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석

대통령 부인의 한복을 짓는 남자

지난 G20정상회의 때 창덕궁 연경당에서는 한국의 미와 우리 문화의 멋을 알리는 한복 패션쇼가 열렸다. 화려하면서 기품 있는 왕비의 평상복 원삼, 배색이 고운 공주의 평상복, 사대부 부인들의 입궐예복을 G20 정상 배우자들 앞에 선보이는 패션쇼였다. 이 한복 패션쇼를 담당한 이는 한복 디자이너 김영석 씨. 그는 김윤옥 여사가 공식 행사에서 입는 한복을 짓는 사람이기도 하다. G20정상회의 환영리셉션 때 김윤옥 여사가 입었던 한복의 저고리에는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목단 꽃과 나비가 수놓여 있었다. 분홍색 고름은 치마, 저고리의 색깔과 조화를 이루면서도 화사해 환영의 의미를 잘 전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외국인들이 한복을 보고 가장 먼저 하는 말이 ‘패블러스’(fabulous, 정말 멋지다)!”라고 한다. 이번 한복 패션쇼에서 그는 다양한 우리의 한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10년 전 삼청동에 ‘전통한복 김영석’이란 이름을 내걸고 한복 매장을 처음 연 그는 지금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 지하 아케이드에 둥지를 틀고 있다. 한복뿐 아니라 이불・장신구 등이 전시되어 있는 그의 매장은 전통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되살린 예술 공간에 가까워 보인다. 고가구 위에 놓인 디스플레이는 ‘김영석 10주년 패션쇼’의 영상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고, 입구는 수놓인 베개와 옷감을 촘촘히 쌓아 장식했다.

“다양한 영상을 틀어놓아요. 이곳을 지나가는 외국인들에게 짧게나마 한국을 알리면서 문화외교를 한다고 생각해요.”

매장에 놓여 있는 장신구 중에는 그가 직접 바느질해 만든 작품이 많다. 그의 손길로 다시 태어난 오래된 물건들이 눈길을 끈다. 한복 디자이너가 되기 전, 전통 공예전을 자주 찾았던 그는 그곳에서 자연스레 알게 된 침선장 구혜자 씨에게 4~5년 동안 바느질을 배웠다.

“어릴 때부터 바느질을 좋아했어요. 낡고 오래된 것에 천을 덧대고 바느질하면 나만의 멋진 물건으로 변신하는 게 무척 재미있었어요. 그 시절 나일론 양말을 말린다고 불 가까이 두면 쉽게 구멍이 났어요. 그 구멍 난 부분을 다른 색깔의 천으로 패치워크해서 신고 다녔죠.”



이벤트 기획하다 한복 디자이너로 전환

40대 들어 뒤늦게 한복 디자이너가 된 그는 “어릴 때부터 리폼 바느질을 해온 게 준비 과정이 된 것 같다”고 말한다. 그의 원래 직업은 이벤트 기획자. 패션쇼, 잡지 창간 파티, 콘서트 등 다양한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해왔다. 이때의 경험은 지금도 톡톡히 활용하고 있다.

“제 작품으로 잡지 화보를 만들 때면 제가 직접 시안을 구성하기도 합니다. 얼마 전에는 결혼식을 치르지 않고 사는 부부들을 대상으로 특별 화보를 만들었는데, 이것도 이벤트 기획자로서 쌓은 아이디어와 감각 덕분에 가능했죠. 요즘도 끊임없이 이벤트를 기획하고 준비하고 있어요. 직업을 바꾼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더라고요(웃음).”

그는 우리의 전통 색인 오방색(청・적・황・백・흑)을 활용하면서 자연스럽고도 빛깔 고운 한복의 색감을 잘 살려내기로 정평이 나 있다. 전통 한복의 독특한 라인에 다양한 색감을 접목하여 새로운 한복의 미를 창조하는 것이다.

“저는 자연에서 영감을 많이 얻어요. 빨갛게 물든 단풍나무를 보면 깊은 감동을 받아요. 제가 원래 빨강색을 좋아하는 게 아닌데, 햇빛이 비치면서 투명하게 빛나는 단풍의 빨강색은 스테인드글라스를 보듯 묘하게 정화되는 느낌이에요. 봄날 햇살 속에 빛나는 잎사귀는 형용할 수 없이 아름다워요. 같은 녹색이라도 안개에 싸여 있는 녹색 잎사귀와 물에 젖은 녹색 잎사귀는 다르잖아요? 햇빛 아래 투명하게 빛나는 녹색이 있고, 한여름이면 짙푸르러 거의 카키색처럼 된 녹색도 있어요. 색깔 감각은 이렇게 자연에서 익혀지는 것 같아요.”

G20정상회의 때 열린 한복 패션쇼에서 그는 오방색을 밝고 화사하게 해석해 한복의 아름다움을 각국 정상 부인들에게 각인시켰다. 이명박 대통령의 부인인 김윤옥 여사는 그의 오랜 단골. 김 여사가 청와대에 들어가기 전부터 결혼식 등 가족행사가 있을 때마다 한복을 만들어주었다고 한다.

“그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지요. 김윤옥 여사가 해외 순방을 가거나 국제 행사에 참석할 때는 저도 덩달아 바빠집니다. 우리 전통 한복의 우아함과 품위, 독특한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릴 기회이기도 하니까요.”

국내 정상급 스타 중에도 그의 단골이 많다 한다. “한복을 만들 때는 입으시는 분에 대해 가장 먼저 생각합니다. 이 옷을 입고 어디에 갈지, 그곳에 오는 사람들은 어떤 분들일지 모두 고려하면서 옷을 만들지요. 제 옷을 입으신 분들이 ‘사람들 반응이 좋았다’고 연락해 올 때 제일 행복합니다. 그동안의 피로가 싹 가시지요.”

전통 한복의 아름다움을 계승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그는 개량한복을 가지고 ‘한복의 대중화’라고 표현하는 것에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한복의 대중화도 좋지만 한복 고유의 전통을 살리면서 격식을 갖춰 입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본 기모노의 경우 빌려 입을 때도 전통에 따라 성장(盛裝)을 하는데, 한복은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한복을 편하게 입을 일상복으로 만드는 노력 이전에, 품위 있는 자리에 어울리는 옷으로 먼저 자리매김하게 해야 합니다.”


그는 ‘완벽한 짜임새를 갖춘 한복’을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또 한복을 입을 때 주의해야 할 점을 간략하게 이야기했다.

“한복을 입을 때는 참고 절제해야 해요. 한 가지에만 포인트를 줘야지 이것저것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려 하면 결국 한복 고유의 미를 망쳐요. 옷을 소박하게 입을 때는 장식구로 포인트를 주고, 여러 옷을 겹쳐 입을 때는 색이 너무 튀지 않게 조심해야 합니다. 보일 듯 말 듯한 신발조차 세심하게 배려하는 노력이 필요해요.”

그는 유기견 일곱 마리를 데려다 키우는 ‘강아지 아빠’이기도 하다. 인터뷰 내내 휴대전화에 저장된 강아지들의 사진과 동영상을 보여주며 자랑을 늘어놓는다.

“원래 동물을 좋아해요. 이 강아지들과도 10년 넘게 함께 살고 있어요. 우리 집에서는 뭐든 오래 살아서 붕어가 거의 잉어만큼 장수하고 있어요(웃음).”

집이 이제 ‘강아지 고아원’이 되었다는 그의 어릴 적 꿈은 고아원을 세우는 것이었다고 한다. 초등학교 시절 고아원 친구들이 많았는데, 그들 편에 서고 싶었던 마음에서 멋진 고아원을 만드는 게 꿈이 됐다. 그 꿈은 아직 유효하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오는 탁 트인 목장과 같은 곳에 마음까지 치료해줄 수 있는 고아원을 짓고 싶어요.”

사진 : 김선아
  • 2011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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