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시장, 문화를 만나다] 우림시장 ‘문전성시’ 프로젝트

시장 상인들, 배우 되다

대형마트가 등장하기 시작한 1990년대 이후 재래시장은 계속 내리막길을 걸어왔다. 재래시장 활성화 방안들이 마련되고 있지만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시장에 문화를 접목한 중랑구 우림시장의 ‘문전성시’ 프로젝트가 화제가 되고 있다. 상인과 지역 주민이 함께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시장을 문화공간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우림시장을 찾았다.

경상현 우림문화달구지 대표.
문전성시(문화를 통한 전통시장 활성화 시범사업) 프로젝트란, 침체된 전통시장을 지역 문화 공간이자 관광지로 조성해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한 사업. 지난 2008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시작한 것으로 올해는 서울·경기 지역에서 유일하게 중랑구 망우동의 우림시장이 선정되었다.

우림시장 입구에는 ‘춤추는 황금소’라는 간판이 크게 걸려 있다. 시장을 상징하는 우(牛)돌이, 우순이 캐릭터도 만들었다. 우림시장은 조선시대부터 강원도와 경기도 일대에서 마장동 우시장으로 소를 팔러 오던 농부들이 잠시 숨을 돌리며 여독을 풀던 곳. 우림(牛林)이라는 시장 이름도 여기서 생겨났다.

우림시장은 이러한 지역적 특성을 살려 올해 총 5억 원을 투입해 특색 있는 사업들을 진행한다. 그중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상인극단. 시장 상인과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한 오디션에서 배우를 뽑아 이미 극단을 만들었다. 이 지역 주민이자 연극연출가로, 우림시장 문전성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우림문화달구지’ 대표 경상현 씨는 “기대 이상으로 관심이 높아 오디션장 열기가 무척 뜨거웠다”고 한다.


“무려 60명이나 지원했어요. 그중 지역 주민이 35명이었는데, 주민들의 참여율이 높은 것을 보고 상인들도 놀랐죠. 덕분에 ‘한번 제대로 해보자’는 분위기가 형성됐고요. 넓은 공간에 다 같이 모여 각자 개인기를 자랑하는 식으로 진행돼 오디션은 흥겨운 잔치처럼 치러졌어요. 그렇게 해서 배우 25명을 뽑았습니다. 우림시장에서 근 40년간 노점을 하다 지난해 정리한 60대 어르신은 ‘우연히 시장에 놀러 왔다가 극단 창단 소식을 들었다’며, ‘이곳에서 지나온 세월이 생각나 울컥했다. 나를 꼭 뽑아달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이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였죠. 저마다 연극에 대한 열정이 대단해 합격, 불합격을 가리기가 정말 어려웠습니다.”

뮤지컬 형식으로 무대에 오를 상인극단의 첫 작품은 <춤추는 황금소>. 우림시장 상인회의 결성부터 현재까지 40여 년간 우림시장이 겪은 시련과 극복, 미래 이야기가 줄거리다. 올 연말 공연을 목표로 이미 연습도 시작했다. 7월에는 대본 연습 전 단계로 발성, 화술, 신체 트레이닝 등 전문가로부터 연기의 기본을 배운다. 연극인이자 ‘배두나의 엄마’로 더 많이 알려진 추계예술대 김화영 교수가 강사로 참여하고 있다.

첫 공연은 올 12월 초순. 이를 위해 우림시장 내 상인회 건물 1층을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드는 작업이 한창이다. 이동식 객석을 설치해 소극장뿐만 아니라 지역 예술인을 위한 모임장으로, 전시공간으로, 체험공간으로 두루 활용할 계획이다.


우림시장을 살리기 위해 똘똘 뭉친 상인들

유의준 우림시장 상인회 회장.
상인극단 외에도 인근 봉화산과 망우산을 찾는 등산객을 우림시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주막도 열었다. 시장에서는 장소를 제공하고, 운영은 지역 학부모회, 부녀회 등이 맡아 수익금을 지역 내 불우 청소년이나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어려운 이웃들에게 전달하는 프로그램. 지난 6월 27일 중랑구 봉화중학교 학부모회의 주관으로 첫선을 보인 ‘우림 등산객 주막’은 주민과 등산객이 어우러져 성황을 이루었다. 흥겨운 음악에 막걸리잔이 돌고,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는 손님들로 시장은 모처럼 활기를 띠었다. 우림주막은 올 11월까지 매월 2, 4주 일요일(단, 7월 25일은 쉼)에 열린다.

‘우림 보부상(褓負商)’을 만들어 시장 주변 대형마트와 아파트 단지를 돌며 신규 고객 유치 퍼포먼스도 벌였다. 중랑구 거주 문화예술인이 참여하는 ‘1평 예술단’은 시장 안팎에서 주 1회 게릴라 공연을 펼치고, 시장 상인과 시민, 다문화 가정이 함께하는 ‘우림 설렁탕 파티’도 계획하고 있다. 상인들이 직접 CF를 제작해 우림시장을 홍보하는가 하면, 엄마와 함께 시장에 온 아이들에게 문화예술 교육을 하는 ‘봄 그리고 우리 시장’ 프로그램도 진행된다. 이 시간 동안 주부들은 편안히 쇼핑할 수 있다. 이처럼 시장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이미 시작되었거나 준비 중이다.

우림시장 상인회 유의준 회장(피자가게 운영)은 “우리 시장은 전통적으로 상인들의 결속력이 매우 강한 것이 특징”이라며 이번 프로젝트에 거는 기대를 드러냈다. 유 회장의 말대로 우림시장은 대형마트가 앞다투어 생기며 재래시장의 생존을 위협하던 1990년대 중반 이후 상인들이 공동으로 자구책을 만든 곳으로 유명하다. 자체적으로 셔틀버스를 구입해 운영했는가 하면, 시장 바로 옆에 대형마트가 들어서자 저마다 십시일반 대규모 경품-할인서비스를 제공하는 맞불작전으로 시장 매출을 끌어올리기도 했다. 2001년에는 눈이나 비가 오면 장을 보기 불편한 재래시장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저마다 수백만 원씩 출연, 시장 전체를 가리는 아케이드도 만들었다.

유 회장은 “당시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대형마트 때문에 이대로 가면 삶의 터전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성과가 좋았다”며, “우리가 힘을 모으면 어떤 어려움도 헤쳐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이번 문전성시 프로젝트에 지원한 것도 그 경험들이 바탕이 되었다는 것. 아직 문화를 접목한다는 것이 낯설지만 많은 상인들이 ‘잘될 것’이라고 믿는 것도 그 때문이다.

“시장이 물건만 파는 곳이 아니라 문화가 있고, 정이 있는 곳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것”이라는 ‘우림문화달구지’ 경상현 대표의 말처럼, 문전성시 프로젝트를 통해 새롭게 변신할 우림시장을 기대해 본다.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해 지역 주민과 즐겁게 소통하는 우림시장의 모습은 매출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전국의 수많은 재래시장에 또 하나의 대안이 될 것이므로.

사진 : 송미성
  • 2010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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