘제값 받고 파는 디자인 상품’으로 자리매김했다 한다.

해외 거주 경험도 없고, 언어에 능통한 것도 아니라는 그. ‘나만의 것을 하면’ 세계시장이 열리더라고 경험을 이야기하는 그의 갈 길은 아직 멀다. 1974년생 동갑내기로 그와 캠퍼스 커플이기도 한 아내 김주희 실장이 이 꿈을 위해 그와 함께 세계를 무대로 동분서주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홍익대 앞 상상마당, W호텔 기프트숍, 코엑스 바른손 매장, 명동 코즈니 매장 등에서 알리프 제품을 만날 수 있다.

사진 : 신생화
  • 2011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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