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계 벨기에인 상훈 드장브르

벨기에 최고의 요리사가 돼 한식 세계화에 나선 한국 입양아

지난 9월 말 서울관광마케팅과 한식재단의 공동 주최로 푸드 페스티벌 ‘서울고메2010(Seoul Gourmet 2010/www.seoulgourmet.org)’이 열렸다. 한식의 세계화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해 세계의 정상급 셰프 7명에게 미리 한국 전통음식의 식재료를 나눠주고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오게 한 이 행사에서 단연 관심을 모은 이가 상훈 드장브르(41) 씨였다.

상훈 드장브르 씨는 벨기에에서 유일하게 미슐랭 가이드로부터 별을 받은 레스토랑 ‘레르 뒤 탕(L’Air du Temps)’의 오너 셰프. 레르 뒤 탕은 과학적인 원리를 이용한 ‘분자요리’(Molecular Cuisine: 식재료의 성질을 물리학적으로 연구해 새로운 질감을 창조하는 요리 분야)로도 유명한 곳이다.

그는 한국에서 태어나 네 살 때 동생과 함께 벨기에로 입양된 한국 입양아 출신. 그에게 한국 음식의 식재료로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기억 저편 아스라이 남아 있는 ‘옛 맛’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정육점에서 일하기 시작해 타고난 미각으로 열일곱 살 때 소믈리에가 된 그는 독학으로 요리를 배웠다. 그가 ‘레르 뒤 탕’을 연 것은 20대 때인 1997년. 그의 레스토랑은 브뤼셀 근교, 노빌 수르 메헤인(Noville sur Mehaigne)이라는 외곽에 자리 잡고 있다. 2001년 미슐랭 가이드에서 별 하나를 받은 이 레스토랑은 2008년 별 두 개를 받으면서 ‘벨기에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주목받고 있다. 최근에는 고추장, 후추, 젤리 등이 들어간 김치 등 새롭게 해석한 한국음식을 시도하고 있다고 한다.

그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요리의 메커니즘. 어떤 온도로 어떻게 조리하느냐에 따라 식재료의 맛과 질감이 달라지는 과정을 그는 과학자가 실험을 거듭하듯 연구한다. 그는 물리학적인 원리를 이용해 완전히 새로운 질감의 요리를 창조하는 데 매료돼 분자요리에 빠져들었다. 2000년에는 분자요리의 창시자인 에르베 티스의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매주 수요일 파리행 비행기에 오르는 열정을 보였다. 액체 질소와 초음파 등을 이용한 저온 가열법도 식재료의 맛과 향을 자유자재로 다루기 위해 그가 활용하는 방법 중 하나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초대받은 그는 “지난해 한국을 찾았을 때 김치, 갈비, 된장찌개를 맛보고 내 요리에 이 ‘한국의 맛’을 어떻게 담아낼까 연구해왔다”고 한다. “요리는 나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그는 고추장 등 한국음식의 식재료를 받았을 때 ‘아련한 그리움’을 느꼈다고 한다. 이를 세계인의 입맛에 어떻게 접목시킬까가 그의 과제였다. 시연 요리에서 그는 도미구이에 김치를 얹고 고추장으로 접시를 장식해 내놓았다. 노랑・빨강 피망종이(피망을 갈아 즙을 낸 뒤 종잇장처럼 얇게 펴말려 살짝 튀긴 것)와 깻잎을 도미 위에 얹어 한국의 정체성을 표현했다.


요리의 메커니즘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새로운 맛 창조

지난 9월 29일,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에서 세계 정상급 셰프 7명과 국내 요리 전문가들이 직접 자신의 요리를 시연하며 비법을 전수하는 ‘스타 셰프 마스터 클래스(Star Chefs Master Class)’가 열렸다. 이 클래스에서 상훈 드장브르 씨는 한국의 김치를 재해석한 ‘상훈김치’와 분자요리법을 활용한 디저트를 선보였다. 다음 날인 9월 30일에는 르 코르동 블루-숙명아카데미에서 열린 ‘마스터 클래스 인뎁스(Master Class in Depth II)’에서 그를 세계적인 스타로 만든 ‘분자요리법’에 대한 강연과 요리 시연을 선보였다. 이날 사회를 맡은 벨기에 요리 저널리스트 장 피에르 가브리엘은 상훈 드장브르 씨를 이렇게 소개했다.

“그가 레스토랑 레르 뒤 탕(L’Air du Temps)을 열 때부터 지켜보았다. 그가 요리를 개발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느낀 것은 셰프보다 약사가 더 잘 어울릴 것 같다는 것이다. 그는 요리에서 이루어지는 메커니즘을 철저히 분석한다. 익히고 보관하고, 요리하면서 달라지는 식재료의 질감을 하나하나 분석한다.”


그는 무려 3시간 넘게 계속된 클래스를 ‘진공-저온 조리법의 선구자’라 일컬어지는 브루노 구소 박사와 공동으로 진행했다. 구소와 함께한 듀오 시연은 세계적으로도 드문 사례라고 한다.

“구소 박사와는 2년 전부터 알고 지냈는데 제가 이메일을 보내면서 인연이 시작됐어요. 요리하면서 궁금한 점을 늘 여쭤보고 있습니다. 오늘처럼 구소 박사님이 설명하고 제가 요리하는 예는 드물기 때문에 저도 질문할 거예요.”

그의 말에 구소 박사는 “셰프가 중요합니다. 저는 셰프가 예술적인 재능을 펼쳐 보일 수 있도록 바탕을 마련하는 거예요”라고 응수했다. 요리의 과학자로 일컬어지는 구소 박사의 강의에는 갖가지 전문 용어가 등장했다. 그가 1970년에 개발한 ‘진공・저온 조리법’은 세계의 영향력 있는 요리사들의 조리법을 바꿔놓았다. 최근엔 ‘최적온도 조리’라는 말을 더 많이 쓴다고 한다. 요리에 필요한 식재료를 각각 비닐에 진공 포장한 뒤 최적의 맛을 낼 수 있는 온도의 물에서 서서히 익혀 요리에 들어가는 방법.


“요리는 모든 재료의 맛이 어우러지면서도 각각 재료의 고유의 맛이 살아 있는 게 중요해요.”

이런 역할을 하는 게 바로 진공 포장이다. 진공 포장한 식재료는 고유의 색깔을 그대로 간직한다는 것도 장점이다. 식재료에서 우러난 즙은 버리지 않고 소스로 활용한다.

“고기 텍스처를 살리면서 바삭한 질감과 알싸한 맛을 내기 위해 식초의 새콤한 맛을 추가할 거예요. 간장에 참기름을 넣고….”


상훈 드장브르의 강의를 듣다 보니 그가 그림을 그리듯이 음식을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영화 편집”하는 것과 같다고. 모든 요소가 어우러져 전체적인 맛을 완성한다고 말한다. 요리 시연 후 다 함께 시식하는 기회가 있었다. 깻잎을 허브처럼 송송 뿌린 송아지고기 요리를 입에 넣었더니 ‘고기가 입 안에서 살살 녹는다’라는 말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생선 요리를 내놓으면서 그는 “생선 꼬리를 자르지 않을 거예요. 무슨 생선인지 정체성을 알 수 있게 해야 하거든요”라고 말한다. 유머러스하게 말했지만, 그의 요리 철학이 담겨 있는 말이 아닌가 싶었다. 그를 통해 한식의 세계화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을까? 한식 대사(大使)로 거듭나는 그를 지켜보는 일은 점점 더 큰 의미를 지닐 것 같다.

사진 : 김선아
사진제공 : 서울고메2010 사무국
(서울고메2010(Seoul Gourmet 2010/www.seoulgourmet.org)
  • 2010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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