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시장, 문화를 만나다] 서울 중앙시장의 신당창작아케이드

작가와 관람객이 교류하는 문화현장 된 재래시장

지하철 2호선 신당역과 6호선 동묘역 사이에 위치한 황학동 중앙시장. 족발 써는 할머니와 채소파는 상인들로 분주한 이곳은 평범한 재래시장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시장 천장에는 한지로 만든 대형 꽃등이 걸려 있고, 건어물상 입구에는 어른 키만큼 쌓아올린 장난감 굴뚝이 있다. 이 작품들은 중앙시장 지하 방공호에 마련된 ‘신당창작아케이드’입주 작가들이 만든 것. 서울시가 창작예술촌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조성한 이 공간은 작가와 상인이 함께 꾸려가는 터전이자 주말 오후 시민의 발길을 끄는 문화특구다.

신당창작아케이드에 가기 위해 신당역 1번 출구에서 황학동 중앙시장 방면으로 향했다. 거리 한편에 돗자리를 깔고 낡은 롤스로이스 수동 카메라부터 회중시계, 미군 거위털 침낭 등 어디서 구했을까 싶은 물건들을 좍 펼쳐놓은 노점상이 즐비하다. 이 길을 따라 진열된 물건들을 구경하다 보면 곧 중앙시장에 도착한다. 잔치국수나 생선전을 안주 삼아 막걸리를 마시는 할아버지들과 고기를 손질하는 정육점 주인, 작은 수레에 채소를 한 가득 싣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짐꾼들은 우리네 시장의 익숙한 풍경. 하지만 아치형으로 커다랗게 세워진 중앙시장 입구 사이로 다소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 간판이 드문드문 보인다. 바로 신당창작아케이드의 입구를 나타내는 표지판. 그중 시장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13번 출입구로 내려갔다. 바닥에 작은 돌들이 듬성듬성 박혀 있는데 신당창작아케이드와 연결된 회센터로 이어진다. 전라남도산 장어만 판다고 써 붙인 횟집부터 테이블이 세 개 놓인 작은 횟집까지 각양각색이다. 복도를 중심으로 양옆에 늘어선 이 횟집들은 한때 중앙시장의 명소였다. 가게 문 앞에 앉아 야채를 다듬던 ‘호남횟집’ 안주인은 “요즘 젊은 사람들이 많이 오니까 기분이 좋다”며 지나간 시장의 전성기를 회상했다.


“20년 전만 해도 회를 먹으려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도 없었지.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이 뜸해졌어…. 그런데 젊은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다시 손님이 많아졌어. 우선 깨끗해졌고, 볼거리도 많아졌으니까.”

지난 2009년 8월 신당지하상가에 문을 연 신당창작아케이드는 일종의 창작예술촌이다. 입주 작가를 선발해 작업실을 임대료 없이 빌려주고, 작품활동을 지원한다. 시장을 찾은 사람들은 작가의 작품까지 함께 감상하며 문화적 향취를 느낄 수 있고, 작가는 쉽게 관람객을 만날 수 있어 서로 상승 효과를 내는 중. 시장 속 문화소통의 공간이 되고 있다.

“황폐화된 공간을 예술촌으로 만든 경우는 세계적으로 많습니다. 최근 현대미술 강국으로 떠오른 중국의 ‘789 예술촌’ ‘지우창 아트 콤플렉스’ 는 양조공장, 벽돌공장 부지에 젊은 작가들의 작업실을 만든 곳이죠. 이것은 현실적인 어려움을 겪는 작가들에게 날개를 달아줬어요. 이곳도 젊은 작가들에게 힘이 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신당창작아케이드의 매니저 김진호 씨에 따르면 불과 2년 전만 해도 이곳은 가출 청소년과 노숙자들이 모여들던 우범지역이었다 한다. 중앙시장도 이와 함께 쇠락의 길을 걸어왔다. 때문에 젊은 작가들의 창작 공간인 신당창작아케이드가 들어설 때 누구보다 먼저 상인들이 반겼다.


“현재 40여 명의 작가들이 입주했는데, 인터넷을 통해 입주 작가를 모집했습니다. 반드시 젊은 작가에게만 입주 기회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평일에는 자유롭게 작업하다 주말에는 작업실에서 시민을 만나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기도 합니다. 일종의 오픈 갤러리인 셈이죠. 시민이 참여하는 체험 프로그램도 있습니다.”

신당창작아케이드의 중심부로 향하는 복도 양 옆에는 횟집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그중에서도 일본 도쿄 긴자 거리에나 있을 법한 세련된 인테리어의 횟집도 간혹 눈에 띈다. 백토로 빚어 구운 국화꽃이 횟집 벽을 멋스럽게 꾸민 곳도 있고, 넘실대는 파도와 갈매기를 애니메이션 기법으로 그린 횟집도 있다. 신당창작아케이드 입주 작가들이 재료비만 받고 꾸며준 것. 작가들은 계속해서 횟집을 대상으로 작품 활동을 할 계획이다.


작가들이 직접 가르치는 미술교실, 체험 프로그램

회센터를 지나 입주 작가들의 작업실로 들어갔다. 모든 작업실은 전면이 유리로 되어 있어 천천히 복도를 걸으며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익살스런 표정의 동물 그림이 유독 많이 걸린 한 작업실에 눈길이 갔다. 작가는 책상에 앉아 연필로 여러 마리의 고양이를 스케치하는 중이었다. 인기척을 하자 작업실로 들어오라더니 의자를 내준다. 고양이를 주로 그리는 일러스트 작가 최배혁 씨다.

“이곳에 작업실을 마련한 후 시장에서 색다른 영감을 받고 있어요. 사람들로 붐비던 곳이 밤이 되어 적막에 싸이면 묘한 매력이 느껴져요.”

최 작가의 책상에는 색색의 물감 통이 조르르 세워져 있다. 그에게 신당창작아케이드는 어떤 색을 닮았느냐고 묻자 주저 없이 ‘올리브그린’을 꼽았다. “생명력이 넘치지만, 아직 개선하고 발전해야 할 부분도 많아 새롭게 돋아나는 잎사귀 색과 어울린다”고 설명을 붙인다. 이곳에 입주하려면 전시 경력, 자신의 분야에서의 활동 등 몇 가지 요건을 갖춰야 한다. 일정한 수입이 없는 작가에게 무료 작업실을 얻는 것은 ‘로또에 당첨되는 일’과 같다고 이들은 말한다. 칠공예 작가인 김수연 씨는 “한 달에 전기사용료 등으로 2만5000원만 내면 되는데, 이런 혜택은 어디서도 받기 힘들다”고 했다. 그는 신당창작아케이드에 입주한 후 다양한 분야의 작가들과 교류할 수 있어서 특히 좋다고 한다.

남색 앞치마를 두른 채 작은 드릴로 나무를 다듬는 김 작가 주위로 엄마 손을 잡은 아이들이 몰려 들었다. 신기한 표정을 짓던 아이들은 잠시 후 새로운 볼거리를 찾아 다른 작가의 작업실로 몰려갔다. 신당창작아케이드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아이들을 위한 문화교육. 이 지역 저소득층 아이들을 대상으로 10주 과정의 무료 미술교실도 운영한다. 입주 작가들이 매주 토요일에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것. 아이들이 수업을 받는 강의실에 들어섰더니 점토로 제각각 작품을 완성해놓은 10명 남짓한 아이들이 작품이 마르는 동안 점심으로 자장면을 먹고 있었다.


다른 강의실에서는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12명의 아이들이 호랑이 저금통을 만들고 있었다.

“귀와 귀 사이에 붙여주세요. 너무 꽉 누르면 안 돼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호랑이 얼굴을 만드는 꼬마들은 신당창작아케이드의 체험 프로그램에 참가 중인 어린이들. 도자기 빚기, 저금통 만들기, 유리병 늘리기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자신이 만든 호랑이 저금통을 들고 뛰어다니는 한 어린이에게 재미있느냐고 물었더니 “다음 주에 또 올 거예요”라며 웃는다. 아이들이 좋아해서 주말마다 가족 단위로 시장을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한다. 체험 프로그램은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예약하거나 당일 현장에서 접수할 수 있는데, 이용료는 없다.

“서울은 작가들이 살아가기에 그리 좋은 도시는 아니에요. 무언가 척박한 느낌이 많다고 할까요. 그런데 이곳에 온 뒤로 작가로서 동기 부여가 많이 됐어요. 재래시장 특유의 공기 속에서 새롭게 제 작품세계를 만들어가고 있지요.”

“신당창작아케이드에서 얻은 점이 너무 많아 즐겁다”는 유리공예가 이윤철 작가. 유리병 체험 프로그램을 위해 사람들이 모여들자, 양손에 작업용 장갑을 끼고 800℃로 가열된 통 안에 유리병을 집어넣었다. 잠시 후 기다란 집게로 유리병을 꺼내 양손으로 비틀자 열에 의해 녹아내린 유리병은 꽈배기 튀김처럼 허리가 잘록해졌다. 지켜보던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무엇보다 내 작품에 관심 갖는 사람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고 말하는 이 작가의 입가에는 미소가 그칠 줄 몰랐다.

사진 : 김선아
취재협조 : 신당창작아케이드
  • 2010년 08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
이름      비밀번호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독자팀)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